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022년 4월 7일 목요일 오전 8시43분 홍대 근처
내가 공부했던 건축학과는 건축가를 양성하는 학과였다. 건축가는 영어로 architect인데, arch는 으뜸이라는 어원으로 신을 지칭했고, tect는 기술 혹은 학문을 뜻했다. 말 그대로 '으뜸의 기술자'인 것이다. 과거 인물의 초상화에서 콤파스 혹은 기둥 주두를 들고 있다면 그는 건축가일 확률이 높다. 콤파스의 기하학과 기둥의 머리, 주두는 완벽, 으뜸, 신을 상징하기도 했다. 몇 달에 걸쳐 셀카를 남기는데 굳이 건축가임을 티내는 그 건축부심이 아무래도 그때부터도 대단했나보다.
건축설계수업이 되면 학생들은 스스로 으뜸의 기술자, 혹은 신을 자칭하며 공간을 주물럭거리곤 했다. 벽을 세우면 방이 생기고, 창을 뚫으면 빛이 생겼다. 수능점수에 맞추어 공대로 왔던 문과생 이소애가 건축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인간은 절대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깨달았고, 그 공간이 어떻게 구상 되었는지에 따라 너무도 다른 인상과 감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의도한대로 움직여 의도한 감정이 들게끔 만드는 건축수법들이 있다.
20세기 관공서들은 정치권력의 권위를 강조하려 했다. 웅장한 스케일에 차가운 돌을 사용하고 계단을 두어 위로 쳐다보게끔 한다. 종교건축에서는 신성한 느낌을 위해 빛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무거운 문이나 계단을 통해 신전까지의 여정을 고달프게 하여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동화될 수 있도록 만든다. 히틀러 옆에는 슈페어가, 박정희 옆에는 김수근이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 나은 생활상을 제시하려고 한 건축 개념도 있다. 근대 건축의 아버지인 르 꼬르뷔제는 인체 사이즈를 기반으로 치수의 기준을 잡는 ‘모듈러' 시스템을 만들었다. 포드 자동차로 대표되는 기계 혁명이 주목받을 때 였고, 르 꼬르뷔제는 사람의 공간 또한 기계처럼 모듈화하여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메타버스 내 주거를 위해 건축적 코딩하고, NFT로 부동산거래 시스템을 만드는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건축의 재미에 한껏 빠진 학생들은 여전히 으뜸의 기술자, 혹은 신을 자칭하며 공간을 주물럭거렸다. 의도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공간 사용자를 통제하거나 미끼를 던졌다. 본인의 생각은 확고할수록 좋았다. 이런 저런 크리틱에는 "하지만 저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로 방어했다. 그런 학습은 5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사회로 나와 건축사무소에 들어갔다. 건축가가 된다는 건 이름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건물은 김아무개 건축가(와 그 아래 무리들)가 설계하였습니다'의 '무리'에서 '아무개'가 되는 것이 모두의 목표였다.
나는 그 다수에 속하지 않았다. 대신에 어찌저찌 건축 바로 옆 분야로 와서, 도시공학을 석사로 공부하고 공간기획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했다. 그 중에서는 햇수로 8년 정도를 몸 담았던 노들섬이 있었다.
건축 설계를 하듯 공간 기획을 이어나갔다.
