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언니네 이발관.
얼마 전 유튜브로 슬기로운 음악 대백과라는 채널을 통해 이석원 님의 엄청 긴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이석원 님이 이렇게까지 화면으로 나와 길고 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너무나도 놀라웠고 반가움에 내적 환호성을 질렀다.
나의 질풍노도로 가득한 사춘기 시절, 내 주변에는 그런 나를 위로해주거나 좋은 방향으로 제시해줄 수 있는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해주셨지만 가끔 그것은 사랑으로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을 것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이석원 님의 사이트에 남겨진 다이어리는 그 시절의 나에게 크나 큰 도움이었고 그 일기들로 인해서 나는 아픈 시기를 달랠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석원 님에 대한 내적 친밀감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한 번도 실제로 만나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속으로는 늘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말이다.
정말이지 인생은 우습다. 내가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힙합 뮤지션들은 정말 웬만한 사람들은 다 만나봤고 다 앵글에 담아보았는데.. 정작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이석원 님은 단 한 번도 실물로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이석원 님은 언제나 나의 롤모델이었다.
형님의 글은 늘 지나칠 정도로 솔직했고 세상을 사는 데 있어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식이 담겨 있었다. 늘 위트가 있었고 삶과 주변인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다. 그는 실패한 자신을 숨기는 법도 없었고 성공한 자신을 내세운 적도 없었다.
사실 그의 음악보다 에세이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니네 이발관의 5집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를 500번 넘게 들었을 것이다. 보통의 존재는 내가 정말 슬픈 순간에 큰 위로가 되어주곤 했다. 물론 다른 앨범도 백번 이상은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석원 님의 에세이만큼이나 그가 쓴 가사를 좋아하니까 말이다.
이석원 님은 어느 날 갑자기 6집 앨범을 발매하고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였다.
선언한 내용의 몇 문장을 옮겨 놓자면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음악이 일이 되어버린 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음악이 해야 하는 일이 돼 항상 벗어나고 싶었다”
“훗날 세월이 정말 오래 흘러서 내가 더 이상 이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찾아뵙겠다”
타인의 삶을 완벽하게 동감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그 마음을 절절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그가 인터넷과 책에 적어낸 모든 말들을 읽으며 자라왔고 나 또한 내가 좋아했던 것이 결국 일이 되어버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마음을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래 봤자 이 일을 시작한 지 겨우 10년이 됐을까 하는 입장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내가 중학생 때부터 얼떨결에 음악이란 일을 시작한 이석원 님의 속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정말이지 아찔해진다. 그리고 난 그런 선택을 한 이석원 님의 모습을 보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유명해지고 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처음에 반짝이던 모습을 잃은 채 하던 방식 그대로의 패턴을 반복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들 속에서 과감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끝을 내버린 이석원 님을 보면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얼마 전 힘든 시기를 겪으며 다시 이석원 님이 쓴 에세이를 꺼내 들어 읽었다.
어렸을 적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이석원 남의 작업 과정 중의 좌절이라던지, 생계에 대한 걱정이 이제는 절절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멋진 사람도 이런 걱정을 하고 좌절을 맛보는데 나에게 그런 일이 없길 기대했다니 나도 참 웃긴 놈이 아닐 수가 없다.
나도 예전에 이제 더 이상 뮤직비디오를 찍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언니네 이발관이 만약 컴백을 하고 정말 운 좋게 우연히도 언니네 이발관의 뮤직비디오를 찍을 기회가 온다면 난 정말 돈 한 푼도 안 남기고 아니 내 돈을 되려 쓰는 한이 있더라도 내 모든 것을 쥐어짜 내어 찍을 것 같다. 말도 안 되는 나만의 상상일 뿐이지만 말이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내 힘든 시절의 두 파트를 견뎌낼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인 이석원 형님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