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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대리 Feb 15. 2024

오늘은 혼밥 하겠습니다

동그랑땡과 후리카케

일본 여행을 처음으로 갔던 작년, 나는 일본에서 어떤 물건을 사 와야 하는지 잘 몰랐다. 여행이 처음이고, 돈을 여행에서 써보는 것이 처음인 나에게 ‘일본 가면 꼭 사 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마음에 들어도 ‘이런 거 사도 될까?’ 같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결국은 정말 사고 싶은 물건들도 다시금 자리에 내려놓게 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따지면 홈플러스, 이마트와 같은 동네 일본 마트에 들러서야 나의 지갑은 너무나 쉽게 열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후리카케 포장, 지름신을 부른다

마트에는 내가 좋아하는 주먹밥의 종류도 수십 가지, 싱싱한 회와 회초밥도 여러 가지, 그리고 식자재도 한국 보다 더 저렴했고 양이 더 많은 듯 보였다. 만약,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았더라면 나는 당장에 하루치 여행경비를 마트에서 식재료 구매비로 샀을지도 모르겠다.


1인 가구들을 위한 소량의 샐러드와 완성제품의 음식들도 내 눈길을 끌었고, 디저트도 여느 베이커리 못지않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나는 그곳에서 매운 얼얼한 컵라면, 후리카케 (밥에 뿌려먹는 일본식 양념가루), 다랑어포, 일본식 조미료, 후추 등을 한 아름 샀다.


일본에서 정작 사고 싶었던 캐릭터 인형 대신에 식재료만 가득 사온 나는 한국에 와서야 후회를 했다.

일본에서 사 온 쇼핑흔적


 나는 밥을 해 먹는 사람이지만 생각보다 한국인 입맛에 강조된 나는 일본에서 사 온 식재료를 그다지 많이 사용할 일도 없었고, 사용에 익숙지도 않았다.


도대체 후리카케 가루는 왜 3봉지나 사온 것일까. 그러다 이번에 회사에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점점 재료와 레시피의 한계를 느끼자 불현듯 생각이 났다.


후리카케!



나는 후리카케를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유년시절에 엄마가 학교에 가는 나의 아침을 위해서 밥에 김가루와 여러 가지 조미료 가루가 섞인 맛난 가루에 참기름 한 방울만 섞어주고 주먹밥처럼 돌돌 말아주면 그만한 아침 식사가 없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는 딱히 먹을 일이 없었는데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이 돼서야 레시피에 한계를 느끼고서야 나는 후리카케를 찾게 되었다. 일본어로 쓰여있어서 어떤 맛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어서 복불복으로 뜯어봐야 하는 일본식 후리카케에는 호빵맨과 짱구가 그려진 포장지가 인상적이다. 왠지 괜찮을 것 (?) 같은 파란색 식빵맨을 고르고 포장지를 뜯자 고기와 치즈 향이 물씬 나는 조미료 가루가 쏟아졌다. 나쁘지 않았다. 후리카케를 밥에 솔솔 뿌려주고 한국식 참기름으로 마무리를 해주곤 그 시절 엄마가 해주셨던 동그랑땡까지 프라이팬에 구워주어 올려주었다.


한아름 준비하고 도시락을 보니 왠지 엄마가 생각나는 도시락 반찬이었다. 10대에는 잘 모른다.


아침을 거르는 일은 늘 일상이 되고,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의 노고 따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엄마의 배려가 불편하고, 귀찮을 뿐. 나 혼자 벌어먹기도 힘든 30대가 되어서야 눈을 비비고 등교시간에 맞추어 3살 터울 남매의 아침을 챙겨주는 맞벌이 엄마의 아침 삶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엄마, 나 오늘 도시락 쌌어. 회사에서 먹을 거야.


엄마에게 자랑하듯이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좋아했고, 기특하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난 이제 칭찬을 받을 만큼 적은 나이가 아닌데도 엄마의 칭찬은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역시 나에게는 ‘점심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동료들의 질문이 시작되었고, 나는 ‘도시락 싸왔습니다’ 어제보다 당당히 외치며 내 자리에서 싸 온 도시락을 펼쳐내었다.


케첩이 빠진 건 아쉬웠지만 다행히 나는 케첩과 마요네즈를 그리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김치로 심심함과 느끼함을 대신하기로 했다. 먹는 내내 학창 시절 나의 등교 풍경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습다. 그 시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나는 이제 밥벌이를 하기 위해 나를 위한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있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면 그 시절에 먹었던 음식을 해 먹어보자. 분홍 소시지에 계란물을 입혀 튀겨먹어도 좋고, 참기름 한 방울에 김가루를 뿌려먹어도 좋고, 한국인의 유년시절 소울푸드로 빼놓을 수 없는 간장 계란밥도 좋다.


는 왠지 어른이 되었다는 시큰함이 느껴질 때마다 이렇게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을 해 먹으면 나는 왠지 코 끝이 찡해진다.


오늘도 혼밥 잘 먹었습니다.

엄마, 늘 아침을 챙겨줘서 고마워요-

오늘도 완밥!

- 후리카케는 진 밥보다는 고슬고슬한 밥이 더 잘 어울린다. 참기름 한 방울은 필수다

- 동그랑땡은 기름의 튀김이 싫다면 전자레인지에 삶거나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도 좋다. 고기다짐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 김치는 소울푸드이니 꼭 한 켠에 쟁여두자. 마치 학창 시절 엄마의 도시락을 받아 소풍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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