노들섬 내 여러 문화공간을 운영하면서 좋을 때가 훨씬 많았지만 이용객들이 기획 의도와 다르게 움직여서 당혹스러운 상황들도 간혹 있었다. 서점만 두고 봐도 그렇다. 노들서가는 '책문화 생산자의 플랫폼'으로서 다양한 출판사의 메세지를 이해하고 즐기다가는 것이 핵심 기획의도였다. 그렇기에 각 매대마다 출판사 브랜드가 도드라지는 구성을 하였고, 그들과 직접 협력하여 출판사 소개 및 도서큐레이션 등의 매대를 꾸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서점에서 단독 진행한 것으로 이해하며 서점의 큐레이션을 칭찬하는 손님이 꾸준히 있었다. 늘 기획의도를 설명하고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서 우리가 생각한대로 서점을 이용하였다. 사업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이 어려운 공간을 친절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사업종료를 앞두었을 때는 정산 이슈 때문에 책 판매를 중단하게 되었다. 여러 민원대응준비를 하였지만, 이용객들은 불편함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리뷰를 찾아봐도 여전히 '아이들과 가기 좋은 이쁜 북카페' 혹은 '노트북하기 좋은 한강 도서관'정도로 꾸준히 추천되어 조금 허탈하기도 하였다. 여전히 재방문객보다는 첫 방문객이 많았고, 그들은 원래 서점이 아니라 도서관이려니 했던 것이다. 우리가 만들던 것은 누구에게 환영받던 것이었을까.
노들섬은 회사에서도 가장 메인 프로젝트였다보니 본 사업이 끝나자 조직도 멈추게 되었다. 쉴 새 없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와야 비로소 달려온 길이 보이는 법이다. 우리가 달려온 8년이란 시간의 명암을 되짚으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거의 다 무너진 모래성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다시 새롭게 일을 꾸려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제대로 된 기획이 무엇인지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해나가야 우리의 성이 더 단단해질 수 있을지 알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의 일은 예술적 감각과 개인적 논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고 좋아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알게되었다. 이미 답은 여기 사람들 사이에 있다. 그걸 첨예하게 잘 찾아나가는 것이 나의 할 일이다. 이것은 '이름'으로 대변되는 마스터 아래에서 나 또한 '이름'이 되고자 노력하던 방식과 전혀 다르다. 이렇게 두 세계가 분리되는 경험은 섬뜩했다.
5년 간 배웠던, "하지만 저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던 방어를 버리고,
8년 간 공간을 운영하며, "제가 이런 기획을 짜봤는데요," 하던 습성을 버리고,
신의 손가락 놀이에서 두 발 딛는 사람들의 땅으로 간다.
조금 더 복잡하게 뒤엉켜있고 어려울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지금은 그 사실이 꽤 기대된다.
새로운 사업체의 이름을 지으며 정말 수만가지 단어가 나왔다. 최종 결정은 '오터시티(OTTER CITY)'이다. 우리의 고객상을 수달(otter)에 빗대어, 그들을 위한 공간과 서비스를 만들자는 다짐이 담겨있다. 여러 옵션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우리'가 아니라 '고객'에서부터 시작한 이름이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첨언 1)
사실 이 글을 쓰게된 건 건축가가 된 친구의 글 때문이다. 건축가의 의도를 무시하고 정반대의 의견을 주장하는 건축주의 고집에 대한 푸념이었다.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하니 이 글이 괜찮은 소회일지는 알 길이 없으나, 서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절할지 모르겠다.
(첨언 2)
이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이랑의 '신의 놀이'가 계속 생각났다. 그래서 제목도 중간에 바꾸었다. 뮤직비디오에서의 움직임들은 다양한 자리에서 창작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프리웍 영상을 보고 뮤직비디오를 다시 보면, 괜히 울컥하는 마음도 든다.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시나요
때로는 사막에 내던져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시나요
좋은 이야기가 있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좋은 이야기에 대한 신념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나요
요즘도 무섭게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고 계시는가요
중년의 나이에도 절망과 좌절의 무게는 항상 같은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만난 것 같은 이야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들의 옆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나요
성배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과 복수를 하려고 하는 사람
결국에는 모두가 집을 떠나면서 시작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단순한 영웅은 사람들을 대신해 제물로 바쳐져 죽음을 맞고
사람들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지요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좋은 이야기는 향기를 품고 사람들은 그 냄새를 맡죠
모든 이야기는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비극
희극은 제물이 흘리는 피를 받는 입구가 넓은 모양의 접시
어쩌면 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몰라
어쩌면 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좋은 이야기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려고 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