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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소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흔드는가

소리의 와비사비, 그 감성적 탐구

by JUNSE

Sound Essay No.22

와비사비(侘寂)의 미학 I - 불완전한 소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흔드는가

: 소리의 와비사비, 그 감성적 탐구


어느 쪽 찻잔에 더 마음이 가시나요?


사진: Unsplash의Vladimir Gladkov

여기 두 개의 찻잔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형 마트에서 막 가져온 듯, 완벽한 대칭에 흠집 하나 없이 매끈합니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서도 반짝일 만큼 완벽하죠. 다른 하나는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의 작업실에서 갓 나온 듯한 찻잔입니다. 형태가 살짝 비대칭이고, 손으로 빚은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습니다. 표면에는 가마에서 구워지며 생긴 미세한 점과 유약의 흐름이 그대로 보입니다. 어느 쪽 찻잔에 더 마음이 가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자신도 모르게 두 번째 찻잔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 겁니다. 손안에 쏙 들어오는 비대칭의 곡선을 어루만지며, 그 안에 담길 따뜻한 차의 온도를 상상하고 싶어 할 겁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와 온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


소리의 세계도 이와 꼭 닮아있습니다.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이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같이 정확한 박자,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한 음질, 한 음 한 음 완벽하게 통제된 보컬.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완벽한 소리들은 종종 우리 마음을 그저 스쳐 지나갈 뿐, 깊은 흔적을 남기지 못합니다. 오히려 약간의 잡음이 섞인 낡은 LP 사운드나, 감정이 격해져 살짝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수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위로와 감동을 받곤 합니다.


이 글은 이 기묘한 끌림의 이유를 '와비사비(侘寂)'라는 오래된 미학을 통해 탐구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와비사비는 불완전하고, 낡고, 소박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본의 오랜 지혜입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소리에 더 깊은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것은 단순히 옛것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뇌와 마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관련된, 훨씬 더 깊고 근원적인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소리의 언캐니 밸리' - 완벽함이 주는 기묘한 이질감


요즘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노래는 분명히 좋은데, 가수의 목소리에서 사람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듯한 느낌 말입니다. 로봇 공학에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습니다. 로봇이 인간과 어설프게 닮았을 때는 귀엽고 신기하게 느끼지만, 너무 정교하게 닮아 인간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오히려 강한 불쾌감과 이질감을 느낀다는 이론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살아있지 않은 존재가 살아있는 척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인 거부감이죠.


사진: Unsplash의Caroline Eymond Laritaz


저는 소리의 세계에도 이 '언캐니 밸리'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기술은 목소리의 음정을 원자 단위까지 완벽하게 교정하고('오토튠'으로 대표되는), 드러머의 연주를 컴퓨터보다 더 정확하게 격자에 맞춰 정렬할 수 있습니다('퀀타이즈'로 대표되는). 기술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연주이지만,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기묘한 불편함을 느낍니다. 인간의 목소리인데 숨을 고르는 찰나의 순간도, 감정이 격해져 살짝 떨리는 끝음 처리도 없습니다. 마치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지만 어떤 표정도 없는 마네킹의 얼굴을 보는 듯합니다.


이것이 바로 '소리의 언캐니 밸리'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소리. 우리는 그 소리에서 감정의 교류를 나눌 살아있는 상대를 발견하는 대신, 차갑고 영혼 없는 기계의 시뮬레이션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소리로부터 한 걸음 거리를 두게 됩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조금씩 어긋나고, 흔들리고, 실수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소리에서 생명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닐까요.



예측 불가능함에 대한 뇌의 끌림 - 살아있는 것들의 리듬


우리의 뇌는 참 신기해서, 질서 정연한 패턴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면서도,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패턴에는 금세 지루함을 느낍니다. 오히려 약간의 불규칙성과 예측 불가능함이 있을 때, 뇌는 더 깊이 몰입하고 즐거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디지털시계의 초침은 1초에 한 번씩, 약속된 그대로 정확하게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안정적으로 느껴지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무미건조하게 느껴집니다. 반면, 거실 한쪽에 놓인 모닥불의 불꽃은 어떤가요?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예측할 수 없이 일렁입니다. 그 불규칙한 움직임과 '타닥'거리는 소리 속에 어떤 생명의 리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몇 시간이고 그 불꽃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진: Unsplash의CHUTTERSNAP


소리도 이와 꼭 같습니다. 컴퓨터로 찍어낸 완벽한 리듬은 디지털시계와 같습니다. 반면, 뛰어난 드러머가 연주하는 리듬은 모닥불의 불꽃과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같은 박자를 연주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 순간 미세한 타이밍의 차이(마이크로 타이밍)와 세기의 변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이 미세한 흔들림을 '그루브(Groove)' 혹은 '소울(Soul)'이라고 부르며, 그 살아있는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어 합니다. 오래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살짝 어긋난 피치, 카세트테이프의 미세한 속도 변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예측 불가능한 '결점'들이야말로 소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우리의 뇌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아름다움의 정체입니다.



시간과 흔적이 주는 위로 - 불완전함에 대한 공감


사진: Unsplash의Raymond Petrik


와비사비의 한 축인 '사비(寂)'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사물이 자연스럽게 낡아가는 모습, 그 시간의 흔적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불완전한 소리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는 비밀이 담겨있습니다.


완벽하게 깨끗한 디지털 사운드는 어떠한 과거도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제 막 태어난 것처럼, 아무런 이야기도 상처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낡은 LP의 표면에서 들려오는 '타닥'거리는 잡음이나, 창고에서 찾아낸 오래된 카세트테이프의 '히스' 노이즈는 어떤가요? 그 소리들은 단순한 잡음, 즉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음악이 수십 년의 세월을 견디고,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지금 나의 귀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간의 증거'이자 '이야기의 흔적'입니다.


우리는 그 소리의 흠집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읽어냅니다. '이 레코드는 어떤 공간에서 연주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들으며 울고 웃었을까'. 소리의 불완전함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 음악을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온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결국 우리는 그 소리의 흠집에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과 살아오면서 얻은 상처들을 투영하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얻는 것입니다. 마치 오랜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팬 할머니의 손을 잡을 때, 그 어떤 매끈한 손보다 더 큰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흠집을 사랑할 용기


사진: Unsplash의Taitopia Render


우리가 불완전한 소리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겁니다. 완벽한 소리가 주는 기묘한 이질감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예측 불가능한 흔들림에서 생명의 온기를 느끼며,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흠집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위로받는 것. 와비사비의 미학은 이 모든 감각을 아우르는, 인간다움에 대한 깊은 긍정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겠지만, 어쩌면 우리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완벽함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잘 만들어진 소리를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 그 소리 안에서 나와 닮은 구석을 찾아내고 조용한 위로를 건네받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디지털이라는 차가운 세상 속에서,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함께 상처받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그런 소리. 우리의 불완전함을 비웃는 대신, 따뜻하게 껴안아주는 그런 소리 말입니다. 오늘,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 그런 '흠집 많은' 노래 하나를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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