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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빛의 교회'에 대한 소리를 디자인한다면?

건축가의 철학으로 배우는 '침묵'을 디자인하는 역설

by JUNSE

Sound Essay No.19

안도 타다오(Tadao Ando)의 '빛의 교회'에 대한 소리를 디자인한다면?

건축가의 철학으로 배우는 '침묵'을 디자인하는 역설


Ibaraki_Kasugaoka_Church_light_cross.jpg 출처 : Wikipea (By taken by Bergmann)


소리 없는 공간, 소리로 가득한 공간


오사카의 한적한 주택가,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단순한 상자 형태의 건물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모든 빛이 차단된 깊은 어둠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잠시 후,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제단 뒤 벽 전체를 가로지르는 십자가 형태의 틈으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안도 타다오의 대표작, '빛의 교회'입니다.


spot_120_3438.jpg 출처 : 茨木春日丘教会


이 공간에 어떤 소리를 디자인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정답에 가깝지만, 절반만 맞습니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공간의 침묵은 단순히 소리가 없는 '무음(無音)'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비본질적인 것들이 제거된 순수한 공간 속에서, 오히려 세상의 가장 근원적인 소리들이 비로소 들려오는 '소리로 가득 찬 침묵'입니다.


이 글은 "건축은 결국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던 안도 타다오의 철학을 빌려, 사운드 디자인의 역설적인 목표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소리를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침묵과 여백을 디자인함으로써 듣는 이의 감각을 일깨우고, 소리의 가장 깊은 본질과 만나게 하는 길입니다.



안도의 첫 번째 가르침 - "본질 이외의 것을 제거하라"


안도 타다오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장식과 기교를 모두 덜어낸 '노출 콘크리트'의 사용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건축에서 중요한 것은 조형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장소에 어떤 풍경을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극한까지 모든 것을 벗겨 내고, 건축의 본질을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습니다.


japannews_580-01a-3.jpg 출처 : 일본의 새소식 '한국에서 찾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삽화 /뮤지엄산 항공샷


이것은 사운드를 다루는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불안감 때문에 소리를 과도하게 채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배경음악을 깔고, 허전함을 감추기 위해 여러 효과음을 겹칩니다. 하지만 안도의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먼저, 모든 비본질적인 소리를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감각의 확장: 음악을 끄고, 불필요한 앰비언스를 걷어내고, 장식적인 효과음을 모두 지워보십시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의 맨살' 위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도 거대한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배우의 미세한 숨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그 어떤 배경음악보다 더 강력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냅니다. 듣는 이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 소리를 '찾아 들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안도의 두 번째 가르침 - "내부에 자연을 들여라"


안도의 콘크리트 공간은 결코 차갑거나 닫혀있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건축 안에 '자연'을 끌어들일 틈을 만듭니다. '빛의 교회'의 십자가가 인공조명이 아닌,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빛 그 자체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나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건축을 생각한다.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힘을 건축 속으로 끌어들여, 그 변화를 통해 공간에 생명감을 불어넣는다"고 했습니다.


endeavors-by-tadao-ando-_dezeen_2364_col_27.jpg 출처 : dezeen.com 'Tadao Ando creates full-scale mock up of Church of the Light for Tokyo exhibition'


이 철학은 '침묵'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안도의 공간 속 침묵은 결코 완벽한 무음 상태가 아닙니다. 그곳은 콘크리트 벽을 스치는 바람 소리, 천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빛의 변화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공간의 울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디자인해야 할 소리는 바로 이 '살아있는 자연의 소리'를 담을 그릇으로서의 침묵입니다.


감각의 확장: 우리의 역할은 인공적인 소리로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듣는 이가 세상의 가장 근원적인 소리를 발견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물의 대사 없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우리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 순간, 작품 속의 비는 더 이상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라, 나의 감각을 통해 직접 경험하는 실제 자연이 됩니다. 이는 듣는 이의 감각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공간과 하나가 되는 깊은 몰입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안도의 세 번째 가르침 - "경험의 과정을 설계하라"


안도의 건축은 단순히 결과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과 '여정'을 중시합니다. 그의 건축물은 종종 길고 복잡한 진입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방문객이 일상의 번잡함을 잊고 마음을 정화하며 핵심 공간을 맞이하도록 유도하는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20181004_ando_edited.jpg 출처 :Archdaily.com 'When Sunlight Meets Tadao Ando’s Concrete' 삽화


이러한 '경험의 시퀀스'는 사운드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침묵을 하나의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다른 소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동적인 사건'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감각의 확장: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으로 가득 찬 장면에서 시작하여, 점차 소리의 가짓수를 줄여나가며 마지막에는 완벽한 침묵에 도달하는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이 과정을 거쳐 도달한 침묵은 처음부터 주어진 침묵과는 전혀 다른 무게와 깊이를 가집니다. 소음과의 극적인 대비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침묵의 가치와 그 안에 담긴 평온함을 온전히 감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소리와 침묵의 순서를 어떻게 배치하고 경험하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침묵이라도 전혀 다른 감동과 의미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소리를 비워내어, 세상의 소리를 듣게 하라


'빛의 교회'에 소리를 디자인하는 일은 결국 소리를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소리를 비워내는 행위의 역설로 귀결됩니다. 안도 타다오가 콘크리트의 물성을 통해 빛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듯, 우리는 침묵이라는 재료를 통해 소리의 본질을 드러내야 합니다.


안도는 말했습니다. "건축은 말이 없어야 한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이름의 자연이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사운드 역시 너무 많은 말을 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비워내고 침묵함으로써, 듣는 이가 자신의 내면의 소리와 세상의 진짜 소리를 듣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가장 진실한 사운드 디자인일지 모릅니다. 창작자로서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가장 복잡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라, 단 하나의 소리라도 귀 기울여 듣게 만드는 그 '순수한 공간'을 창조하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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