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Dec 11. 2017

결혼해도 괜찮아

사실 결혼 안 해도 괜찮아, 안 해도 괜찮을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괜찮아



결혼해야 할까, 결혼할까 말까에 대한 뾰족한 답은 될 수 없는 책이다. <연애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수요일>을 쓰면서 결혼에 대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쓰는 글에 인용하고 싶었고, 그래서 뾰족한 무엇을 찾기 위해 폭풍 검색의 시간을 거쳐 선택했다. 그러했으나 결코 뾰족한 수는 못 됐다.


뾰족하지 않아서 몇 번을 그만 읽을까 고민했다. 단지 책을 읽는 이유가 인용할 문장을 찾기 위해서라 생각하니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마음이 좀 안정된 이유는 어찌 되었든 '인용'이라는 걸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인생 대선배가 나에게 '무엇'은 주겠지 싶어서 끝까지 읽었다.


<결혼해도 괜찮아>를 읽고 내가 얻은 건, 성미가 급하고 답을 쉽게 구하기를 좋아하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결혼을 해도 안 해도 괜찮아라는 말에서 위로가 되기보다 '나는 이미 했구나... (무한 말줄임표)'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매거진 <연애하고 싶은 수요일>에는 <결혼을 앞두고 이별을 생각한다면>에 이 책을 인용했다.


https://brunch.co.kr/@soulfoodish/85






아이가 둘이다. 그리고 두 아이가 모두 아팠다. 남편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지난 2주는 나를 갉아먹고 처참하게 하는 노동의 연속이었다. 딸아이가 아파서 어린이집에 못 가고 두 아이를 번갈아가며 케어하고, 함께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레 옮은 감기가 만 4개월 된 아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폐소리가 좋지 못해 대학병원 진료까지 받게 된다.


모든 일을 혼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인 것보다 더욱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가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밤에는 게임을 했다. 이 패턴은 아이들이 아프기 전에도 지속되던 상태다. 회사 일을 하고 돌아와 폭풍 가사와 육아에 참여한 이후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 또한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프던 날부터 이 상태는 상처가 됐다. 아들이 기침이 심해 잘 먹지 못하고 게워내기를 반복할 때 나는 매번 혼자 사투를 벌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남편이 늦는 날은 두 아이를 데리고, 토하는 아들을 어찌할 줄 몰라 쩔쩔매던 날도 있었다. 작은 방에 들어앉아 총싸움(문제의 배틀 그라운드입니다, 여러분)을 하는 남편을 불러 아이가 토했으니 얼른 도우라고 했던 그 날, 큰 싸움이 벌어졌다. 남편은 놀라 달려 나와 하던 일을 제쳐두고 토한 아이를 닦이는 것, 자리를 정리하는 일을 진지하게 도왔지만 모든 체력과 감정을 소모한 나는 아이를 어디 눕힐지 두 번 묻는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남편 역시 가볍게 넘어가 주지 못했다.


결혼이 이렇게 처절하다. 처절한 것은 결혼인가 육아인가.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맛볼 만큼 맛봤겠지만 결혼하고 맛보는 단맛과 쓴맛과는 많이 다를 거라고 짐작한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성격과 습관을 가진 두 사람이 좁아터진 한 공간에서 밤낮으로 부대끼며 산다는 것, 그러면서 상대방의 가족과 친지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간다는 것,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해 줘야 한다는 것 등은 결혼하지 않으면 닥치지 않을 과제들이다.

결혼해도 괜찮아, 박혜란 저, 나무를 심는 사람들



결혼하지 않은 상태, 혹은 아이들이 없는 상태라면 닥치지 않을 괴로운 일상들로 괴롭던 지난 보름의 기록이다. 이마저도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서 이미 저만치 가있는 이에게는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괴로움이긴 하다만,


어쨌든 결혼을 하기 전에 몰랐던 사실들은 결혼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뿐이다. 결혼에 대한 판타지, 기대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결혼을 쉽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이 겪는 결혼의 괴로움이 이 정도인데, 기대가 컸던 누군가라면 매번, 매 순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겠다.


좀 심술궂게 표현하자면 결혼식은 여자를 빛내 주는 형식이지만 결혼의 내용은 아직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불리한 게임이라고 할까.

결혼해도 괜찮아, 박혜란 저, 나무를 심는 사람들


결혼을 괴롭게 느끼는 정도가 1부터 10으로 표현한다고 했을 때, 5부터 7 사이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이 소소한 위로가 돼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에 대한 대단한 '무엇'을 찾아내 인용하려고 발버둥 칠 때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책에 푹 빠져 읽다 보면 인생 대선배인 저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위로받게 된다.


결혼이 여자에게 불리한 게임이라는 것, 기혼 여성이라면 대부분이 같은 생각일 테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문장을 적어둬야 하는데, 건너뛰었다가 혹시 <결혼해도 괜찮아> 안에 문장을 인용해야 될 일이 생긴다면 적어볼까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그냥 둔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어의 온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