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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시간

by 아난
[게으른 시간] 스케치북에 펜, 크레용, 연필




이번 한 주는 상당히 게으른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내 자신이 게으르고 나태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 알면서도 그 나태함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느낌이랄까.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TV를 시청하며 간식을 먹으며 그렇게 멍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음주는 안하는 사람이지만, 종일 TV 앞에서 긴긴 시간 멍때리고 있을때는 이게 취한 상태랑 뭐가 다른가 싶어진다. 술이 정신을 무디게 해서 속시끄러운 마음 속 사정들을 가라앉히듯 영상을 보는 것도 정신적 마취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속에선 '너 이러다 진짜 망한다.', '이 바보야' 라는 질책이 머리 속을 두두리고 있지만 그래도 그 유혹에 못이기고 그렇게 될 때가 있다. 정확히 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돌이켜보면 내가 무언가를 내심 두려워하거나 막막하게 여기고 있고, 그것을 정면돌파하고 싶지 않을때 그렇게 딴짓을 하며 회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언가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 일이 좀처럼 쉽게 삼켜지지 않을때,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위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생각해보면서 차분하게 해야 할 일을 너무 속도전으로 해내려 하거나, 머릿 속에서 정리가 안된 일에 대해서 선택을 스스로 강요할 때, 마음 속에서 이런 압박감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을 차근차근 순차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조급증을 자주 느끼는 편이다. 이럴때는 대게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무언가를 증명해보이려고 애쓴다는 것도 느꼈다. 고치려해도 잘 안고쳐져서 늘 애를 먹는 편이다.


내가 바르고 규칙적인 습관이 몸에 익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크게 아쉬울 때가 많다. 언젠가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정웅 님이 인터뷰에서 TV 보면서 시간낭비하는 것이 아깝다 라는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에 대해서 철두철미하신 분이었다. 모든 TV 시청이 시간 낭비는 아니겠지만, 나같은 경우는 그 분 말씀대로 시간을 낭비한게 맞았다. 방향성을 잃고 남들은 자신의 삶을 열심히 구성하는 데 쓰는 시간을 그렇게 써버린 것이다.



"아이에게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라고 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끝까지 타협해서는 안된다."

-손웅정 감독, 인터뷰 중 아이 교육에 대해서



난 내 자신에게 스스로 엄격한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정말 어의없게 고삐 풀린 채 보낸 시간도 많다. 그런데 사실 그것이 '게을렀다'기보다는 갈피를 못잡았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마음이 정리가 안될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매번 반성은 하지만 행동 교정이 그닥 잘 되지는 않는터라, 넘어질때 넘어지돼, 자빠져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자.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복귀하도록 노력하자 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놀더라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가진데, 차라리 좀 창의적으로 놀았으면 시간이 아깝진 않은데, 최악으로 게으른 패턴, 늘 하던 패턴대로 반복해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게 문제다. 간식을 꾸역꾸역 먹으며 밀린 드라마나 영화보기에 빠져든다. 달콤한 휴식 같지만 영양가 없는 선택이다. 에너지가 리프레쉬되는 것도 아니고, 한 자리에 붙박이 가구처럼 앉아서 오랜 시간 TV나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한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라니. (내가 그 자세 그대로, 그 정도 오랜 시간을 명상하는데 썼다면 나는 정말 득도했으리라 본다.)



차라리 밖에 나가서 새로운 것을 보러 다닌다든지, 사람을 만난다든지, 공연을 본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사람이 많고 익숙치 않는 장소에 가는 일이 뜸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변명이란 것을 해보자면, 외출을 통해 정말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감동을 받았던 적이 많지 않아서 그랬던 것도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고, 피곤하다' 외에 대단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의 도시는 어딜가나 비슷비슷한 풍경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똑같은 편의점과 빵집, 엊비슷하게 보이는 상가 건물들, 어디 좀 괜찮은 곳이다 싶으면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물론 이리 변명을 해도 결국 나의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은 바꿀 수는 없겠지.



그렇게 일주일을 시원하게 허송세월하고, 드디어 글을 연재해야 하는 날이 왔는데, (개발새발 쓴 것 같은 일기장 같은 글도 끈기있게 연재일에 맞춰 연재해보기로 결심한 탓!) 일주일간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그리 흘러 보내고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나는 이 바보같은 일주일, 돌이켜보면 마음에 찔리고, 스스로 푸념하게 되는 나의 게으른 시간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 한 주간 나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드라마 몇 편을 정주행하는 데 쏟아부었다. 그 이야기 속을 달리며 나는 세상의 시름같은 국내 뉴스를 보지 않았고, 내 마음 속의 한가득한 부담을 저편에 묻어두었다. 나는 그렇게 일주일을 다른 세상에서 살다왔다. 드라마 안에도 고단한 인생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스크린 안의 고뇌는 훨씬 멋지고 예뼈보였다. '저 정도 고뇌라면 제법 할만 한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스크린 속의 주인공들은 추리닝에 쓰레빠를 찍찍 끌고다녀도 빛이나 보였다. 자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왜이리 다들 완벽하게 예쁜지.


