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곁에 남는 감각 '죽음과 소리'

왜 청각은 육체가 멈춘 뒤에도 듣고 있는가

by JUNSE

Sound Essay No.115

마지막까지 곁에 남는 감각 : 죽음과 소리

티베트 사자의 서와 호스피스 병동의 하프 소리: 왜 청각은 육체가 멈춘 뒤에도 듣고 있는가

image.png 출처 : buddhaweekly.com

1. 불이 꺼져도 라디오는 켜져 있다


사람이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해 봅시다. 호흡이 멈추고, 심전도 모니터가 평행선을 그리며 "삐-" 소리를 냅니다.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립니다. 우리는 그 순간 고인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심장이 멈추고 눈이 감겨도, 인간의 뇌에서 '청각'은 마지막 순간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극장의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져도(시각의 상실), 무대 뒤의 방송 시스템(청각)은 여전히 켜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각은 눈꺼풀이라는 문이 있어 닫을 수 있지만, 귀에는 닫을 수 있는 문이 없습니다. 태아 때 뱃속에서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도 청각이며(임신 24주), 죽음의 순간 가장 늦게 사라지는 감각도 청각입니다. 소리는 삶의 시작과 끝을 감싸는 '괄호(Bracket)'와 같습니다.



2. UBC의 연구 : 뇌는 당신의 작별 인사를 듣는다

image.png 출처 : www.cbc.ca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UBC)의 엘리자베스 블런던(Elizabeth Blundon) 박사 연구팀은 2020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임종이 임박하여 의식이 없는 환자들에게 뇌파 측정기(EEG)를 부착하고, 평소 익숙한 소리와 낯선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의식이 전혀 없는 환자들의 뇌 청각 피질은 건강한 사람과 거의 똑같은 패턴으로 소리에 반응했습니다. 그들은 말을 할 수도, 눈을 뜰 수도 없었지만, 뇌는 가족들이 울면서 전하는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임종을 지킬 때 침묵하거나 우는 것보다, 고인의 귀에 대고 따뜻한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이 왜 중요한지 과학적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3. 티베트 사자의 서 : 듣는 것을 통한 해탈

image.png 출처 :www.amazon.co.uk

수천 년 전, 티베트의 승려들은 이미 이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경전 <바르도 퇴돌(Bardo Thodol)>은 흔히 '티베트 사자의 서'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제목의 뜻은 "듣는 것을 통한 대해탈"입니다.


이 책은 죽은 자를 위한 여행 가이드북입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숨을 거두면 승려가 고인의 귓가에 대고 49일 동안 경전을 읽어줍니다. 육체는 죽었지만 영혼은 '바르도(중음신)' 상태에서 여전히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승려는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강한 빛이 나타나도 두려워하지 마라", "소리에 놀라지 마라". 이 의식은 죽음이라는 낯선 세계에 던져진 영혼에게 '소리'라는 내비게이션을 제공하는 행위입니다. 그들에게 청각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유일한 핫라인(Hotline)입니다.



4. 음악 탄나톨로지(Music Thanatology) : 영혼의 조산사


현대 호스피스 의학에는 '음악 탄나톨로지'라는 특수 분야가 있습니다. '죽음학(Thanatology)'과 음악을 결합한 것으로, 임종 환자의 편안한 죽음을 돕는 의료적 연주 활동입니다.

image.png 출처 : accordaschool.org


음악 탄나톨로지스트들은 주로 '하프(Harp)'를 사용합니다. 그들은 환자의 호흡과 심박수를 관찰하며, 그 리듬에 맞춰 즉흥 연주를 합니다. 이를 '규정적 음악(Prescriptive Music)'이라고 합니다.


동기화 : 환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 하프 연주도 그 속도에 맞춥니다.

이완 : 서서히 연주의 템포를 늦추고 볼륨을 줄여나갑니다.

진정 : 환자의 호흡이 음악을 따라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근육의 긴장이 풀리며 평온한 상태(진정)에 도달합니다.


마치 산파가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돕듯, 이들은 음악을 통해 영혼이 육체에서 평화롭게 빠져나가는 것을 돕습니다. 약물로 통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두려움을 없애는 것입니다.



5. 백조의 노래(Swan Song)와 레퀴엠

image.png 출처 : www.healinghealth.com

서양 전설에 따르면 백조는 평생 울지 않다가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이를 '스완 송(Swan Song)'이라고 합니다. 예술가들이 생의 마지막에 남긴 걸작을 뜻하기도 합니다.


모차르트는 죽기 직전까지 침대에 누워 <레퀴엠(Requiem, 진혼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자신을 위로할 음악을 썼습니다. 장례식에서 곡(哭)을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문화는 전 세계 공통입니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함도 있지만, 어쩌면 떠나는 자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청각적 끈을 놓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배려일지도 모릅니다.



6. 소리는 어둠 속의 촛불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소음을 듣습니다. 하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소음이 아니라 '목소리''음악'입니다.


시각은 빛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죽음은 어둠이기에 시각은 힘을 잃습니다. 하지만 청각은 어둠 속에서 더 예민해집니다. 동굴 속에서, 심해에서, 그리고 죽음이라는 심연 속에서 소리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때, 그가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말을 멈추지 마십시오. 당신의 목소리는 뇌가 멈추고 심장이 식어가는 그 최후의 순간까지, 그가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는 '가장 따뜻한 손길'이 되어줄 것입니다.



7. 침묵으로 돌아가는 여정


음악(Music)은 소리에서 태어나 침묵으로 돌아갑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울음(Cry)으로 시작해 마지막 날숨(Breath)이라는 침묵으로 끝납니다.


죽음은 소리의 소멸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생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비로소 완전한 '내면의 고요'로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리에서 침묵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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