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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이라는 함정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서평

by 책 읽는 라푼젤

평범하다(平凡하다)

(형용사)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처음에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참으로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소설에서도 - 어쩌면 그들의 삶에서 조차도 - 주인공이 될법하지 못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지 싶었다. 그런데 문득 '평범하다'는 기준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범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평균' 정도이면 '평범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시시한 9개의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가장 '평범한' 이야기일까? 9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중 가장 평범한 사람을 꼽는다면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깨진 전조등을 뒤로하고 청혼한 그 남자? 많은 사람들이 평범함의 '기준'으로 내세울 수 있는 평탄하고 모범적인 삶이다만, 상위 7퍼센트의 학생만이 진학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국내 최고 대기업에 다니고, 서른 초중반에 신축 아파트를 구매하여 결혼한 이 남자를 감히 '평범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의 삶은 많은 이들의 '꿈'이라거나 '이상'에 가깝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누군가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사실은 '평균보다 조금 나은 삶'을 꿈꾸고 있을 확률이 높다. 모나지 않고 화목한 가정 속에서의 성장, 평범하게(?) 괜찮은 성적, '대기업'은 아니더라도 최소 '중견기업'은 되는 직장, 너무 늦지 않은 나이의 결혼,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을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는 만큼의 자녀 수 등. 그러니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들 말하는 거겠지. 애초에 그건 평범이 아니니까. 모든 것이 평균을 상회하는, <전조등> 속 '그'의 것처럼 뛰어나고 안정적인 삶일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속 니콜라이와 진주는 어떨까. <전조등> 속 '그'보다 더 친숙하다거나 평범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삶이겠지만, 학교에서 한두 명만 받는 흰 봉투를 건네받고 여전히 삐걱대는 그들의 삶을 또 단순히 평범하다고 치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인 평균 연봉과 가장 유사한 금액을 벌고 있을 것 같은 <롤링 선더 러브>의 맹희는? 보통의 일반인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핫한 예능에 도전장을 내밀고 카메라 앞에서도 초연히 행동하는 그녀에게는 평범보다 '비범'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싶다.


<세상 모든 바다>의 '나'는 재일교포 3세라는 특별한 출신을 가졌고, <보편 교양> 속 '곽'은 평범하지 않은 열정과 사명을 가졌다. <태엽은 12와 1/2바퀴> 속 '그'도 마찬가지다. 예순의 나이에 양양에서 홀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잘만 다듬으면 유튜브 떡상 각인 콘텐츠가 아닌가. <팍스 아토미카>의 '나'는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무겁고 높은>의 주인공 '송희'의 '역도 선수 출신'이라는 이력도 술자리에서 말하면 사람들에게 '우와, 정말 멋지고, 특이하다'라는 평을 들을만하다. (일단 내 주변엔 역도선수 출신이 없다.) <로나, 우리의 별> 속에 등장하는 '외다리비둘기'라거나 '아로미', '목련러너' 등은 삶 자체가 서술되어 있지 않으니 평범한지 특별한지 판단 불가능. 허나 그들의 삶도 면밀히 뜯어보면 필시 특별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범하지 않은 구석과 특별한 이야기들 몇 개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 진부한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소란스러운 펍을 오래 기억할 거라는 예감이 점점 강해졌다. 좋은 꿈. 좋은 꿈. 메시지를 나누고 누우면 가끔 얼떨떨했다. 이토록 좋은 일이 이토록 평범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심스러웠다.


도로 옆으로 검게 우거진 숲을 보았다. 첨탑처럼 솟은 나무들의 부분 부분이 희미한 형체로 보일 뿐, 숲 안쪽의 깊이는 알 수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들이 스치는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그 검은 바다의 가장자리에 서서, 그는 한쪽 신발을 잃어버리고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하나 따져보면 전혀 평범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왜 '평범하다'라고 느꼈을까. 생각해 보니 인물이 아니라 사건들이 모두 싱겁고 평범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극적인 갈등도 없고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반전도 없고 동화 같은 결말도 없는데, 어쩐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불안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불안하고 찝찝한 와중에 이야기는 늘 시시하고 황급하게 끝나버렸다.


'해진'으로 떠난 하쿠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는 다시 공부를 하고, 일상을 반복한다. 청혼을 앞둔 주인공 앞으로 검게 우거진 숲에서 무언가 나타날까 섬뜩했지만, 그는 그것을 계기로 더 로맨틱한 청혼을 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삶을 이어나간다. (사실 나는 그 평화가 너무 아름다워 <전조등>을 읽으며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니콜라이가 공장에서 손가락이나 팔 따위를 잃게 되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고, 은재가 아버지와 큰 갈등을 겪거나 대학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결국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다행일까? 작가는 왜 구태여 그런 이야기들을 넣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 있었다. 나는 그냥 선 채로…… 있었다.

백영록이라는 이름의 16세 소년이 사망한 사정에 대해, 군청 앞에서 행인에게 말을 거는 아주머니의 사정에 대해, 그 사정에서 나의 몫에 대해 무언가를 생각해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큼지막한 파도 하나가 방파제에 부딪쳤다. 하얀 물보라가 세차게 튀어 올랐다. 얼굴에 와닿는 차가운 물방울의 감각. 실제로 닿았을까 느낌뿐이었을까. 분명한 건 내가 뒷걸음질을 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 바다 앞에 오래 서 있지는 않았다. 십 분. 길어야 삼십 분. 허술한 기대로 바다에 간 여행객이 그렇듯, 멋쩍게 ‘자 이제는 슬슬……’ 하면서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해가 바뀌었고, 잠실 사건을 둘러싼 논쟁도 수그러들고 있다.

