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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은 Sep 29. 2024

015

01. 한국에 다녀왔다.

물론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만 이상하게 마음 불편한 일을 당하면 더 강하게 기억된다.

그런 경험 속 상대방들에게 대략 공통된 특징들이 있다.

굳이 답이 필요 없는 상황이라면 말없이 행동이 먼저다.

눈짓, 손짓, 고갯짓으로 가능하다면 그것으로 대체한다.

버젓이 코 앞에서도 말을 걸어도, 귀찮은 일 같으면 눈부터 마주쳐 주지 않는다.

답을 해준다 해도 물어본 사람이 민망할 만큼 핀잔을 주듯 하다.

비켜주세요 같은 부탁 없이, 자기 딴에 피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빠르게 판단하지 못해 서로 부딪치기라도 하면 무척 답답하게 여긴다.



02. 일본에서 한국말로 흉보던 습관이 한국에서도 나와서 주의해야 할 때가 있다.



03. 친구가 도쿄로 놀러 왔다.

한때는 이 친구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난 도쿄에, 친구는 서울에 남아 살다 보니, 일 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든 사이가 되었다.

이젠 친구의 취미도 생활패턴도 경제력도 많이 바뀌어 분명히 관심사도 달라졌을 텐데, 예전에 알던 성향에 맞추어 여행 코스를 짜고 말았다.

나름 알찼고, 친구도 재밌었다고 했지만, 괜히 내가 아쉬웠다.

그래도 오랜만에 같이 술 마시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우리 둘만의 그 분위기가 그대로라 다행이다.



04. 연락을 먼저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가 많이 끊겼다.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나마 대학교 때 친구와 가끔 연락하지만, 한두 명 정도다.

더군다나 외국에 나와 살고 있으니,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원하던 것이기도 하지만, 간혹 생각해 보면 그리운 사람들도 있다.



05. 난카이 대지진, 산산 태풍 같은 뉴스들 덕분에 연락들을 받지만, 드라마틱하게 반응해 줄 사건 사고 없이 무난하다.



06. 결혼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바다 건너 다른 국가에 있으니, 당연히 왕래는 힘들고, 과정들 간 텀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프러포즈는 작년에 했고, 양가에 각각 인사드린 건 한 달 전, 이제 상견례는 3달 후 예정, 결혼은 언제 할지

모른다.



07. 우연히 파리 여행 때, DSLR로 찍은 사진들을 봤다.

문득 도쿄에 사는 4년 동안 왜 DSLR를 들고 다니지 않았을까 후회가 됐다.

어제부터 들고 다녀보기 시작했는데, 얼마나 갈지는 또 모르겠다.



08. 방 계약 심사를 넣었다.

정말 좋은 방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마을도 이뻤다.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 길에서 러닝도 하는 거야, 이러면서 미친놈년 처럼 팔짝거렸다.

심사를 넣고, 4일 후, 부동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드디어 계약된 건가, 기대감 품고, 전화를 받았지만, 길게 씨부리는 말들 속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섞여 있다.

결국 한다는 말이, 저희 스텝이 방 정보를 잘못 올렸었네요.

사실은 집세가 4천엔 더 비싸요.



09. 다음부터는 우리 직원이 이런 실수하지 않도록 반드시 주의시키겠습니다.

이런 말은 왜 하는 걸까.

다음부터 실수 안 하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10. 내일 새롭게 집 찾기에 나선다.

부동산 회사만 다섯 번째다.

1LDK에서 2LDK로 옮기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방이 하나 늘어나면, 혼자 살다 둘 이상 살게 된다는 거니, 돈 버는 사람이 늘어나서 그런지, 가격이 확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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