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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Oct 22. 2023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시를 읽으며 전쟁을 버틴다

쉽게 끝날 수 없는 전쟁

마흐무드 다르위시

신분증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신분증 번호는 5만번이오

아이들은 여덟

여름이 가면 아홉째가 나온다오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채석장에서 땀흘리는 동무들과 함께 일하오

그리고 내 아이들은 여덟이오

나는 그 아이들을 위하여 빵조각을 얻어내오

그리고 옷가지와 공책도

바위로부터

그리고 나는 당신의 대문으로부터 자선을 구걸하지도 않소

또한 당신의 현관 앞에서 비굴하지도 않소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나는 성도 없이 이름뿐인 놈이라오

나라 안의 모든 것이

들끓는 분노 속에서 살고 있는 그런 나라에서

참고 사는 사람이오

나의 뿌리는 내려졌소

세월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영겁이 열리기도 전에

그리고 측백나무와 올리브나무보다 먼저

그리고 풀들이 무성하기도 전에

내 아비는 쟁기의 가족이오

행세하는 양반이 아니오

그리고 내 할아버지는 농부였소

가문도 혈통도 없는

그는 내게 책읽기보다 먼저 태양의 긍지를 가르쳤소

그리고 나의 집 과수원지기의 초막은

나무막대와 갈대로 만들어졌소

그래 내 처지가 마음에 드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내 머리 색깔은 검은색이고

내 눈 빛깔은 커피색이오

그리고 내 특징은

나의 머리에 이깔을 두른 쿠피아가 있소

그리고 내 손바닥은 바위처럼 딱딱하오

누구든지 닿기만 하면 할퀸다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올리브 기름과 자아타르요

그리고 나의 주소는

나는 잊혀진 외딴 마을 사람이오

마을의 거리들은 이름도 없소

그리고 사내들은 모두 들판과 채석장에 있소

그래서 화가 난단 말이오?


기록하시오

나는 아랍인이오

당신은 내 조상의 과수원을 빼았았소

그리고 나와 내 아들들 모두가

경작하던 땅도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고 나의 자손 모두에게는

이 돌들 밖에 남긴 게 없소

그런데 그마저

듣기로는 

당신들의 정부가 가져간다고?

그렇다면


기록하시오  맨 첫머리에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소

누구도 약탈하지 않소

그러나 나는  내가 배고팠다 하면

나는 나의 것을 빼앗은 자의 살을 먹을 것이오

조심하시오 조심하시오 나의 배고픔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를 읽으며 전쟁을 버틴다는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아랍어로 낭송해준 시의 느낌에 그 어떤 뉴스보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실감과 역사성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쉽게 끝날 수 없는 전쟁. 어쩌면 끝나도 끝이 아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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