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와 구강 구조가 만드는 '소리의 바코드'
Sound Essay No.85
범죄 영화나 뉴스를 보면, 유괴범이나 협박범이 전화를 걸 때 손수건으로 수화기를 감싸거나,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거나, 헬륨 가스를 마시고 목소리를 변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서죠.
하지만 현대 과학 수사대(CSI) 앞에서 이런 노력은 무용지물입니다. 수사관들은 범인이 아무리 목소리를 꾸며내도, 단 3초의 녹음 파일만 있으면 그가 누구인지, 키가 대략 얼마인지, 심지어 어떤 지역 출신인지까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손가락에 고유한 '지문(Fingerprint)'이 있듯이, 목소리에도 '성문(Voiceprint)'이라는 고유한 패턴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문은 장갑을 끼면 숨길 수 있지만, 성문은 입을 여는 순간 공기 중에 찍히는 '보이지 않는 지문'입니다.
성문 분석의 핵심은 소리를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녹음된 목소리를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이라는 장비에 통과시키면, 복잡한 파동의 무늬가 그래프로 그려집니다.
가로축: 시간 (Time)
세로축: 주파수 (Frequency, 음의 높낮이)
색의 농도: 에너지의 강도 (Intensity, 음량)
이 그래프를 보면 마치 등고선이나 바코드처럼 복잡한 무늬가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목소리의 톤, 억양, 속도, 그리고 특정 발음을 할 때 강해지는 주파수 대역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 무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모양을 가집니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목소리는 비슷하게 들릴지 몰라도, 성문 그래프를 찍어보면 미세하게 다릅니다.
목소리를 변조하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성대의 떨림만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소리는 '악기'와 같습니다.
동력원 (폐): 공기를 밀어 올립니다.
발음체 (성대):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Source)를 만듭니다.
공명통 (성도, Vocal Tract): 인두, 구강, 비강을 통과하며 소리가 증폭되고 다듬어집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3번, 공명통(성도)입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른 결정적인 이유는 목 구멍의 길이, 입천장의 높이, 혀의 두께, 코안의 공간 크기, 치아의 배열이 해부학적으로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일부러 가성을 내거나 콧소리를 섞어서 성대(2번)의 진동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타고난 목 구멍의 길이와 입안의 구조(3번)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마치 바이올린 줄을 아무리 바꿔도 첼로 소리가 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수사관들은 변조된 목소리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이 고유의 공명 주파수, 즉 '포먼트(Formant)'를 찾아내 범인을 특정합니다.
"그럼 영화처럼 기계로 음성을 변조하면 되지 않나요?" 뉴스 인터뷰에서 신변 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윙윙"거리는 변조음(Robotic Voice)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것은 목소리의 주파수 대역을 인위적으로 찌그러뜨린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의 디지털 포렌식 기술은 이 찌그러진 소리를 다시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하여 원음을 복원해 낼 수 있습니다. 변조 프로그램이 적용한 알고리즘 패턴만 파악하면, 수학적으로 필터를 걷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또한 헬륨 가스를 마시면 소리의 속도가 빨라져서 '도날드 덕' 목소리가 되지만, 이 역시 성도의 길이나 발음 습관(사투리, 말더듬, 특정 단어의 강세)까지는 감추지 못합니다. 헬륨 가스는 주파수를 전체적으로 '이동(Shift)'시킬 뿐, 성문의 고유한 '비율'은 그대로 남기 때문입니다.
성문 분석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을 넘어, 사건 현장의 '공간'까지 재구성합니다. 녹음 파일 뒤에 깔린 미세한 배경 소음(Background Noise)을 분석하면, 그곳이 지하 주차장인지, 60Hz의 전기가 흐르는 한국인지 50Hz의 일본인지, 심지어 범인이 사용한 전화기가 어떤 기종인지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완전 범죄는 없다"는 말은 소리의 세계에서도 유효합니다. 범인이 아무리 얼굴을 가리고, 장갑을 끼고, 목소리를 깔아도, 그가 공기 중에 뱉어낸 그 짧은 파동 속에는 그의 신체 비밀과 그날의 진실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목소리,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당신의 몸이 연주하고 세상에 남기는 유일무이한 '생체 서명(Bio-signatur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