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그림 그리는 과정을 사람으로 비유한다고 하면 난 개구쟁이 꼬마가 떠오른다. 이 장난꾸러기 같은 녀석이 내 손을 끌고 이리저리 나다니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큰 틀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한다. 대게는 콘셉트를 정하고 아이디어 스케치를 끝낸 뒤 그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물론 작가에 따라 아이디어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 같은 경우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데, 꽤 많은 경우 아이디어 스케치가 무색할 정도로 결과물이 판이하게 다를 때가 많다. 초지일관하지 못하는 변덕스러운 성격 혹은 줏대 없는 성격이 한몫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좋게 말하면 재미있고 다양한 창작과정을 지나간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 거대한 혼돈과 조율의 과정을 넘고 넘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이 혼돈의 과정은 사실 유쾌한 과정이 아닐 때가 많다. 하다 보면 막막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올라올 때도 있다. ‘망쳤다!’라는 절망과 함께.
어렸을 때 나에게 가장 큰 시련을 안겨주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악몽을 꿀 때면 간혹 수학시험을 보는 악몽을 꾸곤 한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결국 모조리 답을 찍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 수학과 관련 없는 진로를 택했지만 그림 그리는 일 자체도 어찌 보면 수학의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어떻게든 네모난 캔버스란 공간 안에서 함수를 풀어내야 한다. 구도(compostition)를 잡을 때는 화면 안의 기하학(Geometry)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다양한 디자인적 패턴이나 색상의 선택도 어찌 보면 상당한 수학적 계산이 들어가는 순간이다. 다만 이 경우엔 숫자 대신 감각을 이용한 암산이다. 누군가는 화가를 로맨틱한 직업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숱한 노동과 계산이 필요한 참으로 정직한 직업일 뿐이다.
그렇게 좌절을 거듭하는 와중 작은 실마리를 잡아가며 서서히 그림은 윤곽이 드러난다. 이런 과정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좌절이 아닌 조금은 덤덤한 마음으로 그 혼란을 맞이할 수 있는 작은 내공이 생겼다. 그것은 새싹 같은 믿음이다. 어떻게든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어쨌든 해낼 것이라는. 겨자씨만 한 믿음이지만 그것은 아주 단단한 지지대가 되어 폭풍과 같은 혼란의 중간과정을 견디게 해 준다.
페이팅 프로세스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혼돈 속에서 우주가 탄생하는 나만의 작은 빅뱅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빈 캔버스 위에서 나는 하느님(The Ultimate Creator)이 되어 새로운 것을 만들고 또 파괴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듯 내가 원하는 것을 인생이라는 화폭 위에 자유자재로 그리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림을 통한 창조와 현실 안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드는 창조는 일견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그 뒤에는 같은 공식이 적용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물론 같은 공식으로 풀 수는 있지만 삶의 문제는 지문 길이가 길고 복잡한 응용문제라는 점이 다르긴 하다.
대지의 어머니(Mother Earth)의 모습을 동양적인 context 안에서 표현해보자 했다. 그녀의 손에는 물, 흙, 불, 바람, 수정, 약초, 빛 등이 나오는데 이는 자연이 우리의 생명에 베푸는 다양한 요소를 의미한다. 앞에는 이를 기록하는 동자와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빠른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제법 더딘 작가들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 한 작품 당, 짧게는 한 달, 길게는 3개월씩 걸릴 때가 많았다. 워낙 손이 빠르지 않다 보니 그렇기도 하고 초지일관하지 못하고 그림을 도중에 계속 수정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작(多作)을 하는 아티스트를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다작을 하지 못하기에 그림을 팔고 싶은 마음도 잘 생기지 않았다. 워낙 어쩌다 한번 나오는 작품이다 보니 누가 뭐래도 나한테는 귀한 자식이 되고 만다.
이제는 조금씩 그 틀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허용된 시간과 체력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900여 점의 작품, 1100점의 습작들을 만들어낸 반 고흐는 그런 의미에서 내가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대선배다. 그림 하나만 보고 갔던 해바라기 같은 헌신과 열정이 만들어낸 숭고한 결과물이다. 그에 비하면 내가 가진 열정은 영 뜻드미지근한 셈이다.
작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열정만이 아니다. 그림 작업은 꽤나 단단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다. 20대에만 해도 이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서른 살을 넘어 해가 갈수록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작가라는 존재가 운동선수 못지않은 체력 관리와 컨디션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이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그는 작가로서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조깅을 한 시간씩, 그것도 삼십 년 넘게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림이던 글이던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은 꽤나 큰 생명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현대판 농부다. 벼 대신 콘텐츠라는 작물을 생산하는 노동자랄까. 꼭 그림이나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유튜브와 같은 크리에이터 채널이 등장한 지금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그 농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엔 체력의 문제가 의외로 발목을 잡아서 마음은 굴뚝같은데 밀고 갈 힘이 부족할 때가 많았다. 반성해보자면 나의 주업이 아닌 다른 문제에 시달리며 에너지를 쏟고 낭비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인생은 ‘철’을 알아야 하는 농사임을 깨닫는다. 젊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향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기에 그렇다. 돌이켜 보면 반성할 것 투성이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당시엔 그것밖에 몰랐기에 그랬던 것 같다.
작업을 하면서 또 한 가지 느낀 점은 그동안 너무 모든 것을 나 혼자 하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후반에 들어와 처음으로 ‘협업’ 혹은 ‘분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는 오직 체력 안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조금 더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고 그것이 내 세계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닌 세상 밖으로 원활하게 흘러가기 위해서다. 지금 이 글이 그러한 ‘협업’ 작업을 위한 첫 발걸음이다. 혼자 만들고 끝나는 것이 아닌 ‘출판’이라는 새로운 분야와 손을 잡고 세상에 흘러들어 갈 준비를 하고 있다. 홀로 하는 그림 작업과는 또 다른 프로세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간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그림을 한 공간에 전시해놓을 수 있는 아담한 갤러리 카페를 만드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림도 보고, 미술사 (Art History) 수업도 들을 수 있는 그런 공간. 사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봤을 만한 일이다. 이루어질지, 꿈으로만 끝날지 지금으로썬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새파란 기대감과 호기심을 갖고 싶다. 하루라도 가능하면 새롭고 재미나게 살아 보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 삶에 대해서 묻는다면 '한 번 살아볼 만하더라'라고 담백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