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에 빠지게 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발상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지는 않았지만, 영화 <컨택트>를 감명 깊게 봤다. 그의 신작 <숨>이 나왔다기에 읽게 되었다.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읽기 힘든 책이었다. 기대가 컸으나 충족되진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발상보단 신박하지 않고, 미래의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다룬 부분은 다소 따분했다.
그럼에도 몇 가지 발상은 재미있었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때때로 떠올랐다.
예측기가 발명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측기를 누를지 - 누르지 않을 지에 대한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예측기를 통해 결국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은 본인의 자유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저 정해져 있는 답을 실행하는 것뿐이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겪은 변화가 전개된다.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예전에 읽었던 기사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결정을 할 때,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즉석'에서 결정한 것 같지만 그것은 '이미 정해놓았던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즉석에서 내리는 것 같은 결정이 사실은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고 한다.
때때로 이 연구결과를 떠올렸다.
집으로 갈 때 '큰 길가를 따라서 신호등들을 지나쳐갈까', '이 계단 밑으로 내려가 좀 돌아가더라도 탄천을 따라갈까'. 탄천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서도 선택을 계속 뒤집었다. 어떤 선택을 했던 지 그 연구결과가 떠올라서 문득 허무했다.
'이렇게 치열하게 내린 결정이 이미 그렇게 할 결정이었구나'
다행인 것은 이 연구 결과는 결정의 '시점'에 대한 문제인 것이지, 결정의 주체가 의지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가 결정을 내린다고 믿는다.
그런데, 올해 읽었던 몇 권의 과학 서적에서는 이를 의심하게 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세계의 변화는 무질서(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발생한다.
나의 결정은 나라는 존재의 의지에 의해서일까
나라는 개체를 가진 우주의 무질서를 증가시키기 위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속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지의 상실을 알고 무언증에 빠지거나 허무주의에 빠진 것에 공감했다.
작가는 이런 허무주의에 대해 경계한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믿으라고. 거짓말을 믿어야만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나는 일 년 뒤의 미래에서 당신들에게 이 경고를 전송하고 있다. 이것은 백만 초 범위의 네거티브 딜레이 회로가 통신 장치에 장착된 이후 처음으로 도착한 장문의 메시지다. 다른 문제들을 다룬 다른 메시지들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메시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라. 설령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스스로 내리는 선택에 의미가 있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믿느냐이며, 이 거짓말을 믿는 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명의 존속은 이제 자기기만에 달려있다. 어쩌면 줄곧 그래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자유의지가 환상인 이상, 누가 무동 무언증에 빠지고 누가 빠지지 않을 지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다. 그 누구도 예측기가 당신에게 끼칠 영향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굴복할 것이고 누군가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내는 이 경고는 그 비율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일을 한 것일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단편은 넷플릭스 <블랙 미러>에 나왔던 에피소드와 비슷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들을 라이프로그로 남긴다. 막대한 분량이기에 그걸 뒤져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리멤이라는 검색 도구가 나온다. 사람들이 리멤을 통해 쉽게 라이프로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검색 결과를 찾아낸다.
(소름 돋게도 우리가 지식을 구전과 기억에 의존하다가, 디지털화하여 네트워크 상에서 공유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리멤을 사실적 진실을 쉽게 증명할 수 있게 되지만, 망각의 자유는 사라지며 서로 간의 언쟁이 있을 시에는 사실만을 요구하게 된다. 기억이 지식처럼 사실적 진실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작가는 기억의 감정적 진실의 의미에 손을 들어준다. 그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은 수많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기억이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순간들을 공평하게 축적해놓은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애써 선별한 순간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서사이다. 설령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건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가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정 순간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며, 그것은 우리의 인격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세부사항들을 인식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억하며, 그 결과 구축된 이야기들은 우리의 인격을 형성한다.
작가는 어떤 감상 또는 하나의 작은 발상에서 각각의 이야기라 불릴 세계를 만들어냈다. 조그마한 생각의 눈덩이를 굴리고 굴려서 개성 있는 여러 눈사람을 만들어냈다.
조그마한 실마리를 끌고 잡고 생각하고, 그걸 메모하고 조금 더 덧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우리도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면 바쁘다는 핑계로 휘발시키지 않는다면,
잡고 물고 뜯으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