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새콤이(18)
"집안의 권력은 '국자'에서 나오는 거야." 침대에 누워있던 남편은 "풉.."하고 뿜었고, 6살 딸아이는 점점 더 빠져들었습니다.
6살 새콤이 열여덟 번째 이야기 :
사건의 전모, 갑작스러운 '협상'
때는 바야흐로, 지난 주말. 동네에 큰 축제가 있었습니다. 빛축제라고 해서, 토요일 저녁에 갔다가 어린이 놀이기구 하나도 못 탔어요. 알고 보니 놀이기구가 6시면 다 끝나더라고요.
아이고. 미안해라.
그래도 선선한 바람도 좋고, 6시 넘어 어둑해지는 초저녁에 걸어본 적이 없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행사장은 그럭저럭.. 그냥 그렀고요. 사람 구경만 실컷 하다가 왔어요. 사람 너무 많고 뭔가 좀 부실해 보이고, 피곤해.. 그러면서 일요일은 가지 말자 결론을 내렸고요.
그런데 다음날 저녁인 일요일,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가 밤 10시에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동네 축제 불꽃놀이가 그저 그렇겠지. 하고 심드렁 넘겼어요. 그런데 남편은 이미, 6살 아이와 둘이 가기로 약속을 했더라고요.
아이한테는 생애 첫 불꽃놀이였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거든요. 피곤해하면서도, 간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엄마 빼고 아빠랑 둘이 다녀와...라고 했습니다. 잘 됐네. 나도 좀 쉬자. 이미 일요일에 혼자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 가서 갔다 와서, 저는 방전됐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로 '의상' 때문이었지요.
이것은 세대차인가, 취향차이인 건가.
하늘색을 좋아하며, 바지와 운동화에 캐주얼을 선호하는 짧은 반곱슬 엄마는 '샤 원피스'(위에 사진과 같이 발레리나 치마 같은 재질 원피스를 '샤 원피스'라고 하더라고요)와 핑크핑크한 장식과 구두에 긴 머리를 좋아하는 6살 딸아이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달라요.
부르르.. 참을 수 없는 취향이지만, 저게 또 대세이고, 저 또래들만의 로망이라고 하니 참아야겠지요. 아침마다 주먹을 불끈 쥐고, 머리를 빗은 다음 어떻게 어떻게 땋아줍니다. 그날의 방울과 핀도 꽂아주면서, 히야.. 6살 딸엄마는 극한 직업이구나 합니다. 내 취향과 다름이 비난이 대상이 돼서는 안 되기에 '강요'하진 않지만... 이해는 안 갑니다. 분명 저도 핑크 시절이 있었겠지요? 아니 핑크를 선망하던 시절.
아무튼. 그건 그 거구. 밤 9시에 나가면서, 것도 밤이라 추운데! 샤랄라 치마에 구두. 그건 쫌 아니지. 두툼한 체육복 상하에 운동화면 좋은 거야. 밤이라 누가 안 봐. 다들 불꽃놀이에 집중하지.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축제'라는 거죠. 축제에는 축제스럽게 꾸미고 가야 한답니다. 드레스에 구두 신고 이쁘게 하고 간다고 우겼습니다. 이 녀석이! 하고 엉덩이를 한 대 통 때렸더니, 흥 합니다. 아빠한테 물어보고 꾸미고 간다더군요. 아빠.. 흠.
아빠는 '딸바보'입니다. 그냥 바보 아니고, 상바보입니다. 아빠는 아마 물어보나 마나 어이구... 우리 딸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자. 그러면서 저한테 인상 험하게 쓰면서 애 하자는 대로 해줘요. 이럴게 뻔했거든요. 6살이 아는 거죠. 이런!!!
하. 지. 만 결과는..
어떻게요?! 그렇죠. 결과는 엄마가 이겼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막대사탕'이 이긴 거지만요.
아이는 일요일 저녁에도, 일을 하고 들어온 피곤한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음.. 아빠가 이기지."
