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어디서 살 것인가> 서평
밸런스게임 중독자인 남편이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게 가장 즐겨 묻는 레퍼토리는 바로 '어디서 살 것인가'다. 예컨대 한 달에 동일한 생활비가 주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파리의 원룸에서 살고 싶은지 아니면 동남아의 대궐 같은 집에서 살고 싶은지 따위 말이다. 내가 예상외로 쉽게 대답할 경우 파리의 원룸에선 난데없이 쥐가 튀어나오고, 동남아의 대궐에서 일하는 이모님의 숫자는 계속해서 증식한다. 때로는 그 무대가 강원도와 서울로 옮겨지기도 하고, 비교 대상이 뉴욕과 파리가 되기도 하고, 바닷가와 산이 되기도 하고, 또 가장 비싼 동네의 구축아파트와 가장 저렴한 동네의 펜트하우스가 저울에 오르기도 하면서 남편의 질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때마다 나는 그 시답지 않은 질문들에 무미건조하고 빠르게 대답한다. 파리가 좋지. 응, 그냥 파리. (쥐는 좀 곤란한데...) 서울이 좋아, 강원도는 오빠 혼자 가. 그런데 나는 왜 파리를 좋아하고 서울을 좋아할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남편이 다시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내 귓가에 질문을 쏟아내는 듯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남편은 그냥 시답잖은 질문들을 한 게 아니었구나. 내가 '어디에 살고 싶은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지'가 궁금한 것이었구나. 나의 행복을 늘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이기에 평생을 함께 살아내야 할 내가 어떠한 환경에서 행복한지가 그리도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그냥 단순히 비싼 집, 넓은 집을 원하는 건 분명 아닌데 말이다.
과거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집은 무척 작았다. 하지만 대신 마당이나 골목길 같은 도시의 외부 공간을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가까운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며 여유롭게 살았다.
나는 '서울'과 '영등포'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큰 편이다. 영등포의 충무병원에서 태어나 스물아홉 살까지, 30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영등포 밖으로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영등포에 거주 중이시고, 동생 역시 신혼집과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재의 집 모두 영등포에서 구했다. 나는 파주에 사무실과 공장을 가진 남편을 만나 결혼 후 30대를 일산에서 보내고 있는데, 일산살이 6년 차에 접어든 지금도 이 도시에 전혀 정을 붙이지 못해 서울로 이사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실 영등포가 엄청난 부자 동네라거나 살기 좋은 동네라고 평가받는 곳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등포에 사는 것을 늘 자랑스러워했다. 대학에 가서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내 멋대로 '서울의 중심인 영등포에서 온'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일 정도였다.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영등포구청장에 출마할 거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실 '요즘 시대가 추구하는' 살기 좋은 조건으로만 따져보자면, 내가 살던 영등포 집보다 지금 살고 있는 일산의 이 아파트가 훨씬 더 훌륭할 것이다. 우리 집은 46층에 위치해 있고, 거실뷰는 막힘없이 뻥 뚫려있다.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된 쇼핑몰에는 수많은 음식점은 물론 다양한 옷가게와 올리브영, 약손명가, 세탁소, 미용실 심지어 영화관까지,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눈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잠옷 차림으로 건너가 모든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1기 신도시답게 거리가 깔끔하게 구획되어 있고, 서울 같은 교통체증도 없다.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낮시간에 거리를 걷다 보면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한적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반면 영등포는 기차역을 품은 구도심이라 일산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시장, 포장마차가 군데군데 살아있고, 어디에든 사람이 많다. 늘 붐비고 정신없다. 게다가 우리가족은 3.5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맨 위층에 살았는데, 집 내부의 나무 계단으로 연결된 다락과 옥상의 활용도가 좋은 집이었지만 구축 특유의 문제점이 많았다. (결혼 전까지 무려 그 집에 20년을 넘게 살았고, 나의 결혼을 기점으로 가족 모두가 이사를 했다. 처음 그 집으로 이사 갔을 땐 부잣집같은 이층집이라며 마냥 좋아했었는데...ㅎㅎ) 엘리베이터가 없는 주택이니 늘 비바람을 맞으며 3층까지 계단을 올라야 했고, 이웃들과 가까이 지낸 탓에 크고 작은 문제로 부딪치는 경우도 있었다. 동네 모든 어르신의 인사와 참견을 들어야 하는 것은 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것들이 - 내가 어쩌면 때때로 혐오했던 것들이 - 내가 영등포를, 그리고 서울을 그리워하는 이유일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저자의 표현대로 나의 영등포는 '살아있는' 도시에 가까웠다. 거기다 영등포에 사는 내내 대중교통과 택시, 두 발을 이용해 어디든 다녔지만, 일산으로 이사 온 후에는 매일같이 서울에 나오느라 이동의 99% 이상을 차로 하다 보니 삶의 방식 자체가 달라진 것도 한몫할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차'와 '도로'는 공적 공간이 아닌, 철저하게 사적인, 그래서 '외로운' 공간이니까. 나는 아마도 서울 자체보다는 어릴 적의 추억들과 나의 사람들을, 그 시절의 정겨움과 그 복잡다단함을 그토록 그리워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선택한 라이프스타일이 그런 도시 공간 구조를 만들어 내고, 우리에게 선택권이 없는 한 방향으로 도시가 진화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은 것이다.
영등포는 오래된 구축 빌라나 다세대 주택들이 많다 보니 지금 재개발이 한창이다. 몇 년 전에는 대대적인 재개발 사업을 통해 서울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엄청난 규모의 '신길뉴타운'이 들어서기도 했고, 내가 결혼 전까지 20년 넘게 살았던 집도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었다. 사람들이 신축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리고 더욱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파트와 담장은 점점 더 높아지고, 오래되고 불편한 집들은 끊임없이 헐려가고 있다.
