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와 한스 짐머의 실험, 2025년 서울의 도로 위 '소리안전'
Sound Essay No.60
2025년, 서울의 강남대로나 좁은 주택가 골목을 걷다 보면 우리는 과거와 확연히 다른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시각적으로는 여전히 복잡하고 분주하지만, 청각적으로는 기묘할 정도로 고요해진 도로의 풍경입니다. 웅웅거리는 내연기관의 엔진 소음과 매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전기차(EV)와 수소 버스들이 채웠습니다. 표면적으로 도시는 조용해졌고, 미래지향적이며, 쾌적해진 듯 보입니다.
하지만 소리를 다루는 사운드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그리고 무방비 상태로 도로를 걷는 보행자의 입장에서 이 완벽한 침묵은 때로 '보이지 않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갑자기 등 뒤에서 "스윽" 하고 나타난 전기차에 화들짝 놀라 가슴을 쓸어내린 경험, 혹은 소리 없이 질주하는 전동 킥보드가 팔꿈치를 스칠 듯 지나갈 때 느끼는 섬뜩함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소리가 없다는 것. 그것은 기계 공학적으로는 에너지 효율의 극대화와 마찰의 최소화를 뜻하는 '기술적 승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혼잡한 도로 위에서 소리의 부재는 곧 '존재감의 상실'이자, 타인에게 전달되어야 할 '위치 정보의 삭제'를 의미합니다. 침묵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잠재적 흉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엔진음이 사라진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과 새로 설계해야 할 소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운드 엔지니어에게 전기차는 아주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입니다. 오디오를 재생하는 공간으로서는 꿈의 환경이지만, 운전을 하는 기계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점 : 달리는 청음실 (The Rolling Listening Room) 전통적인 내연기관 차는 거대한 '광대역 노이즈 발생기(Broadband Noise Generator)'였습니다. 엔진의 폭발음, 구동축의 진동, 배기음이 저음역대를 꽉 채우고 있어, 음악을 들을 때 섬세한 저음이나 악기의 디테일을 덮어버리는 '마스킹 효과(Masking Effect)'가 발생했습니다. 카오디오 튜닝이 그토록 어려웠던 이유입니다. 반면, 전기차는 모터 소음이 거의 없습니다. 이는 엔지니어가 의도한 음악의 다이내믹 레인지(가장 작은 소리와 큰 소리의 차이)를 100% 즐길 수 있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이동식 청음 공간'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전기차 안에서의 음악 감상은 분명 축복입니다.
단점 : 피드백의 상실과 속도 불감증 (Speed Blindness) 문제는 '운전 정보'의 상실입니다. 인간은 운전할 때 시각 정보뿐만 아니라 청각 정보에 크게 의존합니다. 우리는 계기판을 보지 않아도 엔진 소리의 피치(Pitch)와 떨림만으로 "아, 지금 시속 80km 정도구나", "엔진이 힘들어하니 기어를 바꿔야겠네"를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시속 30km나 100km나 모터 소리가 거의 비슷합니다. 유일한 소음은 타이어 마찰음과 풍절음뿐입니다. 이로 인해 운전자는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속도 불감증(Speed Blindness)'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는 무의식적인 과속을 유발하여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외부 소음 차단(NVH)이 너무 완벽하여 구급차 사이렌이나 다른 차의 경적을 듣지 못하는 '위험한 밀실'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이러한 안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 한국 등 각국 정부는 전기차에 의무적으로 가짜 소리를 내게 하는 AVAS(Acoustic Vehicle Alerting System, 차량 접근 경고음) 법안을 시행 중입니다. 저속 주행 시 의무적으로 특정 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자동차 제조사들은 거대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내야 하지? 과거 내연기관 엔진 소리를 녹음해서 틀까(스큐어모피즘), 아니면 우주선 같은 완전히 새로운 소리를 만들까?"
이 질문에 가장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답을 내놓은 것은 독일의 BMW였습니다. 그들은 내부 사운드 엔지니어가 아닌, <인터스텔라>, <다크 나이트>의 영화음악 거장 한스 짐머(Hans Zimmer)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한스 짐머는 기존 내연기관의 소리를 흉내 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전기차를 '새로운 악기'로, 도로를 '무대'로 해석했습니다. 그가 렌조 비탈레(Renzo Vitale)와 함께 만든 BMW i4와 iX의 주행음,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Iconic Sounds Electric)'은 단순한 경고음이 아닙니다.
