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할머니
첫 카페, 망원동 커피집 ‘숍’ 이 있던 건물은 3층짜리 오래된 빨간 벽돌집이었다. 건물 주인 할머니는 항상 작은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억척스러움이 섞인 고집 불통의 표정을 하고 다니셨는데, 그래도 가끔 퉁명스러운 말투로 우리를 챙겨주셨다. 어느 날 같은 건물에서 액세서리를 만드는 언니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 할머니가 동네에서 폐지를 주워 자식들 공부시키고 이 건물을 산 것이라는 이야기. 이 동네는 그렇게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가게 가까이에 고물상이 있어서 그런 풍경을 더 자주 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손주들이 쓰던 건지, 어디서 주워 온 건지 모를 유모차를 리어카 대신 , 지팡이 대신 끌고 다니며 폐지를 주워 모았다.
마치 그것들을 줍고 차곡차곡 쌓아 밀고 다니는 것이 일생의 숙명인 것처럼,
그 틈 사이에서 살아온 세월을 찾는 것처럼,
지난 격동의 시간 동안 밭도 메고, 나무도 떼고, 수많은 날 밥을 지어 왔던 그 거친 손으로.
어느 날 화분에 물을 주다가 유모차보다 두 배는 높아 보이는 폐지를 한 가득 싣고 고물상으로 향하는 할머니를 보았다. 왠지 가슴 한편이 서글퍼졌다. 하지만 서글퍼진 내 감정과는 다르게 할머니의 뒷모습은 담담했다.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한 행위라기보다 그 행위를 함으로써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고물상들이 사라지고, 재활용에 대한 새로운 시스템이 생긴다면 폐지 주우러 다니는 어르신들을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그럼 이분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하루를 보내야 할까. 어쩌면 가난보다 쓸모없어진다는 두려움, 사라지고 있다는 허망함이 사람을 더 어둠으로 모는 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이제 번듯한 건물 주인이 되었지만, 구부정한 허리를 하고 망원동 구석구석을 천천히 누비며 여전히 폐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