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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도둑

3장. 어둠 속의 그림자

기억도둑

by Lamie


그는 가로등 불빛 아래 서 있었다.

조금 전 레스토랑에서 나간 후 곧장 사라졌을 줄 알았지만, 마치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바람이 불어와 젖은 머리칼이 뺨에 닿았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마치, 서로의 존재를 기억해내려는 듯.


하지만, 어디서였을까.

언제였을까.


바람이 골목을 스쳤다.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이었어요?”


남자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림자가 가로등 불빛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무슨 말이죠.”


그녀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냈다.

게시글, 그리고 그 밑에 남겨진 단 하나의 댓글.


그녀는 화면을 그에게 보였다.

“그 기억, 당신 것이 맞나요?”


남자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이 댓글을 남긴 사람, 당신이죠?”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기억이 정확히 뭔데요?”


그녀는 순간 말을 잃었다.

기억, 기억…


정말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맞을까?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레스토랑에서요.”


그녀는 시선을 살짝 돌려, 뒤쪽 레스토랑을 바라보았다.

“이곳을 알았던 이유가 있었어요.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도 이곳에 온 적이 있던 것 같았어요. 그런데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요.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지운 것처럼.”


남자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다시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내가 기억하는 어떤 장면이, 누군가가 쓴 소설 속에 그대로 등장했어요.”


남자의 시선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낮게 말했다.

“그 장면은 내가 꿈에서 본 것과도 같았어요. 그리고, 그 꿈 속에서…”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머릿속에서 흐릿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젖은 골목길.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던 어린 소년.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그녀는 다시 남자를 보았다.

“…당신이 있었어요.”


남자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긴 정적.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남자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은…”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짧은 경적음.

그리고… 기차가 철로를 미끄러지는 소리.


그 순간, 모든 것이 희미하게 뒤틀렸다.


도시의 불빛이 일렁였다.

기억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 다음 장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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