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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화 Apr 19. 2017

도시의 흙

고추 농사





"그래서 그냥 습관처럼 하는 거지 뭐, 특별한 이유야 있나."













“내가 고향이 천안인데 거기에서 고추농사를 지었어. 해마다 이백 평씩 고추를 심었지. 그게 여간 힘든 게 아니야. 가을이면 다 따다가 또 말려야 되고… 그러다가 애들 학교 보낸다고 서울로 올라왔지. 그러고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애들 떠나고 없으니까 또 고추농사 생각이 나더라고.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긴 사람 살 데도 없으니 원…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습관처럼 하는 거지 뭐, 특별한 이유야 있나. “


-2015. 4. 가상의 인터뷰
















계절이 돌아오니 앞집 할아버지는 또다시 고추 농사를 시작하셨다. 

옥상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지붕 위 조그만 공간에 큰 붉은색 플라스틱 대야를 몇 개 가져다 놓고 거기다 흙을 가득 채워 모종을 심는다.

사실 그 흙은 해마다 그대로 쓰는 흙이다. 

연남동에 이사온지 3년째 부엌 창문으로 보이는 이 풍경으로 나는 해가 바뀌었음을 안다.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고추에 물을 주러 올라오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두어 시간씩 일을 하다 내려가신다. 

대야 사이사이를 잘도 피해 다니며 지지대를 세우고, 거름도 주고,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풀들을 뽑는다. 

그래 봐야 평수로 치면 세네 평쯤 되는 흙인데 그 흙에 그렇게 자식 돌보듯이 정성을 다한다. 

여름이 되면 고추는 빨갛게 익어간다. 

대야에서 자라고, 산성비를 맞고, 매연을 먹은 고추가 몸에 그리 좋을 리는 없을 듯한데 수확 철에는 여지없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고추들이 사라진다. 

김장할 양은 안될 것 같고, 반찬 양념할 때 쓰려나 보다 생각하며 커피를 한잔 내려 마셨다. 







전소영_sowha

그림그리는 사람.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서울 합정동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작은 그림 클래스를 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왔지만 늘 자연을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시골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이 꿈입니다.

MAIL / iris567@naver.com

BLOG / iris567.blog.me

I N S TAGRAM / @artist_so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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