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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Dec 23. 2021

나의 코로나19, 투병기(2)

병원 생활 등.. 한참 아팠던 때의 이야기

2021년 8월 초에 확진이 되어 열흘 동안 병원생활을 했다.

코로나라는 병 자체도 무섭지만, 이 병에 걸린 직후에 느꼈던 미움과 원망, 자기 환멸 등등.. 속을 썪는 일이 더 힘들었다.


4개월이 지났지만 글 쓰려고 다시 기억을 더듬으니, 마음이 또 아프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 지나니 그 기막힌 일이 희미해지고 있다. 



01.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병에 걸리고 싶어 걸린 사람은 없겠지만...

건소 전화받고, 수요일(7월 28일) 1인 미장원 가서 머리를 자른 일을 후회했다. 내가, 하필, 왜, 그날, 거기를 갔을까.


혹시 확진된다면...

앞으로 나에게 닥칠 일들 생각하니 아득해졌다. 그날 밤 누워서 두근두근 뛰는 심장소리를 느낄 정도로 긴장이 됐다. 찜하게 며칠 계속되던 밭은기침과 이상하게 기분 나쁘던 목 통증이 냉방병이 아니었구나 싶어 뜩했다.


반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아침 보건소에 갔다. 무척 더운 날이었다. 9시 전에 갔는데도 거리두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늘어선 사람들에 놀랐다. 소문으로만 듣던 아픈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일요일에 검사를 받은 탓에, 검사 결과를 그다음 날 아침에 알게 됐다. 또 한 번 뜬눈으로 밤을 보내게 됐다. 기침이 쿨룩쿨룩 나면서 식은땀이 났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내가 뭐든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고 계속 빌었다. 그런 중에도 그래도 KF94 마스크 썼었고, 25분밖에 안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일말의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이 틀린 적 없이,

사실이 됐다.


남편과 아이는 음성이라는 문자가 9시 8분에 동시에 왔지만, 나는 30분이 넘도록 자를 받지 못했다. 대신 보건소 직원의 "확진되셨습니다." 전화를 받았다.




02. 무너져 내리다.


"엄마, 안녕..."


확진된 다음 걱정됐던 건 남편과 아이였다. 나 때문에 두 사람도 위험할 텐데.. 간염 됐음 어쩌지.

아파트 앞에 주차되어 있는 앰뷸런스에 올라타는데, 집에서 내려다보던 아이가 조용히 엄마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순간

무너져 렸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엉엉.. 소리 내며 었다.


엄마 안녕.. 하던 아이의 목소리는 나중에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 생각이 났다. 그 생각하면 4개월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난다.


내가 입원한 다음 일주일 후, 자가격리 상태였던 아이와 남편도 확진이 되어 보호소로 가게 됐다.


아이가 태어난 2017년 11월 말부터 2021년 8월 초까지 단 하루도 아이와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는데...

본의 아니게 3주를 떨어져 지내야 했다.


심비대증(심장이 부어있는)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는 나는 몇 번의 전화를 받고 기다리다가 병원으로 가게 됐다. 



03. 원생활


외딴 병동인듯한 건물에 4층부터 8층까지 코로나 환자들이 있다고 했다. 고층일수록 위험한 환자들이라고 했는데, 난 다행히 4층에 있었다.


경증이라 해도 아프긴 아팠다.

보통 겪는 감기보다 훨씬 더 아팠다. 통증 정도가 달랐다. 근육통과 목 통증, 고온에 시달렸다. 밥맛도 없었다.


내 침대는 음압 기라는 기계 바로 옆에 있었다. 웅웅웅웅.. 하루 종일 엄청난 소음을 들어야 했다. 원래는 5인용 일반병실이었던 것 같은데, 4인용으로 경되면서 음압기 2대를 가져다 놓은 듯했다.


전염병 환자여서인지 환자복도 없었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옷을 번갈아 입었다. 침대 시트도 부직포로 1회용이었다. 그걸 일주일간 그냥 썼다. 이불도 임시용인 듯했다. 내가 나가면 버려질 것 같았다.


옆사람과는 투명한 비닐커튼을 사이에 두고 누워있었지만, 앞사람과는 아무 장막이 없었다. 같은 질병이니 같은 환자끼리 있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kf94 마스크를 24시간 끼고 있으라고 했다. 생활할 때도 심지어는 잘 때도..


생활보호센터에서 지내다가 폐렴이 심해져 오신 분들도 있고, 심하게 기침을 하는 분도 있어서 마스크를 꼭 끼고 있었다. 밥 먹을 때 빼고.


병실에서만 머물러야 하니, 점차 밥맛도 없어졌다. 두고 온 가족을 하다가 체해서 나중에는 세끼를 죽만 먹었다.


8월 초 당시에 확진자가 1,800명 정도 됐다.

의료진이나 관리(청소 및 배식) 하시는 분들이 지쳐 보였다. 12월 현재는 7천 명에 육박하니.. 쉽지 않을 것 같다.



04. 미움과 미움에 관하여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속에서 끊임없이 미움이 솟아났다.


병이 옮게 된 미용실 원장님이 원망스러웠다. 내 앞에 의심스러운 분이 왔다 갔다면서, 왜 환기를 하지 않았을까? 용실 원장님이  딱 2주 있다가 다시 미용실을 연 사실을 앱에서 확인하고는 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도 피해자였을텐데... 당시에는 무 원망스러웠다.



나 때문에 자가 격리되면서 독박 육아를 하는 남편한테 미안했다. 남편의 회사에도, 아이의 유치원에도 미안했다.

내가 병원으로 떠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가 이틀 열이 38도까지 올랐다고 했다. 아이가 아프고 다음날 남편도 근육통과 고열에 시달렸다. 두 사람도 보건소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고 확진이 됐다.


자가격리 상태에서 확진이 된 거라, 다행히 회사와 유치원에는 피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남편이 회사로 복귀했을 때, 은근한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병원에 있을 때는 남편이 카톡으로 툭툭 내뱉는 말이나, 전화 걸어서 나한테 화를 낼 때 화가 많이 났다. 나도 아프다고. 나도 환자라고.. 화부터 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미장원 원장님한테 화가 났듯 남편도 나에게 화가 많이 났을 것 같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미움을 받고..



아파트 계단 창문에 며칠동안 누워있던 매미. 죽어도 왜 거기서 죽었냔 말이다. 뭘 말해주고 싶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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