어릴 적 나의 일기에 매일같이 등장하던 '사러가'와 '신풍시장'도 신길뉴타운 재개발로 모두 사라졌다. 나무에서 떨어진 씨앗을 밟을 때 나는 뽀드득 소리가 유난히도 좋았던, 여름이면 매일 동생과 손잡고 그늘 밑을 사부작 거리며 걸었던, 동네의 커다란 아름드리나무도 일찍이 헐렸다. (그 나무가 베어지던 날의 감정을 생각하니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울컥하며 눈물이 고인다.) 남편에게 나의 모교를 소개해주기 위해 학교에 놀러 갔을 땐 보안 상의 이유로 제지를 당해 진입조차 하지 못했다(어릴 땐 밤늦게 엄마와 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곤 했었는데!). 거주민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도시를 다시 짓고,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이쯤에서 다시금 나의 서울살이를 돌이켜보니, 어쩌면 축복 그 자체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처럼 나의 집은 좁았지만 골목길에서 다양한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영등포공원과 보라매공원이 도보권에 있어 매일 같이 드나들었고, 주말이면 부모님과 차로 10분 남짓 거리의 한강공원이나 여의도공원에 가서 수영도 하고, 롤러브레이드도 탔다. 6년의 직장생활을 여의도에서 했는데,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여의도공원이었고, (회계사 특유의) 긴 점심시간 덕에 한강공원까지 걸어가 피크닉인 양 도시락을 먹는 것도 가능했다. 저자가 설명하는 좋은 환경(하늘과 닿은 계단과 옥상에서 늘 계절을 느낄 수 있고, 공원이 가깝고 다채로운 골목길을 낀)에 나름대로 부합했던, 꽤나 완벽한 서울살이였던 것 같다.
곧 나의 아이가 태어날 텐데, 이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게 될까. 어른이 되어 지금의 나처럼 어린 시절을 되돌아봤을 때 꽤나 괜찮았던 환경이었다고 말하게 해주려면, 어디에서 어떻게 이 아이를 키워야 할까. 보안과 안전을 이유로 점점 더 폐쇄적이 되고 있는 이 도시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고 추구하는 모습일 텐데. 한탄하고 불평하고 주위사람들에게 휩쓸려 다니기보단 내가 스스로 중심을 잡아야 할 텐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여전히 너무도 어렵다.
문맹자와 글을 아는 사람은 아는 것뿐 아니라 생각하는 것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제목만 얼핏 보면 마치 더 좋은 부동산을 고르는 방법에 관한 투자서 같지만, 이 책은 건축이 담아내는 '삶'과 '역사', '문화'에 관한 책이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동굴에서 웅크리며 지내던 구석기시대부터 시작해 농업혁명과 산업화혁명, 근대화를 모두 거치고 어느새 증강현실 속에서 포켓몬고를 잡고 있는 현재에 다다른다. 웬만한 역사서보다도 그 흐름에 짜임새가 있고, 지루하지 않게 인문교양 상식을 채워넣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적 현상들을 '건축'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워서 읽는 내내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하게 만든 책이었다.
음식을 자꾸 먹어 보면 음식 맛을 볼 줄 알게 되고, 음악을 자꾸 들으면 듣는 귀가 만들어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통해 건축물과 이 도시가 담아내는 '삶'을 관통해 보는 능력이 조금이나마 내게 생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의 가족이, 나의 아이가 조금 더 화목하고 따뜻한 도시에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서평을 쓰다보니 'House i used to call home'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브런치에 bgm 설정 기능이 있다면 딱인데ㅎㅎ Will jay라는 팝가수가 부른 곡이지만, 한 경연프로에서 리메이크 버전으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듣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생각나 또 주룩주룩 펑펑 눈물을 쏟아냈었.... (T지만, 감정과잉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 시간될 때 한번 들어보세요.
♨️핫클립♨️ 나 심신 안정 필요할 때 이 무대 보려고.. 김예지팀 - House I Used to Call Home|슈퍼밴드2|JTBC 210809 방송 - YouTube
[발제문] by LYK
1. 이 책은 총 12장의 챕터로 나뉘어서 각 챕터별로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챕터는 몇 장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2. 저자는 공간을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 정주 가능 공간, 이동 가능 공간을 x축과 y축으로 나뉘었다. 책에 언급되지 않은 공간 중 여러분이 이 사분면에 추가로 넣고 싶은 공간과 그 공간은 몇 사분면에 들어갈지 이야기해보자.
ex) 녹음실, 식당, 골프장, 미용실, 슈퍼마켓, 수영장, 백화점 등등 공간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
3. 이 책의 중반부에는 서울시청 신사옥과 동대문의 DDP 건물을 예를 들어 '신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변의 컨텍스트(context)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던 이 건물들의 신축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나눠보자.
4. 이 책에는 전 세계의 멋진 건축물들에 대한 소개가 많다. 개인적으로 직접 가봤거나 사진으로 접해본 건축물 중에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건축물에 대해 소개해보자.
5. 원룸, 빌라, 주택, 아파트 등 본인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스팟 혹은 존(zone) 이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ex) 거실, 화장실, 드레스룸, 서재, 부엌, 침실, 신발장, 베란다, 다용도실, 세탁실, 옥상, 창고 등등
6. 모든 금전적인, 상황적인 요건이 충족된다는 가정하에 한국 내에서 인생의 가장 긴 시간 동안 머물며 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어디서 살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