게중에는 이미 몇번 봤던 드라마도 있고, 본 적이 없었던 드라마도 있었다. 이제는 제법 오래된 옛날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느꼈던 점은 이 드라마라는 것이 역시 한 시대의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닥 멋지게 들리지 않는 대사를 마치 멋진 한마디처럼 내뱉는 배우들을 보자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음을 찐하게 체감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바보야, 어떻게 네 꿈을 포기할 수 있어. 내가 사랑했던 너는 이렇게 맥빠진 모습이 아니였다구!" 하면서 힘빠진 주인공을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사회는 한때 개인이 자신의 꿈을 향해 겁없이 돌진하는 것을 아주 멋지게 보았던 시대가 있었다. 그것만이 가장 아름답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듯이. 반면 비교적 최근에 나온 드라마에서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고, 꼭 남들이 말하는 성공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메세지가 주류를 이룬다. 아름다운 패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드라마도 많아졌다. 현실의 찌질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스토리가 많아진 것이다.


참 재미있는게 지금은 촌스럽게 느껴지는 그 옛날 드라마의 대사도 당시에는 참 트렌디하고 그럴듯하게 들렸다. 내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자기 의지로 살고 있는 것 같아도 결국엔 사회에서 밀어주는 큰 아이디어를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쫒아가며 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드라마라는 것은 재미있지만 너무 멍하게 보다보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가치가 매우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질문하지 않으면 본질을 깊이 보는 법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이란 그 정도로 사람의 눈을 미치게 만든다. 어느 시대나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현대’다.

-[생각의 도약],도야마 시게히코


아주 올드한 옛 드라마 말고도 전에 보지 않았던 한 작품을 정주행 했다. 그것 역시 최신 작품은 아니었고 벌써 몇년전에 종영한 드라마였다. 당시에는 꽤 인기가 많은 드라마였으나 좀 파격적이고 내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난 지나치게 새로운 것이 싫고 파격적인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확실히 얼리어답터는 아니다. 그렇게 남들이 그 신선함에 열광할때 시큰둥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나서 혼자 보면서 '뭐야, 재밌잖아.' 하는 식이다. 어쨌든 퍽 재미있게 보았다. 이 작품은 몇년전 작품이긴 해도 아이디어가 그닥 올드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소설 작가라는 꿈이 있었으나 그 꿈은 이루어진 적이 없고 이제는 소소한 취미가 되었다. 뭔가를 써보긴 했으나, 정식 출간제의를 받은 적도 없고, 공모전에서도 숱하게 고비를 마셨다. 소설 작가들이 소설을 쓰게 되는 계기는 다양한데 그 중 하나가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쓴다' 라고 덤비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이 이야기를 보고 싶고, 한번쯤은 이야기가 되어볼만한 그런 스토리라고 생각하는데, 아직 내 취향에 맞는게 안나왔으니, 까짓껏 내가 쓴다 라는 마음이었다.


쓰는 것 까지는 좋은데 이것을 타인이 보기에도 설득력있고 재미있게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열심히 써도 남들 눈에는 어설퍼 보이는 점이 많았으리라. 그래서인지 어쩌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 작가들의 미친 필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저런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하면서. 분명 그들도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한 나날이 있었을 건만, 완성된 작품만 보는 나는 그런 것을 까맣게 잊은채 그들의 존재가 그저 언어의 마술사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그 작가들은 그들의 하루 하루를 펜이라는 검을 갈고 닦으며 살았을 것이다. 자빠져서 게으른 시간을 보내긴 보다는.


드라마 정주행으로 날린 나의 일주일. 바보같은 일이었지만, 분명 단 한가지라도 좋은 점도 있으리라 라고 생각하며 이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긍정적인 경험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 여름 휴가같은 비스무리한 느낌이었다. 이번 여름은 어디 따로 휴양지를 가지 않으니, 이런 식으로라도 나에게 보상을 한 느낌이 든다. 물론 매우 쪼잔하고 스케일 작은 보상이기도 했지만, 좀 풀어진 채 놀고 싶었던 마음을 약간은 충족한 것 같다.


둘째, 대단한 리프레쉬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마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으며 약간은 통쾌해진 기분도 들었다. 현실에서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내가 드라마 주인공이 되어 과감한 액션 한바탕을 벌인 느낌이었다. 보았던 드라마가 퍽 웃겼던 드라마라 보면서 많이 웃었던 것도 있다. 사람이 유머감각이 생기고 웃을 일이 생기면 쓸데없이 지나치게 엄숙하고 진지한 태도는 내려놓고 좀 뭐랄까, 마음이 젊어지는 것 같다.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청춘', '젊음', '도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조금은 발랄한 마음으로.


셋째, 드라마 주인공처럼 내 모습이 블링블링한 것은 아니지만, 내 삶의 구석구석을 사랑하고, 빛나게 만들고 싶다는 작은 열망을 느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행복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이런 게으른 시간이 계속 되면 결코 안되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처럼 삭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이렇게 자빠져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지 않도록 좀더 내 마음을 돌보고 싶다. '이거 해야돼' 하면서 자신을 압박하기만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결국 이런 게으른 시간들은 내가 내 마음 속에서, 내 정신 속에서,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지하지 못하고 무디게 지나치려 했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기에. 아무리 생활계획표를 짜도 작심삼일로 끝나는 일이 많았는데, 그냥 외적인 행동을 수정하려 들기 전에 내가 나를 좀더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마음을 돌아보고 지켜보고 스스로를 추스릴 수 있는 그런 힘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없이 게을렀던 지난 주를 이제 그만 용서하고 이번 새로운 한주를 기꺼이 살아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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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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