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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Aug 28. 2022

009

01.  집에 바퀴벌레가 나왔다.  

여자친구가 퇴근 후 빨랫대에 걸어 놓은 셔츠의 어깨 부분에서 더듬이를 빼꼼, 좀 더 기어 올라와 갈빛 얼굴도 빼꼼.

발견한 순간부터 여자친구와 나 둘 다 소리 지르고 난리였다.

빨랫대가 베란다에 가까워서 바퀴벌레가 붙어있는 셔츠를 얼른 밖으로 가져가 털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바퀴벌레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는 것도 소름이다.

얼른 문을 닫아서, 그 후로 그 바퀴벌레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이 집에서 1년 반 이상 사는 동안 바퀴벌레가 나온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본래 집에서 살던 놈이 아니라, 우연히 들어온 놈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길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들을 본 적이 있다.

밖에서 돌아다니던 중 옷에 탔거나, 집 어딘가 문이 열려 있었을 때,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후..

첫 바퀴벌레를 본 몇 주 후, 3박 4일 여행을 다녀와 집에 들어온 순간, 시간은 저녁 11시쯤이었다.

현관 전등불이 들어오자마자, 뭔가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무언가는 바닥에 눕혀있던 우산 밑으로 들어갔다.

여자친구한테 가만히 있어, 라고 명령을 내려놓고, 얼른 방에 있던 살충제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바닥의 우산을 걷어내는 순간, 후..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갈빛 바퀴벌레가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난 살충제를 마구 뿌려가며 쫓아갔다.

놈이 빨라서 놓칠 뻔했지만, 쓰레기통 뒤에서 결국 살충제를 마시고 배를 뒤집었다.

그런데 그놈 옆으로 또 새끼손톱만 한 놈이 기어 나왔다.

또 사정없이 살충제를 뿌렸고, 그놈도 배를 뒤집었다.

현관 불을 켜고 두 마리 바퀴벌레를 잡기까지,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많은 감정들이 오고 갔다.

내 말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여자친구는 거의 울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뭐지, 어떻게 두 마리나 있지, 왜지, 혼란스러워하며 싱크대 배수구 마개를 열어봤는데, 또 손가락 한마디 만한 놈이 톡 튀어나왔다.

또 사정없이 살충제를 뿌렸고, 싱크대 턱을 못 넘은 세 번째 놈도 약을 마시고 배를 뒤집었다.

진짜 절망이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여자친구는 울기 일보 직전, 나라도 정신 부여잡고 여자친구를 달래려고 하는데, 여자친구가 갑자기 크게 소리 질렸다.

여자친구는 화장실 문! 이라고 외쳤고, 가리키는 쪽을 봐보니 이번엔 손가락 두마디보다 큰 놈이 화장실 문 모서리를 따라 기어 다니고 있었다.

또 살충제를 들고 가서 사정없이, 죽어! 죽어! 외치면서 뿌렸지만, 큰 놈이라 쉽게 죽지 않았고, 빠르게 도망가더니 냉장고 밑으로 들어갔다.

나도 얼른 쫓아가, 냉장고 밑으로 살충제를 마구 살포했다.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놈이 약을 먹고 바둥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각도를 좀 바꿔서 봐보니 배를 뒤집은 놈이 보였다.

너무 구석진 곳이라 나무젓가락으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아, 이 놈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크고 징그럽게 생겼었다.

여자친구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귀가 후, 불과 10분도 안 되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두 마리가 더 나왔다.



2. 새벽 0시 해충 방역 업체를 불렀다.

가격이 너무 비쌀까 봐, 물어봤는데, 6500엔이라고 해서,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업체 직원이 온 것 같은 차 소리가 들려서, 나가봤었는데, 출장 온 두 명 중 한 명이, 다른 집 건물 담벼락에 오줌을 싸고 있었다.

참.

집에 들어와서는 무슨 약을 뿌려준다든가 그런 것도 없었고, 조사한다며 그냥 구석진 곳을 봐주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안내해 주는 게, 본격적인 방역 가격은 7만 엔이란다.

내가 그건 너무 비싸다니까, 4만 엔대 방역도 있단다.

무슨 4만 엔이나.

그냥 곧 이사할 거라서, 그 값으로 방역은 못하겠다 했다.

6500엔은 현금으로 냈는데, 그냥 조사비였다.

참.



3. 바퀴벌레 퇴치 연막탄은 터뜨렸다.

그전에 대청소도 했다.

정말 가슴 조리며 했다.

어디 들출때마다 바퀴벌레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다.

연막탄을 터뜨리고 몇 시간 카페에 있다가 돌아왔다.

바퀴벌레가 번식한 집에 연막탄을 터뜨리면 보통 몇 마리 정도 나와서 죽어있다던데, 그렇지는 않았다.

집에 바퀴벌레가 번식한 건 아니려나.

밖에서 들어온 경우, 보통 배수구 통해서 들어온다고 하길래, 집에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았다.