예술적 구조 : 엔진의 거친 폭발음 대신, 첼로와 호른, 그리고 여성의 보컬을 변조한 듯한 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저음에서 고음으로 부드럽게 상승하는 화음(Chord)과 텍스처가 층층이 쌓여, 마치 SF 영화 속 우주선이 워프(Warp)를 할 때 나는 소리처럼 웅장하고 신비롭게 들립니다.
기능적 피드백 : 이 소리는 단순히 멋지기만 한 게 아닙니다. 셰퍼드 톤(Shepard Tone/Sound Essay No.42 '당신의 심장은 왜 실 새 없이 뛰는가?' 참조)의 원리를 응용하여, 가속 페달을 밟는 강도에 따라 소리의 피치와 볼륨이 정교하게 상승합니다. 이를 통해 운전자에게 "당신이 지금 얼마나 빠르게 달리는지"에 대한 직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동시에 "내가 지금 미래를 운전하고 있다"는 고양감을 선물합니다. 이는 안전(기능)과 감성(예술)을 동시에 잡은 사운드 디자인의 걸작입니다.
시선을 화려한 BMW의 콕핏에서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2025년 한국의 골목길로 돌려보면,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고 위태롭습니다. 지금 한국의 도로를 지배하는 것은 전기차뿐만이 아닙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개인형 이동장치(PM: 전동 킥보드, 전기 자전거)와 전기 배달 오토바이입니다.
'배달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배달 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한국에서, 이 '마이크로 모빌리티'의 전동화는 도시 소음 지도를 급격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소리 없는 암살자들 (The Silent Assassins) : 과거의 내연기관 배달 오토바이는 시끄러워서 문제였지만, 적어도 "오토바이가 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신 전기 스쿠터와 전동 킥보드는 모터 소음이 거의 '0'에 수렴합니다. 타이어 구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기기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보행자 바로 옆을 시속 25km로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는 보행자에게 심리적 트라우마를 줄 수 있는 수준의 공포입니다.
도플러 효과의 부재 : 소리가 다가오면 커지고 멀어지면 작아지는 '도플러 효과'는 인간이 물체의 속도와 방향을 감지하는 핵심 단서입니다. 하지만 전동 킥보드는 이 효과가 발생할 만큼 충분한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통계적 경고 : 실제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전동 킥보드 관련 사고는 매년 급증하고 있으며, 사고 원인의 상당수가 '보행자의 인지 지연'과 '운전자의 인기척 없음'에서 비롯됩니다. 2025년 현재, 우리는 기술 발전의 속도를 안전 의식과 법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사운드 디자이너로서 저는 강력하게 제안합니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모든 전동 모빌리티에도 그들만의 '소닉 아이덴티티(Sonic Identity)'가 의무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날카로운 경적 소리(빵!)일 필요는 없습니다. 보행자가 불쾌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지속적인 주행음(Humming Sound)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미래의 도시는 분명 지금보다 더 조용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이 진정한 '안전'과 '평화'를 담보하려면, 역설적으로 '더 정교하게 디자인된 소리'가 필요합니다.
운전 중 우리가 엔진 소리를 듣는 것은 소음 공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 차가 살아 움직인다는 신호였고, 보행자에게 "내가 지금 당신 곁을 지나갑니다"라고 알리는 기계적인 '청각적 배려'였습니다. 전기차와 킥보드의 침묵 속에, 우리는 이제 새로운 언어를 심어야 합니다.
과거의 거친 폭발음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한스 짐머의 화음처럼 세련되고,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보행자의 본능을 깨워 존재를 알리는 소리.
사운드 디자인은 이제 엔터테인먼트나 럭셔리의 영역을 넘어, 생명을 지키는 '안전장치'이자 도시 생활의 필수적인 '에티켓'이 되어야 합니다. 2025년의 도로는 침묵하는 기계들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소리들로 채워져야만 합니다.
당신의 이동수단은 지금 어떤 목소리로 타인에게 말을 걸고 있나요? 그 소리가 바로 그 차의 영혼이자, 운전자의 품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