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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미술 12.

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by 아난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문턱은 나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학은 간신히 졸업했지만 금전적인 어려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심리적인 혼란감과 압박감이 밀린 숙제들처럼 덮쳐오는 바람에 나는 큰 파도를 만나 허우적거리는 느낌이었다.


살다 보면 뭘 해도 잘 안 되는 때가 있는데 이 시기가 내겐 그랬다. 마치 모든 때와 장소가 어긋난 느낌, 그 어긋난 곳에서 그 어떤 결실도 얻지 못한 채 헛바퀴 도는 느낌. 앞이 깜깜한 느낌. 새벽 4시나 5시 정도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불안감으로 잠을 설치던 시기였다. 삶은 준비되지 않은 인간에게 참으로 매정할 수도 있음을 배우게 된 때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캐나다의 서스캐처원(Saskatchewan)이라는 고장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하던 일이 잘 안되어서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런 기회가 생긴 것이다. 어머니의 지인분이 숙박업을 인수해서 운영하게 되었는데, 혼자 시작하시는 것이라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로 철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가족단위로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던 숙소였다.


처음 가 본 그곳의 분위기는 참으로 조용한 동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기는 무척 맑았고, 밤에는 하늘에 무수히 뜬 별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순박한 편이었다. 시골 마을이라서 그런지 동네에 볼 만한 것, 갈만한 곳이 없었다. 동네에 하나 있는 극장에서는 하루에 딱 한번, 저녁 8시에 단 하나의 영화를 상영했다. 마트에서도 캐쉬대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내가 그곳에 처음 도착한 것은 9월 즈음이었는데, 밥반찬으로 뒤뜰에서 직접 딴 토마토와 호박, 감자 등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엔 쉽게 아프고 피곤한 편이었는데 그곳의 맑은 공기 때문인지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땅의 기운이라는 것일까?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주는 힘을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림을 그리고 뭔가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고,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나를 고용하신 그 분과의 관계가 쉽지 않았던 점이다. 그것은 내가 미리 짐작하지 못헀던 어려움이었다. 어머니 친구분이었던 그분과는 내가 기대했던 그런 따뜻한 관계는 이룰 수는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달랐고 성격과 성향 역시 많이 달랐다. 그래서 아쉽게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일하는 관계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전까지 한국에서 인간관계와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들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서스캐처원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평범하게 노동하고 밥 먹고 자는 시간들은 내 지친 몸과 영혼에 휴식기를 가져다주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밥을 많이 먹었다. 내 안에서 뭔가가 자꾸 섭취하게 만들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먹었다기보다 다시 살아나려고, 에너지를 꾹꾹 채우려고 정말 많이 잘 먹었다. 그만큼 나는 바닥까지 고갈되어 있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나 자신을 잘 먹이고, 잘 재우려고 마음을 많이 썼다.


그전까지는 사실 먹는 문제에 많이 소홀했다. 요리에도 영 취미가 없었던 터라 끼니는 대충 때울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어쨌든 어르신과 함께 살다 보니 정말 밥다운 밥을 식탁에 앉아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혼자 인터넷을 하면서 책상에서 먹는 밥이 아니라 밥다운 밥을 식탁에 앉아 함께 먹는 것이 한 영혼을 이렇게 위로하는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다른 건 몰라도 함께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건 지금도 그분께 감사하고 있다.


평범한 노동, 건강한 음식의 섭취, 영혼을 충전하는 깊은 잠, 이 3 가지가 충족이 되니 그림에 대한 생각도 다시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림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때 깨달았던 것은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균형이 이루어져야만 깊은 영감(Inspiration)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이다.


어르신과 함께 살며 많이 부딪치고 서로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함께 지내며 균형 있는 삶에 필요한 질서가 어떠한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처럼 일을 빠르고 스마트하게 처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고지식할 정도로 원리 원칙을 따르고 때론 심한 잔소리를 거침없이 하시는 어르신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매일매일을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어떤 기회를 만들어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서 악역을 자처하고 나타나는 인연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있는지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뒷 뜰에서 난 토마토는 무척 달고 신선했고, 그곳의 공기는 얼마나 시리도록 맑던지 기억한다. 고요하다 못해 고독하게 느껴지던 시골마을은 그렇게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서스캐처원은 내가 처음으로 하키장을 구경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하키로 유명한 나라이지만 스포츠에 영 관심이 없는 내가 일부러 그런 곳을 둘러봤을 리가 없다. 때마침 마을에는 작은 하키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선 주로 중고등학생들의 하키 시합이 열렸다. 겨울이 되면 상상 이상으로 엄청 추워지는데, 동네 사람들이 딱히 운동할 곳이 없었기에, 하키장 안에는 하키 링크 주변으로 걸을 수 있는 트랙이 있었다. 가서 걷다 보면 자기 체구보다 훨씬 큰 하키복을 입고 하키 연습을 하는 꼬맹이들이 보이곤 했는데 정말 귀여웠다.


돌이켜보면 지금도 신기하게 생각되는 것은 내가 일하던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거대한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차를 타면 끝없이 동으로, 혹은 서로 갈 수 있었다.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틀 정도 기차 여행을 하는 경험은 상상도 못 했을 터다.


토론토로 가고자 기차를 탔을 때는 1월, 그야말로 한 겨울이었다. 창밖으로는 산타 할아버지 마을처럼 눈이 쌓인 키 큰 나무들과 얼어붙은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창 밖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그러다 배가 고프면 뭔가를 먹기도 하고, 심심하면 노트북을 열어 영화를 보기도 했다. 기차 안에서는 작은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는데 아마추어 음악가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했다. 여행을 하려고 마음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 내가 이 곳 저곳을 경험하고 돌아다니며 살았으니 이도 어찌 보면 참 재미있는 팔자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일에 시달리며 진기가 쭉 빠졌던 나는 서스캐처원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6개월 정도를 지내며 에너지를 축적했고, 다시 토론토를 향해 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모을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나름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시간이다.


