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진 하늘은 강물 속에 거꾸로 담겨 있었고 그 위로 열차가 눈부시게 가로질러 갔다. 덜컹거리며 지나가는 열차의 금속성 빛이 강물 위에서 조각조각나 물고기 떼처럼 보였다. 모든 것이 다시금 아름다웠고 가을이 돌아온 것이다. 해가 기울자 자전거 도로의 아스팔트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내 그림자 뒤로 다른 푸른 그림자들이 겹쳐졌다가 따릉, 작은 종소리와 함께 앞서 갔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이 순간을 기록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카메라 없이 아름다움을 잡아두는 방법을 연습하기로 한다. 기억도 하나의 근육이기에 자꾸 써야 강해질 것이다.
초가을에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
1. 아이들의 점퍼 재킷을 채워주는 보호자들의 모습
2. 푸른잎과 낙엽이 섞여 달린 플라타너스 나무
3. 새벽 창밖으로 들리는 귀뚜라미 소리
4. 향을 피우고 환기하려 창문을 열 때 마주 들어오는 찬 바람벽
5. 메일함으로 찾아오는 간절기 아우터 광고
6. 채도는 높아지고 휘도는 낮아지는 하늘빛
7. 계절의 첫 붕어빵 포장마차 냄새
8. 김을 뿜는 만두 찜기 앞에 모여든 사람들
9. 경량 패딩 소매가 몸에 스치는 소리
10. 공원에 쌓인 낙엽 사이로 달리는 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