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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Feb 14. 2024

오늘은 혼밥 하겠습니다

고소한 버터 연어구이 덮밥

나는 ‘혼자서’ 하는 일들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20대에도 혼밥 하는 일이 싫어서 어쩌다 혼밥을 하는 상황이면 무조건 원룸이었던 좁은 나의 집에서 가볍게 끼니를 해결하고 나왔다.


혼밥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타인에 눈에 내가 친구도 한 명 없는 초라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은 두려움이 막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혼밥도 혼술도 나는 굉장히 꺼리다 못해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대학 시절에 드라마에 나오는 청춘들의 소주 병나발 부는 모습을 따라 해보겠다고 어묵탕에 소주 한 병을 사 왔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바로 소주를 싱크대에 들이붓곤 어묵탕만 신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도 혼밥 하던 순간이 오면 나는 그냥 굶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 정도로 나는 혼밥, 혼술에 취약한 미흡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30대가 되고 보니 이제는‘혼자서’ 하는 상황들이 오히려 더욱 편해졌다. 밥도. 술도.


산책도. 혼자서 카페를 하고, 혼자서 해장국 집을 가고, 혼자서 서점을 가고, 혼자서 약속이 없어도 버스를 타고 훌쩍- 먼 동네를 탐방하고 오고, 혼자서 장을 봐서는 근사한 식사를 만들고, 혼자서 즐겁게 홈파티도 하곤 한다.


이제는 오히려 타인과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생활에 적응을 해가면서 내가 가장 놀라웠던 건 바로 강남 직장인의 ‘밥’이었다.

어쩌다 보니 입사를 하자마자 개인주의가 뚜렷한 집단에서 스스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일도. 밥도. 나는 그런 문화가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했고 불편함은 없었는데, 나의 불편함을 깨운 건 바로 강남의 [식사]였다. 11시 30분부터 주변 식당들은 대부분 웨이팅이 시작되곤 한다. 한 번도 나는 회사 점심시간에 웨이팅을 해본 적이 거진 없는데 이곳 강남에서는 웨이팅이 늘 필수다.


심지어 병가를 낸 다음날 출근해서 죽 좀 먹으려고 찾아간 허름한 상가 지하의 죽집에서도 나는 무려 30분이나 대기해서 그마저도 겨우 한 술 뜨고 웨이팅 하는 직장인들의 어수선함에 신경 쓰여 먹다 남은 죽을 포장 해서 다시금 사무실로 돌아왔다. 모든 점심시간의 날들이 비슷하게 흘러갔다. 웨이팅이 아니면 늘 먹는 음식은 김치찌개, 부대찌개, 백반이 전부였다.

그 와중에도 가격은 왜 이리 사악한지 10,000원을 넘는 한 끼가 새삼스럽게 내 눈에 들어왔다. 연봉이 올랐는데, 연봉이 없어진 기분이다.


아이러니 한 사실은 데이트를 할 때면 한 끼에 5만 원, 6만 원도 훌쩍 쓰면서 왠지 직장에서의 식사는 1만 원만 넘어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느 퇴근길에 나는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번거롭겠지만 식사비도 아끼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도 먹고, 편하게 점심시간을 오롯이 나만 즐길 수 있다는 장점.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을 것 같았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저녁 8시, 청소하고 정리를 하면 그새 9시 그리고 어느덧 잘 시간이 되어버리니 집밥 해 먹기를 좋아하는 나도 제대로 집밥을 해 먹는 날은 겨우 주말뿐이라 식재료들이 상하기 일쑤였던 날들도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다는 의지에 불을 붙였다.


결국, 주말 아침 집 앞 다이소에서 5천 원짜리 낙낙한 도시락통과 보온가방을 샀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도시락 메뉴들을 정하고 재료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첫 날 도시락, 연어덮밥

첫날은 정장에 귀여운 보온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내 모습이 마치 다시 학교에 입학해서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것 마냥 동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도시락을 싸왔던 첫날, 점심시간이 되자 모두들 약속을 한 듯이 ‘나가시죠!’라는 말과 함께 일사불란하게 겉옷을 챙기고 식사 메뉴를 정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저는 도시락을 싸왔어요. 맛있게 드세요!’를 외치며 내 자리에서 도시락을 꺼내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겨우 몇 마디 나누는 점심시간마저 도시락으로 혼자 보내겠다는 나의 말은 마치 누군가에는 선전포고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서 좋은 건, 나름대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동료들을 모두내보내고 밤새 만들어 둔 버터향 솔솔 풍기는 연어구이 덮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버터향이 가득 나자 왠지 집에서 밥 해 먹는 기분이 났다.


출근길에 미처 보지 못했던 자극적인 드라마 몰아보기를 틀어놓고서는 내 자리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밥인데도 왠지 나와서 먹으면 더 맛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똑같이 일하는 사무실인데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다는 행동 하나로 내 자리가 꽤 근사했고 아늑했다.

완밥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동료들이 돌아올 때까지 환기도 시키고, 탕비실에서 다시 커피도 만들고, 향수도 뿌리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소화도 시키다 보니 어느덧 오롯이 나만을 위했던 점심시간이 끝나버렸다.



오늘도 혼밥 하였습니다

 - 고소한 버터 연어구이 덮밥


- 연어구이는 어린이용 개별포장 되어있는 제품으로 구매를 하면 한 끼 적당하게 챙겨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생각보다 1인 가구에게 어린이용 개별포장 제품들은 늘 활용도가 높은 편이다.

- 김치, 올리브, 당근 등 부수적인 반찬을 담고 싶은데 도시락통의 공간이 마땅치 않다면 다이소 미니 종이 받침그릇을 활용하자, 마치 피크닉 도시락을 준비한 것처럼 풍성해진다

- 밥은 미리 전날 만들어두고 열기가 식으면 실온보단 냉장실에 넣고 다음날 회사에서 먹기 직전에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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