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와 '젊어 보이는 할머니' 사이, 어드메쯤?

엄마탄생(21)

by 청자몽

"아줌마!"가 이렇게 반가운 말이었단 말인가? 네엡!! 하고 바로 대답했다. 그렇다. 현재 나의 정체성은 할머니가 아니고 '아줌마'다. 늦게 낳은 아이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일 뿐이다.

엄마탄생 스물한 번째 이야기 :



아줌마! 길 좀 물읍시다.


수돗물을 콸콸 틀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비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순식간에 내리다니... ⓒ청자몽


(장마철 비 많이 오던 날 쓴 글이다.)

며칠 전,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는 아침이었다.

어휴.. 여휴를 연발하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수도꼭지 틀은 것처럼 콸콸콸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줌마.. 아줌마.. 길 좀 물읍시다."



나한테 말하는 건가? 두리번거리다가



"네에?"



지긋한 연배의 할머니 한분이 길을 물으시는 거였다. 길에 사람이라고는, 장대비를 맞고 있는 나밖에 없었다. 나 맞다. 나 맞아. 맞아요 맞아. 하하. 아줌마라니.. 아줌마라니! 얼쑤. 아줌마가 제까닥 답합니다. 넵.



"○단지는 어떻게 가요?"


"몇 동 가시는데요?"


"○○○동이요."



아줌마라니.. 나보고 아줌마라니!

너무 좋아서, 비가 약간 덜 왔더라면 같이 걸어가 드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지. 내가 그냥 보면 아줌마 맞지. 맞아. 미쳤다고 나한테 할머니래.


○○○동이요? 저쪽으로 조금 걸어가시다 보면, 놀이터가 보이고.. 하며 길을 설명해 드렸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에고. 걱정이 되었다. 저 앞으로 걸어 나가시면 길이 보일 거예요. 비 많이 오는데, 조심히 가세요.


촤.. 촤... 쏟아지는 비에 주변 소리가 묻혀버렸다. 그리고 빗소리에 잠시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들도 쓸려 내려갔다. 그래. 아이를 늦게 낳아서 우리가 차이가 많이 나 보여서 그렇지. 그랬을 거야. 내가 특별히 이상하게 삭아 보이고 그런 건 아닐 거야.


며칠 전 속상했던 말도, 속상한 마음도 스르르.. 떠내려갔다.




아우. 할머니가 젊어 보이시네요.


방과 후 선생님께 '할머니'라는 소리를 듣고 놀래가지고 그다음부터는 아이와 같이 다닐 때, 옷을 조금 신경 써서 입고 다녔다.


그날은 민트색 펀칭 티셔츠에 하늘하늘한 긴 청치마를 입었다. 아이와 함께 도시락집에 가서 김밥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우. 할머니가 젊어 보이시네."



주문한 김밥을 비닐봉지에 넣어 가지고 오시던 할 아주머니가 '친절한' 말투로 말씀을 하셨다. 어? 저요? 하하. 저 엄마예요. (씽끗)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화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날 약간 기분이 나빴던 건, 그 할 아주머니가 어맛. 미안해요. 하고 사과를 따로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미안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씨..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그리고 설사 늙어 보인다 해도 그렇게 콕 집어서 할머니라고 하냐? 흘끗 아이를 봤다.


나만 있었으면 괜찮은데..

맨날 아이 옆에서 '모욕'을 당하니 힘들다.




모욕을 참아내는 능력


"좀 전에 엄마 기분이 조금 나빴다. 할머니가 젊어 보이시네요. 그건 또 뭔 말이여. 정말.. 차라리 애를 좀 늦게 낳았는가 봐요.라고 하지. 요새 할머니들이 정말 젊어 보이기도 하고, 이 동네는 할머니가 아이들 등하원이나 등하교 많이 시켜주니까 그럴 수도 있긴 해. 그래도 기분 진짜 나쁘다."



아이는 내 말에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늦게 아이를 낳을 때, 이거까지는 생각 못했다. 세상에는 별별 무례하고,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말을 뱉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하긴 그전에 아이를 낳지 않고 있을 때도 여러 종류의 무례한들을 많이 봤지만.


보면 나보고 할머니냐고 묻는 분들은 "너도 할머니냐?"라고 묻는 것 같이 보인다. 보통의 엄마들이 나보고 다짜고짜 할머니냐, 당신이 엄마냐, 엄마유 할머니유? 등등의 말을 내뱉지는 않는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데.. 왜 맨날 물을까?


그러고 보면, 나 자체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냥 보면 아줌마니까. 그래도 아직도 아기아기한 초등 1학년 아이와 같이 서있으면 나이 차이가 확 나보이는게 분명하다. 인정하자.


10분 전까지 맑았는데, 지금 밖에 무지막지하게 비가 쏟아지고 있다. 지나가는 소나기일 텐데.. 황당하다. 30분 내로 멈췄으면 좋겠다. 비는 우산으로 막으면 되는데, 뜬금없이 치고 들어오는 말은 뭘로 막아야 하나.


아이가 좀 더 자랄 때까지 나는 계속 무례한 질문이나 툭툭 뱉는 말들을 견뎌야 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모욕을 참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황당한 상황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 맞닥뜨리게 마련이니까..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한 늦은 엄마는, 휴.. 아이와 다닐 때는 늘 긴장한 상태로 다닌다. 늦게 아이 임신하고 낳았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 못한 상황이다. 오랫동안 '동안' 소리에 취해서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탓이다.


얼굴에 새겨진 세월을 탓하지 말자.

남보다 더 나이 들어 엄마가 된 데는, 분명 좋은 장점도 있을 것이다. 이참에 머리에 파마끼 다 쳐내고, 짧게 커트를 했다. 씩씩하고 시원하게 치마바지를 입고 다닌다. 날도 더운데, 기죽지 말자. 하면서..




글 링크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초등학교 1학년, 공개수업과 학부모 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