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대단한 작정이라도 하고 계획을 세우고 철저히 준비하며 움직였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 대학 시절에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해서, 복지가 좋은 대형 병원에 들어갔거나 회사를 차려 자수성가라도 했을까? 전혀 아니었다. 나의 첫 직장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치과의원이었다.
나는 스스로 대형 병원과 같은 큰 규모의 치과 내의 위계질서에 순응하며 주어진 내 일에 만족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저 평화로운 마음으로 근무할 수 있는 치과를 찾았을 뿐이었다.
아주 근사한 직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학동기들에 비해 괜찮은 수준의 임금과 복지를 누리며 근무를 하고 있었다. 막내로 입사했지만, 1년 입사 선배인 동갑내기 치과위생사가 있어 마음을 의지할 수 있었고, 진료팀장님을 비롯한 선배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에게도 예쁨을 받으며 꽤나 만족스러운 첫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치위생학과를 졸업했지만, 입사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은 나의 임상 업무 능력은 기초적인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업무 능력을 향상시켜, 나를 예뻐해 주시는 선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1인분의 몫을 하는 치과위생사가 되고자 애썼다.
진료실에서만 경력이 10년이 넘는 선생님이 진료업무 외에도 교정 유지장치를 제작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는데, 그 업무는 그 고년차 선생님 외에 다른 선생님들은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맡은 업무와 책임이 많은 고년차 선생님의 일을 덜어드리고자 제작 방법을 알려주시면 조금이지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 선생님께서는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혼자 하겠다'며 제작 방법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약간 무안하기는 했지만, 번거로운 일을 막내에게까지 시키지 않겠다는 배려라 생각하며 감동을 받았다. 그 후, 다른 고년차 선생님께 이 일을 말씀드렸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그 선생님 밥줄이야"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0년도 넘게 임상 치과위생사로서 일을 해왔는데, 저 선생님의 고용을 보장하는 유일한 업무가 교정 유지장치 제작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들끼리 하는 농담이라 생각하며 이 일을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임상 4년 차 치과위생사 선생님이 새로 입사를 했다.
이런 말이 무례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당시 내가 느끼기에 이 4년 차 선생님은 잔잔한 물가에 한 마리 미꾸라지 같았다.
당시 근무했던 치과에는 하루에 평균적으로 90명에서 100명의 환자가 내원했다. 그중 절반 이상이 교정 환자였는데, 교정 진료는 치과위생사의 섬세한 임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1년 차인 나에게는 교정 진료를 시키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대기 중인 교정환자가 많고, 다른 선생님들은 이미 환자를 보고 있던 상황에서, 내가 교정 진료를 보지 않으면 진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교정원장님께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고 우선 교정 환자를 진료실로 안내했다. 상황을 이해한 교정원장님은 나에게 쉬운 업무부터 시도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그렇게 나는 점차 선배 치과위생사들처럼 교정 진료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일반진료와 교정진료를 병행하던 중에 위에서 말한 4년 차 선생님이 태클을 걸어왔다.
"주화가 아직 1년 차인데 교정진료를 보는 건 너무 빠른 거 아니야?"라며 진료 팀장님에게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물론 막내인 나에게 많은 업무를 시키는 것에 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배려하는 마음으로 한 말일수도 있지만, 나는 교정진료에 참여하며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고 진료를 더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에 달갑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에도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에 대해 다른 고년차 선생님들에게 험담을 하고 다니고 (아무도 나에 대한 험담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지속적으로 험담을 해왔다), 바쁜 와중에도 이유 없이 나를 따라다니며 꼬투리를 잡으려 애를 쓰던 선생님이었기에 나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는 것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4년 차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자신이 그동안 교정진료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교정진료에 대해서는 나와 동일한 수준이었는데, 막내인 내가 먼저 진도를 나가는 것 같으니 선배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아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원활한 진료를 위해 최선을 다해온 진료팀장님 입장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주화가 재미있게 하고 잘해오고 있는데 갑자기 교정진료를 안 시킬 이유도 없는 것 같아"라며 태클을 넘겼다.
나를 상대로 걸어온 태클이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타깃이 나와 동갑인 2년 차 치과위생사로 바뀌었다. 신입으로 처음 입사해서 2년 차가 된 당시까지도 원장님께 큰 신뢰를 얻으며 야무지게 업무를 해서 늘 칭찬을 받아오던 친구였다. 그런데 4년 차 선생님이 평소에도 2년 차 친구의 아주 사소한 실수도 부풀려서 소문을 내기 시작하더니, 회식자리에서 원장님이 2년 차 친구의 업무 능력을 칭찬하고 있는데 "아니에요. 원장님. 2년 차 치고 일 잘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칭찬을 반박하기에 나섰다. 결국 회식은 하하 호호하던 분위기에서 얼굴을 붉히며 끝이 났다.
왜 이 선생님은 평화로운 치과에 왜 자꾸 돌을 던지는 걸까. 나는 그 원인이 4년 차 선생님의 업무 능력에 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자신의 업무 능력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후배 치과위생사를 헐뜯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를 자기 업무 능력을 향상하는 데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10년 차 이상 선생님의 일화와 4년 차 선생님의 일화를 겪으며 깨달은 것은, 임상 치과위생사로서 연차가 올라가면 자신의 업무 능력도 향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용주가 고년차 치과위생사를 고용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년차가 되면 후배 치과위생사들의 발전을 저지하는 것이 자신의 입지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선배가 되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멋있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후배들에게 알려주고도 나만 아는 것이 또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고년차가 되어서도 나의 입지가 굳건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근무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즈음, '좀 더 공부해야할 것 같다'며 원장님께 퇴사 의사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의사 전달에 원장님은 구체적인 계획을 물으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저 이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나도 후배의 앞길을 막는 선배가 되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퇴사 의지가 강하게 다가왔을 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나의 마음을 여과없이 전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부가 더 하고 싶다'는 말만 반복하며 나의 첫 직장에서 나가게 되었다.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 퇴사를 결정한 것에 대해 '답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첫 퇴사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 결심을 통해 얻게된 다른 기회들에 대해 감사하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