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정말 사라지고 싶다.
남편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말을 안 한다기보다
지가 말을 안 한다.
그건 선택이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분명히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 중이다.
화가 나 있는 얼굴,
밥 먹으라 부를 때만 잠시 나와
무표정하게 식탁 앞에 앉는 모습.
나는 그 어두운 기운이 집안 전체를 덮는 걸 느낀다.
주말이면 안방을 차지하고
하루 종일 코를 골며 잔다.
그러다 일어나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그의 공간은 온전하다.
안방은 그의 휴식처이자 요새고,
그의 기분은 집 전체의 기류가 된다.
나는 밤이 되면
아들 방, 딸 방,
그 사이를 전전한다.
내 방이 없기 때문이다.
작은 방 하나를 ‘내 방’이라 정하긴 했다.
그런데 그 방은
치우지 못한 내 마음처럼 어지럽다.
쌓여 있는 책,
비워지지 않은 머그컵,
반쯤 그리다 만 그림.
치워야지, 생각하다가
멍하니 앉아 있다.
치우다가
또 다른 방으로 피신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또 다시 쌓인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치우던가!!!”
그 말이 내게 날아들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구박받으면서도 치우지 못하는 나.
그런 내가 밉고, 답답하고,
가끔은 정말 사라지고 싶다.
정말,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그는 잠을 자고,
그의 방은 조용하다.
그런데 나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사람처럼
이 집 안을 떠돌고 있다.
나는 묻는다.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공기 속에 묻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