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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Aug 16. 2020

초보 가드너의 길

식물과 함께하는 삶 <아무튼, 식물>

서재에 정원을 갖고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 키케로 -

어딘가에서 이 문장을 마주하고부터 나만의 정원을 꾸미고 싶었다. 서재까진 아니어도 책이 빼곡히 들어찬 책장은 있었지만 정원은 가질 수가 없었다. 이 문장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 나누다 '정원을 품을 정도의 집에 살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라고 비꼬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사실 해가 들어오는 조그마한 공간이 있다면 정원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다 이사를 가게 되며 해가 들어오는 베란다가 생겼고, 세탁기를 두고 남은 작은 공간에 나만의 정원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


첫 화분은 '페어리스타'라는 꽃이었다. 조그마한 별을 닮은 꽃들이 옹기종기 귀엽게 모여있어서 볼 때마다 사랑스러움이라는 감정이 차올랐다. 이사 후 며칠 뒤 꽃집을 지나치다 덜컥 구매하여 집으로 데려온 화분이었다.



아침마다 안부를 묻고, 물도 주고, 화분이 작아 보여서 큰 화분에 분갈이도 해줬다. 그러나, 지나친 정성과 무지의 탓으로 분갈이 후 페어리스타는 급격하게 시들어버렸다. 다시 살려보고자 영양제도 주고,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해보았으나 이미 생명을 다해버린 것 같았다. 가만히 꽃집에 있었으면 오래 살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데리고 와서 명을 다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페어리스타를 데리고 왔던 꽃집을 다시 찾아가 사진을 보여주며 "죽어버린 걸까요?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으나 첫 만남에서부터 쿨했던 주인 할머니는 "죽고 살고를 어떻게 알 수 있겠냐. 그늘에 두고 물도 조금씩 줘보다가 싹이 돋으면 아직 안 죽은 거지. 세상에 영원한 것 없다"고 말씀하셨다. 뭔가 세상의 진리를 담은 듯한 말이었다. 의외로 식물의 죽음에 무감하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저런 노력을 했으나 페어리스타는 떠났고, 무지를 반성하며 그때부터 식물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아무튼, 식물>은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변화한 삶에 대해 풀어낸 에세이이다. 하지만 워낙 식물에 무지했던 차라 에세이 곳곳에 드러난 식물 키우는 방법 등을 야무지게 습득할 수 있었다.


초보 가드너들이 식물을 죽이는 가장 흔한 이유는 과습이다. '일주일에 몇 번 물 주세요'하는 말을 무작정 따르다 보면 식물은 서서히 익사하게 된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마치 먹은 음식이 완전히 소화되기도 전에 더 많은 음식을 억지로 계속 입에 밀어 넣는 꼴과 같다. 흙의 상태를 파악하고 흙이 적당히 말랐을 때 물을 줘야 식물 뿌리가 건강하게 자란다.

처음 페어리스타를 맞이한 꽃집에 "물 몇 번 줘야 할까요?" 했을 때 "3~5일에 한 번씩 주면 돼"라고 들은 내용대로 루틴을 수행했다. 그러나 나중에 공부해보니 흙의 상태는 물을 머금은 듯 머금지 않은 식빵 같은 상태여야 하고, 최근의 습도와 날씨도 고려해 물을 줘야 한다. 다만 물을 줄 때는 배수가 될 정도로 흠뻑 줘서 흙 내부의 공기층이 순환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나는 그저 단 두어 시간 그를 직광에 내놓았을 뿐인데, 몇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볼품없는 모습이다. 그래도 이 고무나무 덕분에 본격적으로 식물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꽤 고마운 인연이기도 하다.

사람이나 동물이라면 아프면 고치고, 자생할 수 있을 텐데 그에 비해 식물은 회복이 참 느린 것 같다. 잠깐의 잘못된 선택이 그 식물을 많이 아프게 살아가게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식물키우기는 더 어려운 것 같다.


내가 키우는 식물들이 뿌리에서부터 물을 끌어올려 이파리 끝에 영롱하게 맺은 방울을 구경하는 건 매번 이성보다 감성을 건드리는 일이다.

어느 날 아침, 식물들을 보러 눈을 뜨고 베란다로 갔는데 몬스테라에 이슬이 맺혀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했었다. 갑자기 왜 이슬이 생긴 걸까 의아하며 가만히 바라봤었다. 그런데 그 물방울이 뿌리에서 끌어 올라온 것이었다니! 다시 보고 싶어서 물을 흠뻑 준 다음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죽어간 식물들을 통해 매번 다른 배움을 얻는다. 그들이 나에게 남겨준 경험치 덕분에 점점 식물들을 오래도록 살릴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식물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그 식물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식물을 또 데려올 수 있으니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죽였으니 또다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죽여봐야겠다. 이번에는 특별히 더 열심히 죽이고 또 죽이자.

아직 식물이 죽거나 아프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을 여러 번 받아들이고 나면 쿨한 꽃집 할머니와 저자처럼 의연해질 수 있겠지!


초보 가드너이기에 우리 집 작은 정원에 있는 식물들에게 츤츤할 순 없다. 아직은 매일 들여다보고 자주 흙에 손가락을 찔러 촉촉함의 정도를 가늠해본다. 타이밍과 적당한 무심함이 전부일 수 있다는 교훈은 얻었지만, 아직은 짝사랑하며 우리 식물들과 오래오래 살고 싶다. 또 이런 이야기도 독후감이 아닌 다른 글에 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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