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탄생(17)
30년도 더 된 일인데.. 이제 이해가 간다. 철없는 딸은, 철없는 엄마가 되어서야 이해를 하게 됐다. 그때 대학 떨어진 건 난데 왜 엄마가 울었는지를.
엄마탄생 열일곱 번째 이야기 :
나는 철없는 엄마다.
철없는 내가 뒤늦게 엄마가 됐다.
엄마가 됐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았다. 여전히 철이 없다. 철은 대체 언제 드는 건지 모르겠다. 영원히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철없는 엄마다.
엄마라면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다.
우아하고, 품위 있고, 참을성도 많고.. 모성애도 넘치며 사랑도 많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나의 철없음에 혀를 끌끌 차며, 스스로를 다그치는 날이 더 많다. 넌 엄마가 돼가지고 그것도 못하니? 좀 참지. 뭘 그런 것도 못해.
드라마나 소설, 영화 속에 너무 근사한 엄마들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현실에 없으니까 상상 속에서라도 이상적인 엄마상을 그려서일까? 아무튼 '엄마'라고 불리기엔 약간 많이 모자란 엄마다. 철이 덜 들었다니까.
그러다가 문득,
아이 나이대로 엄마 나이가 간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니까 내 나이는 사라진 거야. 8살(만 6세) 짜리 엄마인거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같이 큰 거야. 할 수 없지. 아무튼 그래서 대충 8살이 됐다. 곧 초등학교엘 간다.
그때의 엄마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기 싫었는데. 어느 시절의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랬었구나.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을 그녀가 눈에 밟힌다.
좀 친절하게 말해주지.
좀 더 사랑 좀 해주지.
화 좀 덜 내지. 왜 그랬을까?
가 아니라..
그래서 그때 버럭버럭 화를 냈었군. 마음은 아니었을 텐데, 왜 겉으로는 그랬을까. 분명히 미안했겠구나. 체력이 안 되는데 혼자 다 할려니 힘들어서 자기한테 화내는 거였겠구나. 같이 좀 하자고 하지.
등등... 그 시절 삼 남매를 키우던, 어느 순간에는 혼자 가장의 역할과 큰 결정까지 다 해야 했을 엄마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힘들었겠구나.
그때도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도저히 납득은 가지 않았다. 속상하고 서운한 게 더 컸으니까. 그리고 나도 어렸으니까...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보니, 할 말이 없다.
많이, 굉장히 많이 외로웠겠구나. 그런데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나 보다. 방법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쉬이 자신을 바꾸기 어려웠을 것 같다.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입 시험 떨어진 날, 엄마가 울다
대입 합격자 발표 나던 날, 엄마는 서럽게 우셨다. 시험본건 난데? 막상 당사자인 나는 어떻게 하지? 하고 망연자실했는데.. 엄마가 많이 우셨다.
아니 떨어진 건 난데, 왜 엄마가 우는 거야?
그게 더 이해가 안 갔다. 좋은 학교도 아닌데 떨어져서 창피하셔서 우나보다. 내가 잘못했네. 정도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30년도 훨씬 더 넘게 지나고, 이제야 진짜 이해가 간다. 엄마는 내가 안쓰러워을 거다. 재수하며 힘들어할걸 생각하니 미리 걱정이 되셨나 보다. 나름 20년 인생 첫 실패인데, 얘를 진짜 어떻게 하면 좋으니. 정말.. 하는 생각이셨을 거다.
어떻게 아느냐고?
유치원 졸업식날 막상 내가 펑펑 울다 보니, 문득 깨달음이 왔다. 아니 졸업하는 건 딸아이인데, 엄마인 내가 왜 울지? 하면서 울다가 알았다.
그때 엄마가 그랬을 거야.
앞으로의 날들이 걱정되어서. 내가 고생할까 봐, 그리고 내가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엄마 생각에도 무서웠을 거라고.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한테도 첫 인생 좌절이었을 테니 걱정됐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 이제 알았다고?
일찍도 알았구나. 이렇게 하나씩 둘씩.. 나도 다시 알아가는 건가보다. 그렇구나.
그나저나 이제 유치원 졸업식인데도 이런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이제 8살만큼 이해를 했으니.. 역시 이래나 저래나 난 철이 없는 게 맞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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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탄생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