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찾아보니, 러닝메이트는 다음과 같은 '사전적 의미'가 있다.
주로 선거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러닝메이트 running mate
1. 명사 어떤 특정한 사람과 항상 붙어 다니는 사람.
2. 명사 어떤 일에 보조로 함께 일하는 동료.
조금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몇 명의 지인들은 일을 할 때, 중요한 선택을 할 때 나를 '러닝메이트'로 두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중요한 시점에 나를 존재적 의미로 떠올려준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때론 아니 종종 번거로운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동행 혹은 함께 협력하는 단계에서는 '선'과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관계에서도 일에서도 사전적 정의가 아닌 '조작적 정의'를 계속 소통하며 만들어가야 하니까. 기준의 명확성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의 편안함과 신뢰감이 그들이 나를 찾게 만드는 강점 임을 알고 있지만, 매 순간 중요한 포인트를 찾아가고 적절한 기준을 세워가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함이 필요한 일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선배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요즘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한 사회 속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모호함을 견디는 능력'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을 하는 능력'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과적으로 두 가지의 공통점은 '기다림'인 것 같다.
어디서나 지식과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세상.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러 가지 일들.
하지만 정보를 내재화된 능력으로, 체득화된 지식으로 '전환'하고 '통합'하는 일은 생각보다 기다림과 내면의 인사이트가 필요한 일이다.
최근 들어, 몇 명의 사람들의 '질문'을 들으며, "그건 검색을 하거나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쉽게 '관계' 속에서 머무르거나, '대화'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보다는, '정보'와 '답'만 찾아가려고 하는 패턴 속에서 무례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신뢰하는 이를 곁에 두고 천천히 동행해야 하는 대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대상은 기다림과 관계 속에서 천천히 무르익어져 가야 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결정을 내려주고, 지식을 전달해주는 사람만이 아닌.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든다.
정말 필요한 순간, 나는 과연 누구와 '러닝메이트'를 하고 싶을까?
그리고 그 때 그들은 함께 달려주는 '러닝메이트'로 함께 있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