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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라푼젤 Apr 21. 2023

기필코 사랑해 내겠다는 다짐

손원평 <아몬드> 서평

(*) 스포주의


평범한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타고난 관종이었던 나는 학창 시절 '평범함'을 극도로 싫어했다. 늘 튀고 싶어 했고, 무언가 다르다 여겨지고 싶어 했고,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모욕이나 조롱처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다 보니 세상의 기준에 적당히 맞추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평범하지 못한 것은 쉽게 손가락질받는 세상이니까. 너무 비범하고 뛰어나도 인생은 괴로워지니까. 지금은 그래서 아이를 위해 늘 기도한다. 이 아이가 뛰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비정상이라고 낙인찍힐 만한 요소를 가지지 않은 맑은 아이이기를. 그래서 순탄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기를.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착한' 아이이기를.


책 <아몬드>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윤재와 곤이는 이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많이 먼 소년들이다. 둘은 대조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특별한 결핍을 가지고 있고, 그 결핍으로 인해 사회에서 '괴물'로 불린다는 점에서 참 비슷하기도 하다. 윤재는 '감정표현불능증'을 겪고 있어 기쁨도 슬픔도 공포나 사랑도 느끼지 못하고, 곤이는 불우한 성장 환경으로 인해 비뚤어진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더욱 재밌는 건, 윤재는 감정표현불능증을 겪고 있음에도 매우 도덕적인 소년인 반면, 곤이는 도덕적이지 못함에도 누구보다 여리고 타인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성정을 지녔다는 점이다.


- 글쎄, 그건 네 마음만이 알겠지.
- 마음이 아니라 머리겠죠. 뭐든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니까요.
-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마음이라고 얘기한단다.


윤재의 도덕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엄마를 곁에서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다친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행동하게 만드는 윤재의 도덕성은 어디서 기인한 걸까. 엄마와 할멈의 극진한 사랑으로 학습된 것일까? 아니면 감정이나 두뇌와는 별개로 '마음'이라는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결국 이 질문은 해부학적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 단어인 '마음'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게 되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청소년 추천 도서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책답게, 이러한 근원적 질문에 답을 주기보다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울리는 교훈을 내어주는 쪽을 선택했다. 왕자님의 눈물 한 방울에 두 다리가 돋아난 인어공주처럼 윤재는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을 마침내 흘려냈고, 윤재의 무모한 우정 덕택에 곤이는 윤이수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엄마에게도 기적이 일어난 것은 덤.


나비의 날개를 찢던 날, 곤이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려다 실패한 그날, 어스름이 내리던 무렵. 바닥에 짓이겨진 나비의 잔해를 닦아내며 곤이는 몹시 울었다. 

-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다 못 느꼈으면 좋겠어...


슬픔과 분노에 휩싸여 살아온 곤이는 윤재에게 감정을 가르치려 하면서도 일면 부러워한다. 너무도 불운한 - 곤이보다도 사실 더 불운한 - 소년인 윤재가 그나마 멀쩡하게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이 없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곤이 역시 윤재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엄마를 잃은 슬픔도,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아빠에 대한 배신감도 접어둘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작가 역시 윤재가 비로소 감정을 느끼게 된 이 책의 결말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작가 역시 때가 묻은 어른이기 때문은 아닐까. 팍팍한 세상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어른들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때론 그 자체로 고통이자 버거운 짐이 된다. 그래서 감정을 지우는 법을 연습하고, 무뎌지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내는 어른들이 많다. 그런 노력 끝에 대부분의 어른들은 결국 정말로 무뎌지기도 하고.


윤재도 어쩌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할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 몸서리치는 고통을 느끼는 게 축복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테니.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마치 아름다운 동화 같다고 생각했다. 감정은 축복이니까. 가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는 스스로를 경멸하면서도, 나는 내가 풍부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다. 눈물이 많은 만큼 행복과 기쁨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인간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감정들이다. 무채색과 같았던 윤재의 삶은 앞으로 더없이 알록달록하게 빛날 테니, 이것은 당연히 해피앤딩이 맞지 않을까?

 

나는 누구에게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태어날 아이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곤이가 나의 아이라면, 윤재가 나의 아이라면...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아파했다. 아니나 다를까. 끄트머리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가 아이를 낳고 쓴 소설이었다.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 끝에 태어난 2명의 괴물. 작가는 좀 식상한 결론이지만, 결국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였다. 아니, 어쩌면 아이를 키워낼 엄마로서의 작은 '다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아이를 가지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어떤 책을 읽어도,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모든 것이 아이와 연관되어 생각된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작은 다짐을 해본다. 아이가 어떤 모습이건 간에, 아이가 조금 평범하지 않더라도 기필코 사랑해 내겠다는 다짐. 그리고 내 아이를 사랑하듯 세상의 모든 아이를 사랑해 내겠다는 다짐. 사랑은 예쁨의 발견이라는 할멈의 말처럼, 윤재도, 곤이도 예쁘게 보아 품어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길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한 생명의 우주가 될 준비를 해본다.


2023년 4월 21일, 열네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MBK

1. 괴상한 생물체라는 뜻의 ‘괴물’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할멈에게 ‘예쁜 괴물’이라고 불리던 윤재는 선천적으로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 괴물인 반면, 감정이 풍부한 곤이는 불행한 유년시절로부터 강해지기 위해 폭력을 선택한 ‘모두가 괴물이라 말하는’ 괴물이다. 이 외에도 천재적인 실력을 가진 복싱선수한테도 괴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괴물이 역설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애칭이 되기도 하고, 정상 범주와 공존해도 괜찮은 인간성이 부여되기도 한다. 각자 생각하는 괴물은 무엇일지 혹은 괴물로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2. 2월 달 책 <고백>과 같이 보통의 소설에서는 소년들의 일탈을 받아주는 존재는 오롯이 성인의 몫이었다. 하지만 곤이는 다른 사람도 아닌,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줄 모르는 윤재에 의해 개선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친구의 입장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소년에게 포용심과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도 주변인 또는 친구의 비행에서 본인의 진심어린 교류, 공감과 믿음으로 긍정적인 변화의 경험이 있었는지, 있으면 이야기해보자.


3. 두 소년의 만남과 우정을 통해 청소년 시기에 지식의 교육뿐만 아니라 감정과 공감의 교육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감정을 모르는 윤재가 사이코패스일지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반사회적 인격체로 성장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주변에 존재하는 여러 조력자들의 힘(애정,사랑)이 관여한다. 반면 곤이는 반대의 상황이다. 우리가 곤이의 아버지(윤교수)가 되었다고 가정 하에,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해보자.


4. 곤이는 매우 폭력적이나, 사랑받고 싶다는 외침을 거칠게 하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다. 하지만 이것이 정당화되거나 미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곤이의 입장이 된다면, 폭력성 짙은 행동들에 대해서 어떤 점을 어떻게 반성하고, 어떻게 사과를 하고,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이야기해보자.


5. 성장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진정한 성장이 소설의 해피엔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윤재가 울고 웃으며 감정을 느끼며 끝난다. “윤재의 진정한 성장”은 (1)감정을 다 느끼지 못하더라도 정상/비정상의 경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 그 자체로 인정받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2)감정을 느끼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는 사회에 굴복하며 정상범주에 속하는 것이 진정한 성장인지… <아몬드>에서 진정한 성장을 통한 해피엔딩은 무엇일지 이야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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