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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Nov 21. 2024

마침내, 아홉 번째 손님이 계약을 하다.

이사갑니다(3)

평소 같으면 짧게 느껴졌을 17일(8.30 ~ 9.16)이라는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토요일에 온 손님이 계약을 했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슬슬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겠다.



이틀에 한번 집 보러 손님이 온다는 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청자몽

8월 30일부터 집 보러 손님이 오기 시작했다.

교통도 좋고, 지리적 상황상 저평가된 아파트라서 금방 계약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손님을 맞았다.


첫 번째에 계약이 될 줄 알았지만, 집주인이 계약을 취소했다. 원하는 세입자를 다시 찾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이후 8번의 손님들이 더 왔다. 마침내 아홉 번째 손님이 지난주 토요일 계약을 했다. 와우! 아홉 번째 손님이 계약할 줄 알았다.


좌충우돌 손님맞이 상황을 적어본다.




기억에 남는, 첫 번째 손님


첫 번째 손님은 3시에 왔다. 휴가까지 내고 왔다는, 이제 돌쟁이 아기를 둔 부부였다. 땀이 비 오듯 하던 더운 날, 후다닥 치우고 물걸레질까지 깨끗이 해놓은 상태였다.

장난감을 덜 치운 상태라 약간 불안했지만, 부동산 아주머니는 괜찮다고 치우지 마라고 하셨다. 첫 번째 손님인 남편분이 꼼꼼하셨다. '모든' 문을 다 열어봤다. 신발장 좁고 낡았다. 베란다 모두 열어보고, 창고도 열어보고, 바깥문도 다 열어봤다. 아..



"여기 문도 좁은데 세탁기를 어떻게 들여놓으셨어요?" (작은 방 창문 뜯고, 세탁기를 넣었다.)


"신발장 폭이 넓네요." (낡고 오래되고 한 번도 손 보지 않은 신발장. 요새 '좋은 틀'이 많아서, 신발을 여러 개 한꺼번에 보관할 수 있다.)


"창고가 그래도 있군요. 열어봐도 되죠?" (아.. 내 대답 듣기 전에 이미 열어보고 있었다아아.)



아.. 아.. 하고 놀라는 포인트가 몇 개 더 있었는데, 까먹었다. 갸우뚱갸우뚱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게 아무래도 계약은 물 건너갔구나 했는데, 저녁에 부동산 아줌마에게 전화가 왔다.

돌쟁이 부부가 계약을 했다는 거다! (아니 왜요? 맘에 안 드신 거 같은데?) 아무튼 그래서 원래 그날 6시 반과 7시에 오기로 한 손님들 모두 취소됐다는 거였다.



이후, 두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손님들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이 집을 보러 온다고 했다. 집수리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지 보고 싶다는 거다. 와서 둘러보길래 불편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몇 가지를 손보겠다 하고 돌아갔다.

부동산 아주머니 말씀으로는, 다른 세입자를 받고 싶어 해서 계약이 취소됐다고 했다. 아.. 네. 왜요? 그랬더니 아이 없는 사람들을 받고 싶어 한단다. 아무래도 아이가 있으면 집이 망가져서 그런가 보다. 하긴 우리도 아이 없이 둘이 와서 셋이 된 경우니까.

알겠습니다. 하고는 다시 손님맞이를 시작했다. 두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손님들 면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실망스럽거나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집을 깨끗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벽에 붙어있는 그림과 포스터를 다 떼어냈다. 장난감과 인형 일부를 봉지에 담아 창고에 옮겼다. 그래도 오는 분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무 낡았다는 거다.

계약이 계속 불발되자, 부동산 아주머니도 힘드신 거 같았다. 에고.. 이 집이 장난감이 많아서 그렇지 싹 치우고 없으면 넓은 집이에요. 돈 많이 벌어서 장난감 산 건지. 장난감이 많네요.

에효. 죄송해요. 장난감 그래도 양호하게 갖고 있는 건데.. 아닌가? 모르겠다. 남의 말은 생각을 한번 더 해보게 된다. 어쨌든 계속 계약은 불발이 됐고, 낡고 불편한 집에 살아서 그런가. 우린 그동안 어떻게 버틴 거지? 속이 상해갔다.

보통 6시 전후로 손님이 오셔서, 아이와 유치원 끝나자마자 후다닥 와야 했다. 7시에 오기로 하고 더 늦게 와서 배가 많이 고팠다. 빨리 좀 끝났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에 보러 오니까, 우리의 일정을 조정해야 했다.


  

"건조기 없어요? 건조기 없이 어떻게 해요? 여기 좁아서 건조기 못 세우겠다. 어우 어떻게 해." (건조기 없다. 그날 하필 선풍기로 빨래를 말리는 중이었다.)


  

"김치냉장고 없어요? 어디다 둬야 되나" (김치냉장고 없어요.)


  

"바퀴벌레 있어요?" ("나무가 많아서 그런데, 싱크대를 깨끗이 해주면 바퀴벌레는 생기지 않아요." 했더니, "그럼 결국 바퀴벌레가 있단 거잖아요?! 저 바퀴벌레 무서워한단 말이에요!" 화를 내셨다. 저도 바퀴벌레 무서워요. 싫어요.라고 답했더니, 옆에 계시던 부동산 아주머니가 "바퀴벌레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하셨다.)


  

"주차는 어떻게 해요? 차를 어디다 둬요?" (저희 집 차 없어요.)


  

"앞베란다 문이 다 낡았네요. 어떻게 살아요? 지금 손님이 사시는 집도 문이 다 낡아서 이사를 하려고 한단다. 그런데... " (이 집도 만만찮은데. 그래도 따뜻해요. 제가 틈막이랑 문풍지랑 풍지판 다 붙였어요.라고 차마 말을 하진 못했다. 그냥 그래도 집이 따뜻하다고만 했다.)


  

"화장실이 1개밖에 없네요. 어떻게 살아요?" (20년 넘은 25평 구식 아파트라 어쩔 수 없다.)


  

(너무 낡고 맘에 들지 않아서, 아예 둘러볼 생각도 없이 서있는 분들도 있었다. 태도와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등등..
에고. 우리 그동안 진짜 잘 살았구나. 그런데 언제쯤 계약이 될까? 이 상황이 끝나기는 할까? 맨날 긴장하고 치우며 기다리며 지쳐갔다.




마지막, 아홉 번째 손님


신혼부부 티가 나는 커플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딸아이보고 '예쁜 공주님'이라고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이는 신이 나서 점프를 했다.

집을 둘러보며 '넓다'를 연발했다. 다른 분들과 같이 더 작은 집을 둘러보고 왔다고는 했지만, 좋다를 연발했다. 많이 낡았는데.. 불편한 것도 있을 텐데. 많이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다른 부동산 아저씨랑 오신 바람에, 집주인이 제시한 리모델링 조건도 제대로 듣지 못했을 텐데. 좋다/ 넓다만 연발하다가 잘 봤다고 꾸벅 인사하며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마지막으로 "곰팡이가 없네요?"만 물었다. 곰팡이요? 곰팡이 없어요. 깨끗해요. 좋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이 계약을 했다고 한다.
저도 감사합니다!


아무리 휘황찬란한 말을 들어도 계약 안 할 사람은 성에 차지 않아 한다. 어차피 계약할 사람은 별말 안 들어도 계약을 한다.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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