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 외할머니가 싫었다. 방학이면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오래 일을 다녔다. 그게 몇일이었는지 몇 주였는지 모르지만 어린 내게는 매우 긴 시간이었다. 외할머니는 외항선을 타는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다섯 자식을 혼자 키우셨다. 얼마나 우악스럽고 당돌했는지 그 자식들이 낳은 자식들인 우리들에게도 공포 그 자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장례식장에서 사촌들끼리 그녀의 횡포에 대해 얘기했다. 펄펄 끓는 물에 비명 한번 못 지르고 매일 목욕을 당해야 했던 일, 맞아가며 한글을 배우고 얼굴보다 더 큰 대접에 가득 푼 장어국을 매일 마셔야 했던일, 그야말로 공포였다.
우리는 요즘 같으면 아동학대로 잡혀갔다며 깔깔 웃었다.
그 무섭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온몸에 암이 퍼져 곧 죽는다는 말을 듣고 17년을 더 산 뒤였다. 고약하던 할머니는 접시물에 기도를 올리다 교회당에서 손을 모으셨고, 자식만 다섯 키우다 손주 둘을 장가를 보냈으며, 큰 딸 집에 살다 셋째 네로, 그 뒤에는 제일 좋아하는 막내아들네로 거처를 옮겼다. 작은 키로 억척스레 걷던 엄마가 도저히 두 발로는 걸을 수 없는 할머니가 되어서 자식들 곁을 떠났다.
세월은 연약한 것들을 강인하게 하고 가장 크고 번성했던 것들을 가련하게 만든다. 나의 영웅이 자신은 챔피언이 될 수 없는 것을 알고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그 말은 당신의 입으로 뱉았지만 내 가슴에서 맴돌던 것이었다.
얼마나 높이 뛰어올랐나 와 상관없이 우리는 언젠가 떨어지고 만다. 높이뛰기 선수도, 멀리 뛰기 선수도, 날개 달린 새도 각자의 포물선을 그리며 살지만 언젠가는 땅으로 내려오기 마련이다. 그것이 세월의 무서움이자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