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가설과 생태 음향학
Sound Essay No.109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통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가져올 생태계의 파멸을 경고했습니다. 그녀는 봄이 왔는데도 새가 울지 않는 끔찍한 정적을 예언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녀의 예언은 시각적인 멸종을 넘어 '청각적인 멸종'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숲을 볼 때 '시각'에 의존합니다. 나무가 울창하고 풀이 푸르면 "건강한 숲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운드스케이프 생태학자들의 진단은 다릅니다. 마이크를 켜고 레코딩 버튼을 누르는 순간, 겉보기에 멀쩡한 숲이 사실은 텅 빈 유령 도시처럼 조용하다는 사실에 전율하게 됩니다.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소음의 장막이 자연의 소리를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생태학자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는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 15,000곳의 서식지 소리를 녹음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충격적인 통계를 내놓았습니다.
내가 1970년에 녹음했던 장소의 50%는 이제 더 이상 그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곳은 침묵하거나, 기계 소음으로 대체되었다.
버니 크라우스가 발견한 가장 위대한 개념은 '틈새 가설(The Niche Hypothesis)'입니다. 이전까지 생물학자들은 숲속의 소리를 그저 "시끄러운 소음의 혼합"이나 "동물들의 무작위적인 울부짖음"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크라우스가 녹음된 소리의 '스펙트로그램(Spectrogram, 소리를 시각화한 그래프)'을 분석해 보니 놀라운 질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열대 우림의 동물들은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울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치 라디오 방송국이 주파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채널을 나누듯, 각자의 '음향적 영역(Acoustic Niche)'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저주파 대역 (Bass) : 코끼리나 대형 포유류가 낮은 소리로 바닥을 깝니다.
중주파 대역 (Mid) : 새들이 그 위에서 노래합니다.
고주파 대역 (High) : 곤충과 박쥐들이 초음파에 가까운 높은 소리를 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 첼로, 바이올린이 각자의 음역대를 연주하듯, 자연 생태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주파수 분할(Frequency Partitioning)'을 이뤄냈습니다. 만약 매미가 새의 주파수를 침범하면, 새의 짝짓기 신호가 전달되지 않아 멸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의 목소리를 가리지 않는 빈 주파수(Niche)를 찾아 진화적으로 튜닝된 것입니다. 이를 '바이오포니(Biophony, 생물 소리)'라고 부릅니다.
이 완벽한 교향곡을 파괴하는 것은 포식자가 아니라 인간의 소음, 즉 '앤스로포니(Anthrophony)'입니다. 자동차, 비행기, 공장 기계 소음은 대부분 '저주파에서 중주파'에 걸쳐 넓게 퍼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를 음향학적으로는 **'마스킹 효과(Masking Effect)'라고 합니다.
도심 근처 숲의 스펙트로그램을 보면, 하단부에 두꺼운 회색 띠가 그려집니다. 도로에서 들려오는 타이어 마찰음과 엔진 소리입니다. 문제는 이 대역이 개구리나 부엉이 같은 야행성 동물들의 통신 주파수와 정확히 겹친다는 점입니다.
소음이 깔리면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암컷에게 도달하지 못합니다.
1단계: 개구리는 소음을 뚫기 위해 더 크게, 더 악을 쓰며 웁니다(롬바르드 효과). 에너지가 고갈됩니다.
2단계: 그래도 안 되면 울음을 포기하거나 서식지를 떠납니다.
3단계: 짝짓기에 실패하고 개체 수가 급감합니다.
눈에 보이는 나무를 베지 않아도, 단지 숲 옆에 고속도로를 뚫는 것만으로도 그 숲의 생태계는 '소통의 단절'로 인해 서서히 질식해 죽어갑니다. 인간의 소음은 동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음향적 스모그(Sonic Smog)'입니다.
이 비극은 바닷속에서 더 심각하게 벌어집니다. 물은 공기보다 소리를 5배나 빠르게, 그리고 훨씬 멀리 전달합니다. 고래들은 이 특성을 이용해 수천 킬로미터 밖의 동료와 노래로 대화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바다는 거대한 선박의 프로펠러 소음과 군사 음파 탐지기(Sonar)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전글 참조 : Sound Essay No.80 고래의 노래는 바닷속 '인터넷'이자 '빌보드 차트'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연구에 따르면, 선박 소음이 증가하면서 북대서양 참고래(Right Whale)의 통신 가능 거리가 1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에는 1,000km 밖에서도 들리던 사랑의 세레나데가 이제는 100km도 가지 못합니다.
더욱 슬픈 적응도 관찰됩니다. 일부 고래들은 선박 소음(저주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 톤(주파수)을 억지로 높여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시끄러운 클럽에서 사람 소리가 묻히지 않게 가성으로 소리 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이어온 그들의 유구한 저음의 노래가, 인간의 기계 소음 때문에 찢어지고 변형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 보호를 이야기할 때 항상 '물리적 공간'이나 '개체 수' 만을 따집니다. "호랑이가 몇 마리 남았나?", "숲이 몇 평인가?" 하지만 버니 크라우스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그 자체가 보호해야 할 천연자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건강한 숲의 소리는 그 자체로 힐링의 주파수(1/f 잡음)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반면, 소리가 사라진 숲은 생명력을 잃은 숲입니다. 미국의 일부 국립공원에서는 이제 '소음 없는 날'을 지정하거나, 항공기의 비행 경로를 수정하여 숲의 정적을 지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조용한 게 좋다"는 차원이 아니라, 야생 동물들의 '통신망(Network)'을 복구해 주는 생태학적 복원 사업입니다.
현대인은 시각 중심의 동물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과 화려한 디스플레이에 갇혀, 청각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무시합니다. 하지만 생태계의 붕괴는 눈보다 귀에서 먼저 감지됩니다.
녹조가 끼기 전에, 물총새의 다이빙 소리가 사라집니다.
숲이 말라죽기 전에, 새벽을 깨우던 딱따구리의 소리가 멈춥니다.
바다가 오염되기 전에, 돌고래의 클릭음(Click sound)이 끊깁니다.
소리는 생태계의 활력 징후(Vital Sign)입니다. 심전도 모니터의 "삐- 삐-" 소리가 환자의 생명을 말해주듯, 자연의 오케스트라 소리는 지구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데이터입니다.
버니 크라우스는 그의 책 <위대한 동물의 오케스트라(The Great Animal Orchestra)>의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가 자연의 소리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조용한 숲을 잃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행성이 수십억 년 동안 작곡해 온 가장 아름다운 음악의 악보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 헤드폰을 벗고,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들리시나요? 아니면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나무와 물뿐만이 아닙니다.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생명의 노래'를 지켜야 합니다. 침묵이 숲을 완전히 집어삼키기 전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