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 4_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며
눈을 뜨면 가방을 정리하고
신발끈을 단단히 여미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전에 주어지는 시간은 각자의 사색 시간이었다. 나는 주로 묵주 기도를 드렸다.
가족 그리고 함께 투병 중인 환우들을 위한 기도였다. 꿈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함께 이 길을 한 발 내딛어보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된 기도였다. 모두 이곳에 와보면 좋겠다.
오늘 도착한 마을에는 봉쇄 수녀원이 있다. 수녀님들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면회조차도 철창을 사이에 두고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가족의 장례도 볼 수 없는 삶이었고,
자신이 죽어서야 이곳을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정말 괜찮은 걸까? TV도 신문도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지낸다는 걸까?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어떤 부르심을 받아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수녀원은 많은데, 왜 하필 봉쇄 수녀원이었을까?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미사 시간이 되어 철창 안에 있는 수녀님들을 볼 수 있었다. 성체를 모실 때가 되자,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님이 수녀님들 앞으로 다가가 작은 창구 틈으로 성체를 건넸다. 바라보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밖에 있는 우리보다 그 안에 있는 수녀님들의 얼굴이 더 밝아 보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철창 안에 우리가 갇힌 건지, 저분들이 갇힌 건지 모르겠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 집안에도 수녀님이 한 분 계셨다.
어렸을 적, 그분이 우리 자매를 보며 종종 말했다.
“둘 중 누가 수녀원에 갈래?
한 명은 수녀님이 되는 것도 좋지.”
그때까지만 해도 차분한 성품을 지닌 언니가
유력 후보였다. 공부 잘하고, 몸 약한 (엄마는 아까우셨던지) 언니를 제쳐두고 말했다.
“가연아, 수녀님이 되어보는 건 어때?”
“내가 수녀원에 들어가면 수녀님들
속세에 눈 뜨게 해서 다 데리고 나올걸,
괜찮겠어?”
절대 수녀가 되는 일이 내 길일 리 없다는 듯 말했다. 난 동성 친구들과 소통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수 많은 여자들 속에서,
그것도 나이 든 여자들이라니. 얼마나 까다로울까 싶어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언젠가 한번은,
“집안에서 여자 한 명이 군대에 가면
남자는 면제라는데 네가 가볼래?“
이런 얼토당토한 말을 한 번씩 툭툭 던지는 엄마였다. 이건 진심이었다.
삼 남매 중에서 제일 덩치가 좋고 성격이 활동적이라 생각해서인지 종종 넌지시 속마음을 비추곤 했다. 엄마 눈에 여려보이는 언니와
여자들 틈에 자라서 눈물이 많았던 오빠를 제쳐두고 내가 더 적합하다 는 판단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수녀원에서 하는
1박 2일 대침묵 피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침묵을 지켜야 했다. 유일하게 입을 뗄 수 있는 시간은 성경을 읽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이 하루에 세 번 성경책을 들고 모여 눈에 띄는 성경 구절을 낭독하는 ‘렉시오 디비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뭔지도 모른 채 참가하게 된 피정이었다. 단순히 수녀원에서 하는 피정이니 성경 말씀 나누고 미사나 드리는 일정이겠거니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반납해야 했다. 이건 벌칙처럼 느껴졌다.
스마트폰 중독이었던 나는 핸드폰을 손에서 놓는다는 걸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시간은 잠시 세속의 일상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보는 귀한 시간이라고 했다. 솔직히 전혀 귀할 것 같지 않았다.
뭐든지 들으면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검색하는 게 습관이었기에, 설명만 들었을 뿐인데 답답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일정을 들었다.
각자 배정된 방에 들어가서 쉬어도 좋고, 뒷 마당에 있는 포도밭 산책을 해도 좋다고 했다. 한참 동안 심심하고 무료함에 가만히 있지 못 했다. 방 안에 비치된 책도 읽어보고 침대에서 뒹굴 거려 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공간에 혼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운 지 두 시간이 지나자 어느새 이 고요함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흙을 밟고 싶어 포도밭으로 산책 갔다. 맨발로 걸으며 이 피정을 추천해준 지인을 생각해 보았다. 몸이 회복 된 이후 성당 활동으로 너무 바쁘게 지냈다. 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시간을 가지며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내 안의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던 것 이다.
조용히 산책을 마치고 그곳에 계신 수녀님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어쩌면 주님뜻에 따라 사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매일 기도하고 묵상하며 사는 삶. 세상 것에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대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삶. 호기심 반으로 시작한 생각은 끊임없이 나에게 되묻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몇 달 후에도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다시 피정을 참여하게 되었고, 담당 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조심스레 말씀하셨다.
“죄송하지만 받아주기가 힘드네요. 이곳에서 생활하다 몸이 안 좋아진 거면 저희가 끝까지 데리고 가지만 자매님은 아팠던 상태에서 들어오시는 거라 저희가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요.”
이게 현실이었다. 마주하기 싫은 현실이었고 모든 게 수용가능 할 것 같았던 종교인들이라 해서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연한 것 이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꼭 수녀님이 되어 성당 활동을 이어나갈 필요는 없다.’ 생각하고 정신승리를 해버렸다.
돌아오는 길,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저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던 마음이 어느새 진지해졌고, 잠깐이었지만 진심이 되었던 것 같다. 수녀님이 되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꼭 그런 방식이 아니어도, 나만의 방식으로 기도하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살면 되는 거니까. 내 안에 있던 조용한 목소리를 다시 꺼내어 들어준 것만으로도, 피정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었다. 세상으로 다시 나가더라도, 그 고요했던 시간을 가끔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