(이 양반아! 그건 아니지! 진짜 눈치 없기는...)
"그럼. 내가 입고 가자는 대로 드레스 입고 구두 신고 불꽃놀이 가도 되는 거예요? 아빠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할 거죠?"
헉... 순간. 남편이 저의 눈치를 그. 제. 서. 야 봅니다. 아니지 아니지. 이 양반아.
"엄마가 뭐라는데? 엄마가 하잔대로 해야지."
이미 아빠에게 '아빠가 더 힘이 세다'는 말을 들은 딸은 싫다고 토라집니다. 으... 남편은 딸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단 저를 피해서 대피를 한 겁니다.
저는 '갈팡질팡 하는 어머니 모드'는 잠시 넣어두고, 제 안에 묻어둔 '(유능한) 협상가 모드'를 꺼냈습니다. 엄청 오랜만입니다. 회사 다닐 때 사용하던 '전투모드'를 꺼낼까 하다가 그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이건 세대차이도, 취향전쟁도, 그리고 부부문제도 아닌 '협상 및 갈등조정'의 문제였어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의 '향방'에도 큰 영향이 있을 예정이니까요.
협상과 조정 및 정리/ 막대사탕과 함께
최 씨 부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협상을 했습니다. 아빠는 침대에 누워있고, 딸아이는 그 옆에서 깡충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딸에게 '그래도' 엄마 의견대로 하자하고, 딸은 '그래도' 제 뜻대로 하겠답니다. 이리 와봐. 하고는 딸의 양팔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면서 얘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집안의 권력은 '국자'에서 나오는 거야."
(풉.. 침대에 누워있던 남편이 뿜었습니다. 왜 웃어요. 맞잖아요.)
"국자요?"
"어. 국자. 그러니까, 밥을 해주는 사람이 제일 힘이 센 거야. 밥 하는 엄마가 밥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집안일을 다 하거든. 아빠가 엄마 손이 느리다/ 음식 맛없다 등등으로 투덜대도(남편이 뒤에서 멋쩍은 웃음을 짓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꾹 참고 일을 하니까 집안이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엄마가 하기 싫다고 안 해봐. 그럼 집이 마비가 되겠지? 음식 안 하고, 집안일 안 하고. 그러면 아빠랑 새콤이랑 굶어야 되는 거야. 무섭지?
엄마가 힘이 세지만, 그래도 아빠한테 '아빠가 집안에 대장이야'라고 하면서 '존중'과 '존경'을 보여주면서, 결정을 하도록 하는 거야. 오케이?"
6살 딸아이는 점점 더 얘기에 빠져들어서,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봤어요. 똘망똘망. 그렇지. 그렇지. 엄마는 아빠와 딸을 둘 다 살릴 의무가 있으니까, 잘한 거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빠랑 체육복 세트로 입고 가."
"싫어요."
"그렇지. 얘기를 들었지만, 너의 생각이라는 게 있으니까. 일단 '츄파츕스' 하나를 먹자. 엄마가 그걸 줄게. 좋지? 사탕 먹고 아빠랑 체육복 입고 가는 거야. 알겠지?"
"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롤리팝 사탕 하나를 먹고, 피부에 발진이 심하게 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이후에 사탕을 안 주는 편입니다. 그래서 젤리류보다는 '잘 먹지 못하는 사탕'이 그리운 거죠.)
손에 쥔 막대사탕을 다 먹지도 못했지만, 함박웃음을 지으며 맛있게 먹다가 갔습니다. 아빠랑 체육복 커플로 입고. 논리든 고집이든 아집이든.. 그런 것들은 '사탕' 앞에 사르르 녹아버렸어요.
세대차이, 취향차이, 남녀차이 등등.. 많은 차이와 대립을 녹여내는 방법이 무얼까. 어떻게 부드럽게 잘 설득을 해서, 타협점을 찾을까를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잘..
- 2022년 9월 27일
원글 링크 :
https://alook.so/posts/M9tba70?utm_source=user-share_Dotdl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