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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Feb 02. 2020

쓸 만한 인간

배우 박정민, 그 만이 써낼 수 있는 이야기들

가끔 출근 준비하며 듣는 '장성규의 굿모닝 FM'에서 박정민 배우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시 조금 괴로운 일이 있었는데, 장성규의 발랄한 위트와 박정민의 묵직한 목소리 덕분에 힘찬 하루를 맞이할 수 있었다.


고된 숙성의 시간이 지나 잘 익은 된장처럼 묵직하고, 그 시간을 따뜻한 물에 녹여낸 듯 향긋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과한 팬심으로 나타난 무리한 비유일 수도 있음) 그가 책을 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가 궁금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오랜 시간 동안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나아갔던 사람

드디어 빛나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쓸 만한 인간'이라는 센스 있는 제목을 지었을까.


제목에서부터 느껴진 언어적 짜릿함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빈번하게 나타나 짜릿함을 선사했다. 


저자의 글맛을 위해 인터넷 용어 및 철 지난 유행어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아버지가 명예퇴직을 하셨다는 사실도 잊은 채, 집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헬로비너스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다 들켜, 나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아버지가 PC방이나 가라며 쥐여 주신 만 원짜리도 울었다.
팔에 돋는 소름이 고름이 되어 터져 버릴 것 같은 지경
날 믿고 써주는 사람들에게 나의 베스트를 보여주는 건 당연한 거고, 그 베스트가 이전의 베스트보다 베터(Better)하게 만드는 건 매번 배우가 해내야 할 숙제일 거다.

글맛을 위해 이런저런 유행어가 다소 포함되어 있다는, 서문의 안내. 그의 상황을 희화화한 표현들. 소름이 고름이 되어버린다는 말장난. 베스트를 베터하게 만든다는 언어유희. 저자의 에세이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는 언어유희들은 문득  읽는 이를 즐겁게 했다.


이 책은 그가 주목받지 못했던 과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성했던 에세이들이 모인 것이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이렇다. 

다 잘 될 거다. 여러분도 나도


저자는 에세이를 쓰며 스스로를 치유하고, 읽는 이들은 그가 고된 시간을 견딘 이야기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그럼에도 에피소드 속 숨어있는 솔직함이 웃픈 공감을 일으킨다.

누구나 다 그렇듯, 그리고 특히 20대에는 더 그렇겠지만, 참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나 안 조급해. 나는 약간 천천히 가는 스타일인 듯."이라고 말하기 일쑤지만 사실은 마음이 그렇지만도 않다. 나랑 소싯적에 길바닥에서 소주 좀 마셨던 친구가 이제는 어엿하게 몇십만 원짜리 양주 먹는데 어찌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러워 죽겠지. 그래서 애써 그렇게 늘 마음을 다스린다.

"나는 천천히 가는 스타일이야. 천천히 가면 주위도 둘러볼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도 볼 수 있고. 자세히 보면 나무도 볼 수 있는데.
저 나무 어디서 많이 본 나문데. 저거 내가 2년 전에 본 나문데? 어? 여기 그때 거긴데.
2년 동안 나 뭐 한 거지?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지? 이 나무 기억나? 2년 전에…
어 그래 양주 먹고 있다고. 끊을게."

잘 될 거라고 믿고 싶지만, 의문이 들기도 하며 자주 안달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견뎌내어 결국 빛을 본 사람이 있으니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 결국엔 모두 잘 될 거다.




묵직하고 고단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말에는 힘이 있다.

흔한 메시지 비슷한 이야기일지라도 그 안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그만의 시간들을 견뎌냈기에 그의 메시지는 울림을 준다.

(연기 잘하는 배우에 대한 팬심도 몇 스푼 얹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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