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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에 갇힌 사람들

알고리즘 시대, '우연한 발견'을 위한 의도적인 길 잃기

by JUNSE

생각 스케치 No.19

'바벨의 도서관'에 갇힌 사람들

알고리즘 시대, '우연한 발견'을 위한 의도적인 길 잃기

출처 : ebay.com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는 1941년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La Biblioteca de Babel)>을 통해, 우주를 '무한한 육각형의 방들로 이루어진 도서관'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도서관에는 알파벳의 모든 조합으로 만들어진 '가능한 모든 책'이 꽂혀있죠. 당연히 대부분은 의미 없는 문자들의 나열(소음)이며, 극소수의 책만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바벨의 도서관] 원문 및 해설 참고)


과거에는 이 상상이 그저 아찔한 철학적 유희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2025년 오늘, 저는 우리가 바로 이 '바벨의 도서관'에 살고 있음을 느낍니다. 수억 개의 곡, 수십억 개의 영상이 담긴 스포티파이유튜브의 데이터베이스는, 보르헤스의 상상보다 더 거대하고 압도적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친절한 '안내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리즘이라는 친절한 사서, 그리고 '취향의 감옥'

출처 : The Library of Babel (gabrielkahane.substack.com)


보르헤스의 소설 속 인물들은, 이 무한한 무의미 속에서 '진짜 책'을 찾으려다 절망하고 미쳐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알고리즘'이라는 유능한 사서가 있습니다. 이 사서는 나의 과거 취향을 완벽하게 분석하여, 내가 좋아할 만한(즉, '의미 있는') 음악들만 쏙쏙 골라 '데일리 믹스'나 '추천 플레이리스트'로 배달해 줍니다. 저는 더 이상 '바벨의 도서관'을 고통스럽게 헤맬 필요가 없어졌죠.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저는 종종 기묘한 공포감을 느낍니다. 이 친절한 사서가, 사실은 저를 '지극히 좁은 취향의 방'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특정 주제(예: 미니멀 테크노)에 대한 리서치를 위해 유튜브를 몇 시간 사용하고 나면, 그날 이후 저의 유튜브 피드는 온통 미니멀 테크노와 관련된 추천 영상으로 도배가 됩니다. 알고리즘은 "아하! 이 사용자는 이걸 좋아하는구나!"라고 확신하고, 저를 그 방에 가둬버린 것입니다. 제가 어제까지 탐닉했던 다른 주제(예: 고전 철학)의 영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저는 그만보고 싶어도 다른 주제가 뜨지 않아서, 스스로 다른 주제어를 검색하여 이 '알고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이 만든 '편리함이라는 이름의 감옥'입니다. 알고리즘은 '과거의 나'를 기반으로 '미래의 나'를 예측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혹은 '에코 챔버(Echo Chamber)'라 불리는, 지극히 개인화되었지만 동시에 지극히 편협한 '취향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의 [Filter Bubble] 개념 참고)



'우연한 발견'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 당하다

사진: Unsplash의Annie Spratt


이 '취향의 감옥'이 창작자나 기획자에게 더욱 치명적인 이유는, 그것이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보르헤스의 도서관이 매혹적이면서도 무서운 이유는, 바로 그 '무의미한 소음' 속에서 '우연히' 위대한 진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을 잘못 집어 들었다가, 거기서 평생의 화두를 발견하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이 '실패할 가능성', 즉 '소음'을 원천 차단합니다. "당신은 이 책을 싫어할 겁니다."라며 아예 접근조차 막아버리죠.


우리는 '바벨의 도서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곳을 탐험하며 길을 잃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물을 발견하는 '우연성'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는 사운드 디자이너, 혹은 무언가를 기획하는 사람에게는 끔찍한 일입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종종 '가장 효율적인 경로'가 아닌, '가장 낯선 경로'에서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인 길 잃기'라는 저항

사진: Unsplash의Jônatas Tinoco


그렇다면 우리 사운드 디자이너, 혹은 기획자들은 이 거대한 알고리즘의 감옥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우리에게는 '의도적인 길 잃기(Intentional Getting-Lost)'라는 적극적인 저항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알고리즘이 '나'를 정의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탐험 범위를 스스로 넓혀나가는 것입니다.


'안티-데일리 믹스' 상상하기: 만약 스포티파이에, 나의 취향 데이터를 기반으로 "당신이 지난 1년간 들은 음악과 가장 거리가 먼 음악 30곡"을 추천해 주는 '안티-데일리 믹스' 버튼이 있다면 어떨까요?


혹은, '바벨의 도서관 모드'를 켜고, "전 세계에서 단 한 번도 재생되지 않은 곡들"이나 "내가 절대 구독하지 않을 것 같은 장르의 팟캐스트"를 랜덤으로 탐험하게 해 준다면 어떨까요?


이처럼 '의도적인 길 잃기'는 알고리즘에 의해 필터링된 세계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바벨의 도서관'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나의 의도를 담되, 그 의도가 '효율'이 아닌 '우연'을 향하도록 비틀어보는 것이죠.



레퍼런스의 한계, 그리고 '생각의 감옥'

출처 : “La Biblioteca de Babel” Short Film by James van den Elshout (www.stashmedia.tv)

하지만 이 '의도적인 길 잃기'에도 명확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첫째,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발견하는 것들 역시, 결국 누군가 이미 만들어놓은 '기존의 음악(레퍼런스)'일뿐, '나의 창작'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둘째, 그리고 어쩌면 더 무서운 한계는, 이 '새롭고 강력한 레퍼런스'에 내가 또다시 갇히게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미니멀 테크노만 듣다가 '의도적인 길 잃기'를 통해 우연히 인도네시아의 '가믈란(Gamelan)' 음악을 발견하고 그 독특한 음계와 리듬에 매료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멋진 '발견'입니다. 하지만 그 후, 저의 모든 창작물이 '가믈란풍 미니멀 테크노'라는 또 다른 좁은 방에 갇혀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취향의 감옥 A'에서 탈출했더니, '취향의 감옥 B'로 이사 간 셈이죠.


그렇다면, 이 모든 시도가 그저 또 다른 '생각의 감옥'을 만드는 것에 불과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무엇을 발견했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잃으려는 시도 자체'에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순응하며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벽을 넘어 다른 방을 기웃거리는 그 '행위' 말입니다.


이 '의도적인 길 잃기'는 완벽한 영감을 찾는 행위가 아니라, 낡은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고, 나의 뇌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훈련(Training)'시키는 과정입니다. 가믈란 음악을 듣고, 르네상스 미술을 보고, 전혀 상관없는 양자역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그 모든 '딴짓'이, 당장은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결국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줍니다.


알고리즘은 우리에게 가장 편안한 길을 제안하지만, 창작자는 기꺼이 가장 불편하고 낯선 길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보르헤스의 무한한 도서관을 두려워하는 대신, 그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을 용기. 그 용기야말로 알고리즘이 결코 복제할 수 없는, 우리 인간 창작자만의 고유한 영역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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