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는 안 들리는 '마이크로 트레머(Micro-tremor)'의 진실
Sound Essay No.87
사람은 거짓말을 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씁니다. '진실'은 기억을 꺼내기만 하면 되지만, '거짓'은 없는 사실을 창조하고, 앞뒤 논리를 맞추고, 들키지 않을까 긴장까지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부하 상태를 '인지 부하(Cognitive Load)'라고 합니다.
뇌가 거짓말을 설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교감신경)가 즉각 반응합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식은땀이 나고, 동공이 흔들리죠.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Polygraph)는 이런 심박수나 땀 분비를 측정하기 위해 몸에 센서를 부착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신 기술인 '음성 스트레스 분석(VSA: Voice Stress Analysis)'은 마이크 하나면 충분합니다. 뇌의 스트레스 신호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예민하게 도달하는 곳이 바로 목소리를 만드는 '후두 근육(성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진실을 말할 때, 성대는 뇌의 통제하에 부드럽고 규칙적으로 진동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거나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율신경계가 성대 주변의 미세 근육들을 긴장시킵니다. 이때 의지와 상관없이 근육이 8~12Hz(1초에 8~12번) 속도로 파르르 떨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것을 '마이크로 트레머(Micro-tremor)'라고 부릅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들고 버틸 때 팔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뇌는 태연한 척 목소리를 내려고 하지만, 성대 근육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지진이 난 것처럼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떨림이 너무나 미세하고 빨라서, 인간의 귀로는 도저히 들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귀는 목소리의 높낮이(Pitch)나 크기(Volume), 떨림(Vibration)은 감지하지만, 소리 파형 속에 숨겨진 초미세 주파수의 변동(Frequency Modulation)까지는 잡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기꾼들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면 우리는 "아, 저 사람은 당당하니까 진실이구나"라고 속아 넘어갑니다.
하지만 VSA 컴퓨터는 다릅니다. 이 장비는 목소리에서 우리가 듣는 '말소리(내용)'는 다 제거해 버리고, 오직 성대의 '진동 패턴'만 남겨서 분석합니다. 스펙트럼 분석기를 통해 보면, 진실을 말할 때는 파형이 둥글고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지만, 거짓말을 하는 순간 파형이 톱니바퀴처럼 각지고 날카롭게 깨지는(Blocky) 형태가 나타납니다. 바로 마이크로 트레머가 남긴 흔적입니다.
이 기술의 가장 무서운 점은 '비접촉'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 몸에 전선을 연결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바로 앞에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전화 통화 녹음 파일이나, TV 인터뷰 영상, 유튜브 영상만 있어도 분석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보험사들은 보험 사기가 의심되는 고객과 전화 상담을 할 때 이 기술을 몰래 활용하기도 하고, 대테러 부대에서는 공항 검색대에서 테러 용의자의 짧은 대답("가방에 위험한 물건이 있습니까?")만으로도 위험도를 평가합니다. 과거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때도 그의 TV 연설 목소리를 분석하여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었죠.
물론 이 기술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거짓말을 안 해도 원래 성격이 소심해서 떠는 사람도 있고, 사이코패스처럼 거짓말을 하면서도 전혀 죄책감(스트레스)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법정 증거로 채택되기보다는 수사의 참고 자료로 주로 쓰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목소리는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뇌의 가장 깊은 곳, 무의식과 연결된 '마음의 파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성으로 표정을 관리하고 말투를 꾸며내도, 성대의 근육은 뇌가 느끼는 공포와 긴장을 솔직하게 진동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진심이 궁금하다면, 그 사람의 화려한 말솜씨가 아니라 목소리 끝에 묻어나는 미세한 떨림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기계만큼은 아니더라도, 진심을 느끼는 직관이 작동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