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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호하는 갑옷을 몇 겹 입은 걸까요

by Lamie

나는 매일 나를 파헤치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도 방향을 잃고, 전혀 다른 길로 가버린다.

괜찮아,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해.

그 말로 나를 토닥이며

정작 마주해야 할 자리에서 돌아선다.


회피인지, 생존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절대 드러내지 않겠다.’

‘반드시 이 수렁에서 빠져나오겠다.’

‘하지만 상처는 받지 않겠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속으로 되뇌는 나는

사실 누구보다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그가 말할 것이다.

“또 왜 감정적이야.”

“그게 그렇게 힘들어?”

“넌 늘 피해자야.”


나는 움찔하고 물러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방을 치우고,

아이를 챙기고,

자책하고,

슬며시 숨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내 습관은 늘 그랬다.

말하면 깨지고,

움직이면 부서지고,

가까이 가면 도리어 상처받는다.


그래서 숨는다.

숨는 걸 선택한 나를

나는 스스로 달랜다.


하지만…

숨은 자리에서

나는 혼잣말처럼 문장을 적는다.


“그래도 살아내야 하니까.”

“그래도 나를 찾아야 하니까.”


모두가 자기 말만 하고,

공허하고,

답답한 이 관계 속에서

나도 외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도 여기 있다고.

나도 들으라고.

나도, 이제 내 말 좀 하고 싶다고.”


말은 꺼내지 못한 채

나는 또 종이에 적는다.


“나를 보호하는 갑옷을

나는 몇 겹이나 입었을까.”


그 갑옷을 벗을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지금만큼은

내가 나에게 솔직해지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진짜 내 편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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