환풍구도 그물망으로 막고, 배수구 등은 접착력 강한 테이프나 플라스틱 망으로 막았다.

그 후 현재까지 몇 주 지났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바퀴벌레가 다시 출몰하진 않았다.

의문이다.

저번 10분 사이 바퀴벌레를 여섯 마리나 잡았는데, 그 이후로 한 마리도 안 보인다.

번식했는데, 잘 숨어있는 걸까, 아니면 3박 4일 집을 비운 사이 인기척이 없던 그 틈만 노려 신나게 놀고 있던 걸까.

집을 비운 그때, 도쿄에 태풍이 왔었는데, 비 때문에 피해왔던 것일 수도.

아무튼 집 계약 만료 후 이사 가는 건 일말의 고민도 없이 확정이다.



4. 3박 4일 교토에 다녀왔다.

고속버스로 다녀왔는데, 편도 9시간 넘게 걸린 것 같다.

갈 때는 야간 버스로 새벽에 이동했다.

난 버스에서 잘 자는 편이라 괜찮았는데, 여자친구는 잠도 잘 안 오고 힘들었나 보다.

중간중간 휴게소에 많이 들르는데, 간식 사 먹는 것도 재미다.

버스가 가장 싼 방법이었는데, 여자친구가 다음에는 비싸더라도 신칸센을 타자고 당부했다.



5. 교토는 관광하기 좋은 도시다.

구경할 곳도 많지만, 음식도 맛있다.

실패한 식당이 없었다.

그중 최고는 곱창 라멘이었다.

지금까지 먹은 라멘 중에 가장 맛있었다.

키요미즈테라 언덕길에 있는 말차 카페의 호지차도 너무 맛있었다.

호지차가 본래 이런 맛이었구나, 감탄했다.

이외에도 큐카츠, 소바, 모츠나베 등 다 맛있었다.



6. 교토의 관광지 중 가장 재밌었던 곳이랄까,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곳은 아마도 이나리 신사 일 것 같다.

이나리 신사는 빨간 도리이가 길게 줄지어 있는 센본도리이가 유명한 곳이다.

센본도리이는 신사의 본당 부근부터 이나리 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관광객 대부분이 본당 부근 시작점에서 사진 찍고 돌아가는데, 나랑 여자친구는 오기로 이나리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처음엔 정상까지 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 지점을 지나서부터는 정상까지 가지 않으면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아 계속 걸어 올라갔다.

막상 정상까지 도달해보니 별 거 없었지만, 평소답지 않은 여자친구의 의지를 볼 수 있어서, 뭔가 새로웠다.



7. 교토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산책하는 취미가 생겼다.

여행 중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의 '귀무덤'까지 산책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뭔가 좋았다.

'귀무덤'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전리품으로 잘라온 조선인의 코와 귀가 묻혀있는 무덤이다.

호텔에서부터 오고 가는 길이 이쁘기도 했고, 적당히 운동되는 느낌도 좋았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도쿄에 돌아와서도 산책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우선 살고 있는 마을에서부터다.

역과 집 사이만 다녔던 루트에서 벗어나, 아무 목적지나 잡고 산책을 다녀봤다.

그동안 몰랐던 분위기 좋은 카페나 괜찮은 식당도 발견하고,  돌아다니는 동안 사진 찍을만한 풍경도 제법 있었다.

여름이라 산책하고 집에 돌아오면 적당히 땀도 나고 좋다.



8. 꾸준히 로또에 투자하고 있다.

일본엔 로또 종류가 몇 가지 되는데, 그중 로또6를 계속해왔다.

그리고 최근 그 결실을 맺었다.

4등에 당첨됐다.

그것도 같은 회차 5등도 동시 당첨이다.

총 만 육백 엔을 당첨금으로 받았다.



9.  일본에서 손흥민 경기를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독점한 spoTV을 구독하거나, 그 중계권을 일부 이용하고 있는 AbemaTV을 구독해서 보는 방법이다.

AbemaTV는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일부만 중계하는 거라, 우선 spoTV부터 구독해 보기로 했다.

구독료는 1300엔인데, 돈 내는 문제는 둘째 치고, 어플 상태가 문제였다.

얼마나 대충 만들었는지, 가입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다.

화질도 그리 좋은 거 같지 않고, 아이패드용 어플도 없는 듯하고, 여러 이유로 사용자들에게 욕을 아주 많이 먹고 있다.

어플 평점은 바닥을 치고 있다.

코멘트에 작년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을 가지고 있던 DANZ에게 중계권을 돌려주라는 내용도 많고, spoTV가 한국 회사라는 걸 알고, 한국을 욕하는 내용도 많다.



10.  도쿄에 대한 불만이, 살면 살수록 쌓여간다.

그럴수록 어쩔 땐 내가 도쿄는 제대로 즐기고 있지 못하고 있나, 아쉬움이 쌓여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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