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한 사건은 살리고 작품과 인물을 특정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않기 위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설명을 최대한 삼갑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드려 죄송합니다.*
<드라마 회의>
드라마를 마치고 나는 또 일상으로 돌아왔다. 30살이 넘으면서 술을 끊은 다음에 나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에는 아침을 먹고 헬스장으로 가서 점심 전까지 운동을 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그것도 하기 싫을 때는 집에서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본다. 약속이 있는 날이나 일이 있는 날이 아니면 1년 365일 거의 동일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변화와 사건은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나의 삶은 단조로움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나는 예민한 성격이라 작은 변화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어 아침을 먹으러 가는 곳에 일하는 아주머니가 바뀌어도 나는 매장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인다. 애초에 변화가 생기는 상황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상황은 가능한 피하는 편이다. 드라마촬영이라는 큰 파도가 지나가고 나는 일상의 생활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몇 달의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에게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제작사는 다시 드라마의 녹음을 부탁했다. 신기하게도 작품을 쉬고 있으니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진다. 맞다 이건 내 천직이다. 스티브 맥퀸이 영화에서 말한 명대사가 있다. "레이싱은 삶이다. 그 이전과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저 기다림일 뿐이다." 나에게 촬영이 그러하다. 사실은 마음속으로 드라마를 깊이 애정한다. 나는 과거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드라마의 회의에 참석했다. 연출감독님은 나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여성이었다. 눈에는 활력과 총기가 넘치고 귀티가 난다. 우리는 종종 선천적으로 꾸밈없이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는 한다. 연출감독의 매력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감독님과 안면이 있었다. 예전에 마이크를 들 때 신입감독으로 현장에 자주 놀러 왔던 분이다. 이분은 선유도피디님이라 부르겠다. 나는 전에 인사를 종종 하기는 했지만 몸에서 나는 땀냄새 때문에 길게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은 없다. 회의가 거의 마칠 때쯤 애써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던 근육들이 부들부들 떨렸다. 회의가 끝나고 선유도 피디님은 나에게 와서 다시 인사했다. 나는 다시 온 힘을 내어서 입꼬리를 최대한 귀에 가까이 붙여본다. 다행히 오늘은 땀냄새가 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기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잘 부탁드립니다."
"오시는데 어렵지 않으셨어요? 기사님은 어디 사세요?"
"저는 일산에 삽니다. 감독님은요?"
"저는 선유도 살아요."
'선유도? 거기 섬인데 거기도 사람이 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사는 곳만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곱게 자란 분이 어쩌다 드라마를 선택한 것일까. 화사하고 명랑한 감독님을 보고 있으면 나는 그저 여기저기 밟히고 다니는 잡초처럼 느껴진다. 스텝들은 서로 인사를 마치고 현장에서 볼 것을 약속했다.
<나는 동시녹음기사다>
드라마 현장에 동시녹음 기사라면 별로 대단한 자리가 아니다. 오래전에 드라마를 경험할 때, 녹음은 촬영을 하는데 발목을 잡는 귀찮은 존재쯤으로 여겨졌다. 녹음기사는 자신 있게 말도 못 하고 다음 작품을 얻기 위해서 pd와 감독들에게 굽신굽신 하는 게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 녹음기사님들에 대한 인상이었다. 딱히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존심을 굽혀가면서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건 절대 우스운 일이 아니다. 더운 여름, 드라마는 촬영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스텝들 사이에는 친절한 인사가 오가지만 간혹 불친절한 사람들도 있다. 현장에는 A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의도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A는 처음부터 힘으로 나를 누르려 했다. 나에 대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행동들을 했다. 나는 스트레스가 있으면 일단 피하는 편이다. 나는 대단한 에너지가 없어서 일 이외에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는 편이다. 나는 A라는 사람과 최대한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애를 썼다. A는 나이도 많고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꽤나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현장에서 냉장고와 에어컨이 있으면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끄고 간다. 왜냐하면 냉장고와 에어컨 소리는 녹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현장에 스텝들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다들 귀찮게 생각을 했다. 나는 문제점을 A에게 말했다. A는 무슨 의도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여전히 내가 하는 말을 무시하면서 스스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듯 보였다. 녹음기에는 계속해서 안 좋은 소리들이 쌓여갔다. 나는 몇 번이고 사운드에 대한 문제를 알려주었지만 A는 계속 나의 의견은 무시하고 서둘러 촬영을 진행하기 바빴다. 나는 A의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나이가 어리기 때문인가? 나를 깔보는 거라면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지금은 촬영현장에 동시녹음기사로 나왔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나는 A의 태도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다음 촬영이 되어서 A은 태도를 바꾸어서 왔다. “기사님 여기서 제가 마이크 도와드릴까요?” 친근한 태도로 나왔다. 나는 오히려 그런 태도가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A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또다시 손바닥을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었다. 한 번은 촬영을 하는데 나는 필요한 소리들을 따로 녹음을 하고 있었다. A는 "이렇게 녹음하면 안 된다. 사람을 더 불러서 녹음을 해야 한다." 전혀 녹음에 대한 지식이 없는 말을 했다. 나는 "괜찮습니다. 이대로 하면 됩니다." 설명을 했지만 A는 여기저기 자신의 말이 맞다며 말을 떠벌렸다. 나는 체념하고 "그럼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데려오세요. 저는 그대로 녹음하겠습니다." A는 다시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하면서 "당신이 녹음기사니까 그건 네가 해야 할 일이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괜찮다고요."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A는 기가 막히다는 듯 나를 보다가 자리를 피했다. 애초에 책임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오히려 다행이야>
다음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B였다. B는 처음에 내가 인사를 하면 받는 척이라도 했지만 이후로는 A와 같이 내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결심을 한 건지 인사도 받지 않았다. 촬영장에서는 힘의 논리가 깔려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인사라는 것을 만나면 서로 하는 것으로 배우지만 사회에서는 나이와 지위가 낮은 사람이 윗사람에 하는 것 정도로 취급받는다. 촬영현장에 있는 스텝들은 모두 B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B는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췄는지는 몰라도 전혀 리허설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B는 사람들을 배려할 줄 몰랐다. 나는 촬영에 나가기 전에 나 스스로 약해지지 않으려 다짐을 했다. 사람은 선과 악의 양면이 있다. "선한 사람들은 내 선한 모습을 악한 사람들은 내 속에 있는 악귀를 보게 해 주세요." 인사를 받지 않는다면 나도 하지 않겠다. B는 전혀 굽힐 줄 모르는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B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B는 사운드에 문제가 발생할 때면 나에게 “귀 안 들리면 병원에나 가보라"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B가 말을 하자 옆에 같은 팀들도 웃으며 나를 조롱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말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다." 만약 그 사람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다면 나는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이 잘 못 되었나 의심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머리가 다 빠질 것 같았다. 아! 물론 머리털은 없지만 말이다.
