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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작품 11.

내 멋대로 아트 에세이

by 아난



대학시절의 마지막 해가 기억에 가장 남는 이유는 본격적으로 졸업 작품을 만드는 해이기 때문이다. 3학년까지 교수들의 지도 아래 과제를 해야 했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거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내 작품을 만드는 시간과 공간이 오롯하게 주어진다. 더 이상 철새처럼 이리저리 실기실을 옮겨 다닐 필요도 없다. 4학년이라는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내 자리 한 곳에서 작업할 수 있다.


거창할 것도 없는, 다른 학우들의 빽빽한 작업 공간 사이의 작은 한 칸일 뿐이지만, 그 전보다 훨씬 안정된 기분을 주는 건 사실이다. 4학년에 들어와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1학년 때부터 이런 시간과 공간이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대단한 교수진, 더 반짝반짝하고 높은 대학 건물 같은 것보다 그냥 이런 작은 공간을 좀 더 오래도록 쓸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래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꿈꾸는 것일 것일까. 공간이 주는 힘은 참 대단하다. 자신만의 자리를 확보한다는 건 대학사회에서도 그렇고 나아가 더 큰 사회 안에서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4학년 때는 내 작품을 평가해주시는 전담 교수님이 생기는데, 교수님도 무언가를 더 얹으려고 하기보다 최대한 말을 아끼며 내가 선택하는 쪽을 적극 밀어주셨다. 어쨌든 졸업 작품, 대학시절의 마지막 정점을 찍을 그 작품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생각한 끝에 ‘인물 초상화’를 소재로 그리기로 했다. 현대미술에 대해 배우긴 했지만 설치작업(Installation)이나 추상화(Abstract painting)는 여전히 낯설고 자신이 없었다. 늘 그래 왔듯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살아 숨 쉬는 인물을 탐구하고 그리는 것이 나한테 맞을 것 같았다.


자화상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자화상이라면 고등학생 때부터 주구장창 그려왔지만, 왠지 다시 그걸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것 같았다. 인물화는 결국 사람에 대한 탐구이며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사실적이고 담백하게 그림을 그려 나갔다. 재료는 생생하고 또렷한 색깔과 무게감을 주기 위해 유화(Oil painting)를 선택했다. 사실 대학시절이 내가 유화로 그림을 그린 마지막 기간에 해당된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엔 유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졸업을 하고 집에서 유화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았다. 냄새도 강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는 통풍시설 갖추고 있었고 오염수를 따로 모아서 처리하는 시설이 잘 되어 있었기에 부담 없이 그릴 수 있었다. 유화는 확실히 아크릴보다는 좀 더 까다로운 재료이지만 발색이나 무게감은 더없이 진중하고 파워풀하다. 알다시피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는 옛 명화들은 대부분 유화로 그려진 작품들이다.



BRUNCH COVER 11.jpg 당시 그렸던 자화상


자화상 하나를 완성하게 되었지만 아무리 인물탐구라 하더라도 사진을 보며 그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것,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콘셉트가 필요했고 작업을 좀 더 새로운 형태로 발전시키고 싶었다. 당시 나는 아이디어 스케치를 줄이 그어진 평범한 줄 노트에 하고 있었는데, 스케치를 보다 보니 그림이 일종의 글(Text)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노트 위에 글이 아닌 그림으로 내 생각과 경험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통해 ‘기록’을 하는 것.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뭔가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그림, 즉 이미지가 놓인 자리 뒤에 남겨진 노트의 줄은 일종의 시간과 공간의 매트릭스(Matrix)를 말하는 것 같았다. 실재하는 것 같아도 늘 변화무쌍하기에 손에 쥐려 하면 없어지는 그 실체가 모호한 매트릭스, 허공, 그 어떤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신비한 시공의 설계도(Divine Matrix)이자 그 무엇으로도 나툴 수 있는 잠재력, 혹은 우주 그 자체. 그것을 줄이 그어진 노트라는 형식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나는 이러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BRUNCH COVER 12.jpg I am ready now!, oil on canvas


이 노트라는 배경 위에 ‘기록’ 된 것도 다름 아닌 내 모습, 자화상이었다. 첫 자화상과 다르게 이때 그린 자화상은 당시의 내 모습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다. 나는 마음속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있던 시절.

무엇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편견과 판단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하루하루가 즐거운 놀이 같던 시절.

어제에 대한 회한은 없고 내일에 대한 기분 좋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던 그런 시절.


좌절감과 죄책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던 시절.

사람이라면 가장 그리워하고 다시 회귀하고 싶은 그런 순간들.

뭔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당시의 나는 그 순간을 다시 한번 그림을 통해 부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명료하게 비춰줄 어떤 따스하고 밝은 빛을 갈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밖에서 헤매며 찾아다닐 필요 없이 직접 내 안에서 찾아 꺼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콘셉트는 잡았지만 이 작품 하나가 완성되는 과정은 꽤나 오래 걸렸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약 3개월 정도가 걸렸는데 그 이유는 도중에 많은 수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주변 학우들의 그림을 홀낏홀낏 많이 보게 되는데, 내 그림처럼 사실적인 인물화는 드물었고 그보다는 훨씬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의 추상적이고 파격적인 그림을 보다 보면 내 그림이 어쩐지 평범해 보여서 뭔가를 바꿔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기존의 이미지 위에 이런저런 이미지를 덧붙이며 다양한 실험을 했다. 이렇게 그림 위에서 좌우 충돌하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그냥 네 방식대로 하라고.


졸업학기의 전담교수님과 친밀한 교류가 거의 없었을 때였다. 뵐 때도 많지 않았고 대화도 많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교수님들과 긴밀한 교류나 상담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했고 교수님께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잘 알지 못했다. 내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비전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혹은 단순히 좀 더 밝은 마음과 호기심의 부재였을지도 모르겠다.


졸업학기 담당 교수님은 나이가 많으신 남자 교수님이셨다. 창백한 하얀 얼굴, 하얗게 샌 머리칼, 병 차례가 많으셨기 때문에 등도 구부정하셨다. 어딘지 아파 보이는 신체를 가지신 그분이 꼭 유령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이 내 그림을 보며 조용히 내놓으신 이 한마디는 그림을 가지고 씨름을 하고 있던 나에게 명쾌함으로 다가왔다. 나는 지저분하게 덧붙여 있던 이미지들을 하나둘씩 깨끗하게 지워냈다. 그리고 원래부터 있었던 주제, 어찌 보면 조금 심심해 보일지 모르는 그 인물화를 정리해서 화면 안에 남겨 두었다.


그 해의 졸업 작품상은 수채화로 추상화를 그린 어느 학우의 몫이었다. 자유롭게 펼쳐진 느낌을 주는 분명 좋은 작품이었다. 나의 졸업 작품은 대단한 상이나 성과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내 방식대로 그려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대학의 졸업학기가 나에게 준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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