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도 '레이저'가 있다

초지향성 스피커(Parametric Speaker)의 세계

by JUNSE

Sound Essay No.97

소리에도 '레이저'가 있다

초지향성 스피커(Parametric Speaker)의 세계

620cdd2a61266d356b59939a_Blog images (7) (1).png 출처 : www.akoustic-arts.com

1. 소리는 둥글다는 상식을 깨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스피커(Dynamic Speaker)는 물에 돌을 던졌을 때 퍼지는 물결처럼, 소리를 사방으로 퍼뜨립니다. 이를 '전지향성(Omni-directional)'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공공장소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면 소음 공해가 되고, 나만 듣고 싶으면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빛의 세계에 전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Laser)가 있듯이, 소리의 세계에도 원하는 곳으로만 직진하는 '소리 레이저'가 존재합니다. 바로 '초지향성 스피커(Directional Speaker)' 또는 '파라메트릭 스피커(Parametric Speaker)'입니다.


이 기술은 단순한 신기함을 넘어 예술, 안전, 마케팅, 심지어 국방 분야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바로 옆 사람은 듣지 못하고, 오직 타겟이 된 한 사람에게만 또렷하게 들리는 소리의 마법. 그 원리와 다양한 사례를 해부합니다.



2. 1963년, 물리학이 예언한 소리

sensors-20-02148-g001.png 츨처 : www.mdpi.com 'Parametric Acoustic Array and Its Application in Underwater Acoustic Engineering'


이 기술은 1963년, 미국의 물리학자 피터 웨스터벨트(Peter J. Westervelt)가 발표한 '파라메트릭 음향 배열(Parametric Acoustic Array)' 이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핵심은 '초음파(Ultrasound)'입니다.


일반 소리 (20Hz~20kHz): 파장이 길어서 장애물을 만나면 휘어지고 퍼집니다(회절).


초음파 (40kHz 이상): 파장이 매우 짧아 빛처럼 직진하는 성질이 강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웨스터벨트는 "들리지 않는 초음파에, 듣고 싶은 소리를 태워서 보내면 어떻게 될까?"를 고민했습니다. 라디오 방송국이 음성 신호(저주파)를 전파(고주파)에 실어 보내는 것과 같은 '변조(Modulation)' 원리입니다.


발사 : 가청 소리를 직진성이 강한 초음파 빔에 실어 공중으로 쏘아 보냅니다.


비선형성(Non-linearity) : 강력한 초음파 빔이 공기 분자를 밀고 당길 때, 공기의 밀도가 급격히 변하며 소리의 파형이 왜곡됩니다.


자가 복조(Self-demodulation) : 이 과정에서 공기 자체가 '스피커' 역할을 합니다. 초음파는 자연스레 소멸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가청 소리만 특정 지점의 허공에서 툭 튀어나오게 됩니다.



3. Case Study 1 : 공공 안전 (서울시와 JD솔루션)

image.png 출처 : www.womentimes.co.kr '제이디솔루션, ‘KOBA 2025’서 차세대 음향 기술 공개'

이론에 머물던 기술은 한국의 스타트업 '제이디솔루션(JD Solution)' 등에 의해 국산화되어 시민의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마트 횡단보도의 딜레마 해결: 서울시 성동구, 서초구 등은 횡단보도 대기선을 넘는 보행자에게 경고 방송을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초기에는 일반 스피커를 써서 "시끄럽다"는 주변 상가와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했습니다. 하지만 초지향성 스피커로 교체한 후, 소리는 레이저처럼 횡단보도 앞 1~2미터 구역에만 집중되었습니다. 바로 옆 편의점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무단횡단을 하려는 사람 귀에만 "위험하오니 물러나세요!"라는 경고음이 천둥처럼 꽂히게 된 것입니다.