토론토로 간 나는 고등학교 시절 밴쿠버에서 그림을 지도해주시던 은사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은사님도 개인적인 일로 토론토에 머무시던 때였다. 나는 그렇게 선생님의 격려와 응원 하에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그림을 통해 뭔가 이뤄보자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당시 나의 자신감은 바닥을 찍고 있었고 흙탕물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호수를 들여다보고 있는 막막한 느낌이었다. 그냥 다시 살아 보려고, 용기를 얻어 보려고 그렸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과자 부스러기처럼 흩어진 나라는 존재를 다시 하나로 그러모을 수 있는 방법, 원래의 나로 원상 복귀하는 유일한 길 같았다. 당시 나는 불안함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새벽녘 눈이 절로 떠지며 초조한 마음이 올라오고 가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분노도 만만치 않았다. 모든 게 자신 없고 세상이 막연히 춥게만 느껴졌던 그런 때였다.


슬프면 슬픈 대로 그런 마음을 실어 그렸고 때로는 다시 기본적인 드로잉을 공부하며 연약해진 멘탈을 강화시켰다. 대단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그냥 다른 화가의 작품을 베끼고 따라 그리기만 해도 마음이 많이 정리되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사람의 인생은 그 자신이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에 따라 크게 변한다는 아주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림 그릴 때 느낄 수 있는 집중력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은 나에게 안식처이자 기도처였다.


Artist study, white conte on craft paper




















다른 작가의 그림을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작업인 Artist Study. 기본적인 드로잉 훈련은 어지럽고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지점에 마음을 집중시킨다.


과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드로잉 훈련은 뇌의 인지 능력과 객관적인 사고를 촉진시키는 작용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Orpeus, acrylic on canvas







저승세계의 왕 하데스로부터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Eurydice)를 구했지만, 저승세계를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조언을 잊고 뒤를 돌아보았던 오르페우스는 결국 다시 아내를 잃고 만다.


이제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굳게 먹은 오르페우스가 울음을 삼키며 노래하고 있다.


30대에 접어드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슬프게 과거를 돌아보고 과거의 인연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오르페우스에 빗대어 그렸다. 그림을 통해 마음속에 굽이 굽이 흐르는 슬픔의 강을 표현하고자 했다.




Time, pencil on paper







자화상을 과제로 받았을 때, 흘러가는 시간 속의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모든 것은... 변해간다.







실제 미술치료(Art Therapy)라는 분야가 따로 있을 만큼 그림은 심리 치료에 탁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직접 ‘미술치료’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와 비슷한 조건하에서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그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토론토에서 선생님의 수업에 합류했고 학생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분위기로 수업을 이끌어 가셨기에 선생님께서 테라피스트의 역할을 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우리 사회는 많은 정신적 질병이 출몰하는 사회가 되어 있다.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분노조절장애... 매우 다양한 질병들의 이름이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뉴스를 보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비인간적인 사건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할지 모른 채 그냥 견디면서 살아가다가 마음의 병을 키우고 만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사회의 불안 증식으로 이어진다. 항상 남을 조심하고 의식하고 경계해야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게 창살 없는 감옥이다.


깊은 마음의 병은 당연히 정신 전문의를 만나야 한다. 그러나 그 전 단계까지는 그림이라는 것이 의미 있는 활약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음의 병은 결국 한 사람의 의식이 어디를 향하고 집중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있는가와 연결되어 있다. 운동과 같은 적극적인 체력관리와 그림 그리기를 통한 정신적 훈련이 한걸음 한 걸음씩 이루어진다면 이는 쪼그라들고 허약해진 우리의 마음을 보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미술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에 있다. 전문적인 미술 치료사를 만나서 치료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는다면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그룹을 형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 스텝은 서로의 그림을 보며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여기서 나누는 대화가 꼭 ‘치료’에 해당되는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순수하게 그림에 대한 이야기, 즉 컬러에 대한 이야기나 그림이 가진 스토리에 대한 의견, 그림의 기법이나 재료 등 아주 다양한 대화가 오갈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 피드백을 제공할 때에 거기에는 존중과 진심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수준급의 피드백이던 그림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급자의 의견이던 상대방의 그림을 향상하고자 하는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진심은 진실한 관심이고 진실한 관심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빛이다.



BRUNCH COVER 16.jpg 피아노가 있는 풍경, pencil on paper


그림을 향상한다는 것은 그림을 그린 자의 마음의 풍경을 바꾼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외부적으로 당장 직업을 바꾸거나 거주지를 바꾸거나 하는 것 못지않게 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마음의 풍경이 향상된다는 것은 치유의 의미도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면 그 사람의 삶의 비전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발전 (Progress)’과 ‘성장 (Growth)’이 있다고 느껴지면 누구나 행복감을 느낀다. 그게 비록 작은 행복일지라도 그것은 단단한 힘을 가진 행복이다. 그것은 스스로 찾은, 타인이나 외부의 조건에 기대지 않은 그런 행복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림을 그리다 보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다시 정상 괘도에 들어선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하늘과 일직선으로 통한 듯한 그런 느낌 (Sense of Alignment)이 있다. 사람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틀어졌다 (mis-alignment)’라는 느낌 그리하여 희망을 보지 못하는 침침한 눈 때문이 아니던가.


한 장 한 장 그려진 그림은 끊임없는 자기 긍정의 과정이다. 그 작고 단단한 성취감이 나를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다시 삶이 리드미컬한 멜로디를 타게 해 준다. 나에게는 그런 게 힐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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