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감독이 마법 세계로 환생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는 요즘 예전처럼 만화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몇몇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차라리 싫다는 감정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던 만화가 왜 그렇게 싫어졌는가 되짚어보자면 대다수의 작품들이 이런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1. 주인공이 툭하면 이세계로 떠난다. 시작 자체가 현실 도피가 아니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2. 그리고 주인공이 노력하지 않아도 등장하자마자 세계관 최강자이고 자신의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점.
3. 주인공 주변의 모든 이성들이 주인공이 딱히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점
마치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이 원하는 자신의 인생의 몽타주를 그려낸 게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한없이 갑갑해질 때가 있다. 그런데 특히 3번이 왜 그렇게 까지 거슬리는 걸까.
오랜만에 다시 본 2003년에 개봉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말하는 사랑은 완전하지도 못하고 제목처럼 영원하지도 않다. 늘 우울해 보이는 남자와 애정결핍에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여자.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해 노력하다가 실패하고, 상처 주고, 헤어지고, 기억을 지우고, 결국 다시 마주치고, 끌리고 또다시 만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서로 간에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괜찮아, 상관없어.”라는 대사로 두 사람의 사랑은 누덕누덕 기워져 다시 시작된다.
이 영화가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관객들이 그런 사랑의 방식에 공감할 수 있었고 “부족한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아주는 것이 사랑이고 두 사람만의 험난한 감정적 고비가 있어도 노력하고 배우면서 이겨나가야 한다.”는 보편적인 감성에 대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 객사한 주인공이 이세계로 건너가 존나 짱 쌘 능력을 갖추고 다시 태어나 1화 5페이지쯤 해서 존나게 아름답고 가슴 크고 헐벗은 여자 주인공의 티끌 하나 없는 순진무구한 사랑을 받는다.”라는 내용의 일본 만화책을 찾아보라고 하면 아마 당장 26000편 정도는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예술의 한 장르가 독자나 이 문화를 향유하는 팬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만을 위해 휘둘리게 되고 작가와 출판사들이 소위 돈이 되는 것에만 손을 댄다는 논리로 움직이는 것에 의하여 단시간에 처참하도록 망가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정말 참담하고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게 조금은 비약일 수 있겠지만 딱히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티끌 하나의 단점도 없는 아름답고 완벽한 존재에게 끝없는 헌신과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반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에서 늘상 상처받고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자신에 모습에 대한 현실 도피도 분명 있을 거고 말이다.
근데 뭐 이게 비단 요즘 만화책 만의 문제일까?
완벽하게 아름다운 혹은 잘생긴 매력으로 똘똘 뭉친 아이돌이 너만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춤추고 웃어주는 세상 (아이돌이 정말 뮤지션이라면 왜 그들은 공공연하게 연애를 할 수 없는 것일까?)
나를 위해 크리스마스에 남자 친구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정도의 예의를 갖춰주는 아프리카 여자 BJ.
개개인의 쓸쓸함과 이성과 감정적으로 맺어지고 싶다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산업으로 일궈내고 돈으로 연금해낼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건 내가 느끼기엔 치사하고 조금 무서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