팬들은 봄이 오면 세모바가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아픔은 딛고 희망은 찾아서. 누군가 나에게 아직 세상 모든 바다의 팬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대답할 수 없다. 애초에 팬이었던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머지않은 때에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을 떠날 것이다. 일본으로. 또는 더 멀리.


9가지의 이야기를 읽은 후 처음에는 그저 시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세상 모든 바다>의 결말을 다시 한번 읽었다.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나니 어쩐지 이 결말이 다르게 읽혔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외면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퍽퍽한 아름다움이었을까. 순수했던 소년의 죽음을 잊어버리고, 군청 앞에서 행인에게 말을 거는 아주머니를 외면하였기에 하쿠는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더 멀리 떠나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영록을 떠올리며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면, 금은 더 복잡한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전조등> 속 '그'가 주웠던 한쪽 신발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정말?), 성폭행 현장으로 끌려가던 피해자가 남긴 마지막 몸부림이라거나 숲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이의 절박한 구호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그가 어두운 숲으로 한 발짝 더 내디뎠다면 그는 청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어쩌면 더는 평범한 삶을 영위하지 못할 만큼 끔찍한 일에 휘말렸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다른 사람의 평범한 삶을 구해낼 수 있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 니콜라이가 아닌 앙맨에게 일어났을 뿐이다. 만약 그 대상이 니콜라이였다면, 그는 값이 들지 않는 순수한 섹스와 사랑을 더는 평범하게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태엽시계를 감는 '그'가 파르르 떨리는 기분 나쁜 비닐봉지를 열어본다면, 204호에 다시 묵고 싶다는 손님의 사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면, 평범하게 딸을 맞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당연하듯이 누리고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은 사실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며 이 악물고 만들어낸 평범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함'은 정말 미덕이고, 과연 동경할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반면, 눈 내리는 12월 31일 '로나'는 진부하지만 엄연한 가난 앞에 발걸음을 멈춰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선택을 하였다. 그로 인해 천 명의 사람들이 움직였고, 한 아이의 인생이 바뀌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우엉과의 짧은 대화를 위해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선택하였기에 맹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었던 그녀였지만, 그 순간 그녀는 평범하지 않았다. 결말은 누구도 알 수 없으나, 필시 그녀는 행복해졌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거 나만 이상해?’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거창한 계획이나 사상 이전에, 그냥 세상이 이해가 안 돼서 참을 수 없는 거죠.


세계지도에서, 세상의 모든 바다는 분명 이어져 있다.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맹희는 그 무해하게 아름다운 세상 앞에서 때때로 무례하게 다정해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마음이 어떤 날에는 짐 같았고 어떤 날에는 힘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빼앗기기는 싫었다. 맹희는 앞으로도 맹신과 망신 사이에서 여러 번 길을 잃을 것임을 예감했다.


9가지 이야기들의 결말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쿠가 어느 날 다시 해진으로 돌아와 아주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갈지도, '그'도 모르게 백업되어 있던 블랙박스 영상을 어느 날 기어코 열어내어 인생의 파국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송희는 역도를 그만두고 더 찬란한 인생을 맞을지도, 혹은 다시금 질척거리며 역도장으로 기어 올지도 모르고, 로나는 타락하여 허경영 같은 사이비 정치인이 될지도 모른다. 찰랑거리는 비닐봉지에는 눈알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금은보화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열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을 뿐.


그 누구에게도 여전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야기가 그냥 평범하고 시시하게 끝나버리건, 여느 소설처럼 기승전결을 반복하건 결국, 끝내 이야기는 그들의 선택대로 이어질 것이다.


KakaoTalk_20250921_233658129_01.jpg 2025년 5월 27일, 서른아홉 번째 책당모의♥


[발제문] by LYK
1. 이 책에는 9편의 단편 소설이 등장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거나 좋았던 작품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어 보아요.


2. 소설 '세상모든바다'를 읽으며 '세모바'라는 아티스트가 참 '콜드플레이'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아이돌이 되었든 배우가 되었든 '덕질'을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보아요.


3. 소설 '전조등'의 남자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요. (물론 국민 전체를 놓고 보면 평범하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날들이 평화롭지만 그 평화 아래에는 잊히지 않는 전조등 터진 날의 찝찝하고 불편한 기억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소설만큼의 크기는 아니겠지만, 각자에게는 삶의 평화와 균형을 깨트리는 요소와 불안들이 있기 마련일 겁니다. 본인에게 불안을 주는 요소를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아요.


4.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자리를 구하고 노동한 만큼의 마땅한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현재에도 과거 학생시절 교무실에서 받았던 흰 봉투를 떠올리며 살아갑니다. 과거보다 분명 나아진 현실이지만 그 현실 또한 충분히 풍족하진 않기 때문인 걸까요?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의 영주권을 받는 것이 녹록지 않은 내용이 언급되는데, 외국인 노동자나 이민자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눠보아요.


5. 소설 '태엽은 12와 1/2바퀴 ' 에서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이자 은혜 아버지의 시선, 그리고 근육질과 곱슬머리의 시선 이렇게 2가지 시선으로 전개를 이어갑니다. 같은 장소를 2가지 시선으로 나누어 전개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던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는데, 204호에 묵었던 사내가 두고 간 검정 봉지에 들어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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