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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Aug 18. 2019

종의 기원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인가. 또는 생존인가.

이 소설을 다 읽은 날,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여운이 길다 못해, 머릿속을 어지럽힌 것은 오랜만이었다. 주로 실용서를 읽다 보니, 내용을 정리하고 책으로부터의 교훈과 액션 아이템을 추출하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는 무엇을 할지 모르겠어서 당황스럽다.

인간 본성의 악함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은 내 안의 어떤 벽을 허물고 녹슬게 하는 일이기에 두렵다.


소설 주인공의 정체는 초반 몇 페이지를 읽다 보면 쉽게 파악된다.

사이코패스다.



포식자는 인가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

포식자는 절대 악인이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레벨, 즉 절대 악인이다.

주인공은 포식자이고, 타인을 두 가지로만 분류한다.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그러나, 우리는 이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과 교류할 때,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 연애 상대를 고를 때 머릿속 계산 없이 그저 순수한 목적으로 다가가는가.

철학 독서모임 중이고 사랑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던 사람이 알려줬다. 사랑은 '사심 없는 관심'이고, 모임원들은 우리는 모두 가짜 사랑을 하고 있다고 인정해버렸다고 말이다.

사심 없는 관심, 계산 없는 관계가 가능할까.

 

우리와 포식자가 다른 점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집요하게 캐묻는 이모의 전화기를 누군가 뺏어버리면 좋겠다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때로, 나도 원치 않는 전화를 받거나 잔소리를 들을 때 아 제발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멈췄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주인공처럼 거칠게.


포식자인 주인공의 생각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때로 부도덕한 거친 생각들을 한다.

다만, 포식자는 이를 행동으로 옮긴다. 보통 사람은 생각에서 멈추어 버린다.


포식자가 살기 힘든 세상

전체 인구 중 2~3퍼센트가 사이코패스이고, 그중 1퍼센트가 포식자이다. 포식자는 절대 악인이다. 그러나 평화와 휴전으로 가득한 지금의 세상은 인간들이 피식자가 되도록 교육받는다.


도덕, 배려, 양보.

타인을 해하지 말라.


포식자가 살기 힘든 세상이다. 타인을 사냥하고, 피 냄새를 맡는 것에 흥분하는 포식자들에게 말이다.

사이코패스는 예전에도 존재했다. 그런 사이코패스들이 전쟁의 시대, 피비린내 났던 살육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굳이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야 했을까. 그들은 불편함 없이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갔을 것이고, 오히려 그 덕에 인정까지 받았을 거다.

지금이 평화의 시대이기에 그들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힘든 게 아닐까?


종의 기원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으로만 정의할 수 없다. 생존하기 위해 인간은 악의 DNA를 남겨야만 했다. 그 악의 DNA는 우리 모두의 몸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마치 요즘 사이코패스가 많아진 것 같지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본성적인 사이코패스는 줄었을 것 같다. 요즘은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생존 능력이 높다고 평가받으니까.


현대에 국가라는 계약이 성립하기 전,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지엽적인 자그마한 나라들이 전쟁을 펼치던 때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생존능력이 높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포식자도 피식자도 결국 환경에 따라 악이 되기도 선이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포식자의 그 능력이 인정받기도 배척당하기도 하는 게 아닐까.




작가는 이 소설을 3번 뜯어고쳤다고 했다. 그저 묘사나 플롯을 다듬는 수준이 아닌, 이야기 자체를 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말이다. 악인을 1인칭 관점에서 서술하는 이 이야기를 쓰기까지 <7년의 밤> 등 많은 소설을 거치면서도 악인을 그저 3인칭 관점으로만 묘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러 소설에서 악인을 묘사하고 나서야, '나'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들었다고. 하지만 이는 오만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2번째 부쉈을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했다고 한다.


초반에는 "아,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인 것 같은데. 왜 자기만 모르는 거야",

"네가 죽인 거잖아. 언제 밝혀지는 거지?"라며 지루했다.

그러나 탄력 받는 중반부를 거쳐,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면 소름이 돋는다.


작가는 살아 숨 쉬는 절대 악인 1명을 탄생시켜 내 옆에 데려다 놓았다. 너무나 소름 돋게도 사이코패스가 소설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은 그들의 인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그 날 것의 모습을 다 봤기에 사이코패스에 대한 거리감이 좁혀졌고, 그게 너무 무서웠다.


그 악함이 사실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잠재해 온 악이 발현되어버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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