터널 끼임 사고 방지: 서울의 신월여의지하도로는 소형차 전용(높이 3m 제한)입니다. 진입로에 설치된 지향성 스피커는 높이 초과 트럭이 감지되면, 해당 트럭 운전석을 향해 "진입 금지! 우회하십시오!"라는 경고음을 쏩니다. 창문을 닫고 있어도 뚫고 들어올 만큼 지향성이 강력해 사고 예방에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4. Case Study 2 : 문화와 예술 (조용한 미술관)

image.png 출처 : www.holosonics.com

이 기술을 세계적으로 상용화한 선구자는 MIT 미디어랩 출신의 조셉 폼페이(F. Joseph Pompei) 박사와 그가 설립한 '홀로소닉스(Holosonics)'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 보스턴 미술관 : 유명 미술관들은 시끄러운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대여하거나, 도슨트가 소리를 질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초지향성 스피커인 '오디오 스포트라이트'를 작품 위에 설치하자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림 바로 앞에 선 관람객에게만 설명이 속삭이듯 들립니다. 한 발짝만 옆으로 이동하면 소리는 뚝 끊기고 정적만이 흐릅니다. 덕분에 관람객은 이어폰 없이도 개별적인 설명을 들으며 '침묵의 관람'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욕 공립 도서관 : 정숙해야 하는 도서관 로비나 안내 데스크에서 방문객에게 안내 방송을 할 때, 열람실의 독서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특정 구역에만 소리를 전달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5. Case Study 3 : 기발한 마케팅 (유령의 속삭임)

image.png 출처 : 유튜브 채널 'Holosonics', 'Audio Spotlight Case - Sonic Billboard - A&E Paranormal State'

미국의 케이블 채널 A&E는 이 기술을 이용해 '파라노말 스테이트(Paranormal State)'라는 미스터리 프로그램을 홍보했습니다.


뉴욕 소호(Soho) 거리에 설치된 빌보드 광고판 꼭대기에 초지향성 스피커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를 지나가는 특정 보행자를 겨냥해 "거기 누구 없어요? (Is anybody there?)"라는 여자 귀신 목소리를 쏘았습니다. 보행자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바로 옆에 있는 친구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죠. "나만 들리는 귀신 소리"라는 컨셉을 기술로 완벽하게 구현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6. Case Study 4 : 국방과 해상 방어 (LRAD)

image.png 출처 : newatlas.com

소리 레이저의 출력을 극대화하면 무기가 됩니다. 바로 '음향 대포(Sound Cannon)'라 불리는 LRAD(Long Range Acoustic Device)입니다.


소말리아 해역의 상선이나 군함은 해적선이 접근할 때 총을 쏘기 전, 먼저 LRAD를 발사합니다. 지향성 스피커의 원리를 이용해 150dB 이상의 강력한 소음을 좁은 빔(Beam) 형태로 해적선에만 집중시킵니다. 이 소리를 맞은 해적들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통과 평형감각 상실을 느껴 접근을 포기하고 도망갑니다. 아군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적에게만 물리적 타격을 주는 '비살상 무기'입니다.



7. Case Study 5 : 미래의 자동차 (독립 음장 제어)

image.png 출처 : www.moje-auto.pl/

현대자동차그룹이 개발 중인 SSZ(Separated Sound Zone) 기술은 자동차 실내를 보이지 않는 소리의 벽으로 나눕니다. 스피커들의 위상(Phase)을 정밀하게 제어해, 운전석에는 내비게이션 소리만, 뒷좌석에는 아이들이 보는 영화 소리만 들리게 합니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도 한 공간에서 가족들이 각자의 콘텐츠를 즐기는 '퍼스널 사운드 존'의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8. 소리의 예절을 만드는 기술


과거의 오디오 기술이 '더 크게, 더 웅장하게'를 외쳤다면, 미래의 오디오 기술은 '필요한 곳에만, 정확하게'를 지향합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소리는 소음이자 폭력입니다. 초지향성 스피커 기술은 소리를 완벽하게 통제(Control)함으로써, 타인의 침묵을 존중하고 나의 듣는 권리를 보장하는 '가장 예의 바르고 진화된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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