<녹음기사의 일기장, 힘든 드라마 촬영현장>
4,5일의 이틀 간의 촬영이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6일에 예정되어 있던 촬영은 다음으로 밀렸다. 4,5일의 촬영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폭염으로 밖으로 나와 있는 것 만으로 땀이 수돗물처럼 흘렀다. 4일 촬영이 끝나면서 붐맨 동생은 자신이 촬영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든 하루라고 말했다. 물론 5일도 쉽지 않았다. 나는 특히 5일 촬영이 힘이 들었다. 씬은 어찌나 많은지 아무리 찍어도 끝이 날 생각을 하지 않고, 씬 중간에 의상을 바꾸러 가는 시간이 아니면 화장실을 갈 시간조차 없었다. 촬영현장은 사운드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제작피디님은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는 멍해지고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쓰러지면 대신 녹음기를 돌려줄 사람은 없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나와 붐맨 동생은 만신창이였다. 나는 동생이 촬영 중간에 "일을 그만두겠다"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서 최대한 동생의 마음을 확인하고 위로하였다.
<코너에 몰리다>
촬영장은 A와 B를 중심으로 녹음팀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잡혔다. 그들이 하는 행동은 일진들이 다른 약한 학생을 굴복시키는 방법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미 그들의 기세에 눌려 비굴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나 그들의 평가에 다음 작품이 갈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들의 생활이 걸려있는 가장들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에게 책임질 가족이 없었다. 나는 비굴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나는 모난 돌이 되기로 했다. 나 또한 마음속 깊이 항상 순응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타고난 기질과 반항심이 있는 것 같다. 악인을 긍정하고 싶지 않다. 그건 단순히 내 자존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굴복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더욱 당당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나는 일찍 영화와 드라마 일을 시작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는 진흙탕 싸움은 많이 해봤다. 문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고 내 손에도 결국은 진흙을 무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A와 B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사실 말도 못 할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기간이 길어지니 점점 나 스스로도 의기소침해지고 현장에서 얼굴을 구기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난 정신적으로 많이 코너에 몰려 그로기 상태였다. 나는 한 번도 작품중간에 일을 그만둔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만둔다고 이야기하지?" "언제 그만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까?" "그래도 오늘 촬영만 버텨볼까" 촬영이 있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물론 머리털은 없지만 말이다.
<든든한 지원군>
평소와 같이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의상팀의 여자 막내가 와서 나에게 인사를 했다. 가벼운 인사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막내의 환한 인사에 나도 오랜만에 현장에서 웃음을 보였다. 다른 스텝들은 권력 옆에 붙어서 커피를 바치고 아부하기 바쁜데 이 현장에도 그런 힘의 관계를 모르는 순수한 아이가 있었다. 권력의 미움을 사서 좋은 경우는 없다. 의상팀 막내 친구는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촬영회차를 거듭하면서 우리는 가벼운 농담을 나누기도 하고 조금씩 친해졌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나도 긴장을 풀고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반대로 나를 미워하는 무리들이 그 꼴이 보기 싫었을 것이다. 나는 점점 여유가 생기고 제정신을 차리자 촬영을 견디는 일이 쉬워졌다. 촬영을 할 때 내 모니터 뒤로 의상팀, 분장팀 마음 맞는 친구들이 모였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회장님으로 나오는 배우분이 있는데 왜 그런지 몰라도 나를 참 예뻐한다. 정말 따뜻함이 묻어나게 나에게 인사해 주고 한마디라도 농담을 더 붙여주신다.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항상 더 잘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은 반대로 하는 실수를 범하고는 한다. 한 번은 납골당에서 촬영을 하는 날이 있었다. 연기를 하는 배우는 납골당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을 보러 와서 오열하는 씬을 준비 중이었다. 추운 날, 나를 미워하는 스텝들이 배우가 연기를 하는 곳 뒤에서 라면을 끓였다. 다 끓인 라면 옆으로 무리들이 모여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상식적으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라면을 먹는 이들도 전혀 부끄러음을 몰랐다. 그건 추위에 떨면서 씬을 준비하는 배우와 스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다른 스텝,배우들과 달리 따뜻한 라면을 먹으면서 자존감을 채우거나 우월감을 느낄 것이다. 더 이상 그들로부터 아무 상처를 받을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