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체로 괜찮은
어느 밤,
남편은 안방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고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있다.
나는 조용히 불을 끄고,
내 방이라고 부르는 그 작은 방에 앉아
이 집을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아무도 쫓아내지 않았지만
나는 언제부턴가
이 집에서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냥 문을 열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을 나서본다, 마음속으로라도.
어디로 갈까?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
책 냄새 가득한 헌책방 근처의 골목?
누가 묻지도, 지적하지도 않는
그런 곳이면 좋겠다.
거기엔
내가 선택한 가구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이 돌고,
그림을 그려도, 책을 펼쳐도
누군가 눈치 주지 않는 공간이 있다.
거기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게으르다”고 말하는 사람 없고,
눈물이 나도
“또 감정적으로 굴지 마”라는 말은 없다.
하루쯤은 늦잠을 자도 되고,
치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괜찮은 날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삶이 그립다.
아니,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삶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상상은 짧았다.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작은 현실이
다시 나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그 상상을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간직했다.
그건 도망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공간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현실에서 당장은 떠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문득, 조용히 ‘이 집을 떠나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순간입니다.
그 상상은 탈출이라기보다는, 자기 존재에 대한 회복의 갈망으로 다가옵니다.
결국은 ‘자유롭고 싶은 내면의 소리’를 조심스럽게 꺼내보겠지요.
회피하는 것엔 회피뿐입니다.
회피가 아닌 회복을 해야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집을 떠나는 상상은
집을 회복하는 상상으로
복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며
있는 그대로 만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