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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하고 답답했던 여러 순간들을 나열해 보다.

청자몽 연대기(14)

by 청자몽

스스로가 한심하고 답답했던 여러 순간이 주르륵 머리를 스쳐간다. 한번 나열해 본다.

열네 번째 이야기 :



지나고 보면 순간이었는데!
어느새 다 지나고, 또 지나버렸다.


아이와 문방구에서 산 아이스크림 꾸미기 장난감. 크림 비슷한 접착제를 두르고, 여러 가지 모양을 얹으면 된다. 절대 녹지 않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완성됐다. ⓒ청자몽

당시에는 꽤 고통스럽고, 계속 이러고 살면 어쩌지? 두려운 때가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다. 답답하고, 앞도 안 보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답답해진다. 지나 놓고 보면, 짧은 순간이었는데...

지나 놓고 생각을 해보니 그렇다. 이런 걸 당시에는 몰랐다. 한번 나열해볼까 한다.




대학 시험 한번 떨어지다.


자격증 시험, 1년 내내 떨어지다./ 딴 자격증 중에 3개는 1년 내내 떨어지다가 12월에 붙어서 받음.


공무원 시험 4년 내내 떨어지다.


방학 때마다 노량진에서 보내고, 졸업하고도 8월까지 노량진에서 공시생 생활을 하다.


운전면허 3번 떨어지고 4번째에 붙다.


면접만 70번을 보다. (이력서는 수백 번 보내보다)


취업이 잘 안 되다./ 면접 보는 족족 떨어지다.


어렵게 취직한 회사에서는 '여자', '나이 든 여자' 또는 '국문과 출신' 등등의 이유로 적응 자체가 힘들었다.




술 못 마시는데, 회식자리에서 중요한 얘기가 오간다니 2차든 3차든 갈 수 있으면 다 가야 했다.


실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는데 생각처럼 잘 안 되다.


학연이나 지연 등등이 꽤 중요한 이슈임을 알게 됐다. 하다못해 군대라도 다녀와야 할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다.


일 잘하면 잘해서 시기받고, 못하면 못한다고 까이고. 지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일하면 독종이라고 쑤근거리고, 힘들어서 손 놓으면 게으르다고 뭐라고 하고. 어쩌라고.


같은 여자끼리도 힘들 때가 있었다. 세대차이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거 또는 약간 내가 포기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남자분들과 일하는 방법도 익혀야 했다. 하는 일의 특성상 남자분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받으려고 노력했다.


초창기에는 화나면 받아버리고, 악쓰고 싸웠는데.. 뭔가 점점 그렇게는 답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하는 걸 중요시하다 보니, 결혼도 늦어지고 아이는 생각도 못했다. 나이는 점점 더 많아져갔다.



자신에 차 날아간 미국에서 적응을 잘 못했다. 영어도 안 되고, 업무도 치이고, 스스로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계급장 뗀, 아무 타이틀 없는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것이 많음을 깨닫다.



영어 못해서 무시당하는 건지, 인종차별 당하는 건지.. 둘 다인건지? 헛갈렸다. 회사도 힘들지만, 그냥 남의 나라에 사는 것도 적응이 잘 안 됐다.


어디든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너무 주눅 들지 말고, 어깨 쭉 펴고 당당하게 할 이야기를 해야겠다 결심했다. 발음과 어순 등 생각 덜 하고, 전달하려는 마음에 신경을 썼다. 언어는 도구일 뿐이었다.


개발자랍시고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니며, 최신 기술 운운하며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을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과연 사람들에게 필요한 무엇을 만드는가? 아니면 내가 나를 뽐내려는 걸 만들고 있나?



마흔 살 전후로 재취업이 되지 않아 긴 기간 동안 좌절하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고 여러 번 시도했다. 실패할 때마다 저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운 좋게, 늦은 나이에 3번 만에 성공했지만.. 오랜 기간 계속됐다면.. 세상 모든 난임 부부를 응원한다.




일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여건상 그만둬야 해서 좌절했다.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야, 정말 매일 아무 대가나 보상도 없이 중요한 집안일을 소리 없이 하는 분들에 노고에 감사하게 됐다. 그전에는 몰랐었다. 그래서 미안해졌다.



여러 가지 병명으로 잠깐씩 고통을 당하지만, 좋은 의료체계 안에서 치료받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대한민국에 가장 고마워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




모든 이들과 연락이 끊어진 후에야, 깨달은 바가 있다. 너무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말걸. 너무 심하게 상처받지 말걸. 그냥 주변에 소중한 이들과 잘 지내면 되는데.. 오지라퍼도 아니고. 너무 연연하고, 애쓴 게 후회가 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여겼는데...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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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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