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렇다.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핏줄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에게는 조금은 언짢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친가 식구들의 흉을 보는 것을 온 세상 만천하에 사람들이 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가난한 집에서 난 놈이 무슨 예체능을 하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니?” 큰고모가 중학교 3학년이 된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버젓이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다 듣는 앞에서 했던 말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 말을 듣고도 고모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고모와의 이런 에피소드는 한도 끝도 없어서 여기에 다 적는 것도 무의미하다..
포장마차를 하는 것을 내가 괄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30평 아파트에 사는 것을 내가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강변역 앞에 포장마차를 몇 개 하고 30평이 조금 넘는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로 그보다 훨씬 못 사는 우리 집을 매번 대놓고 무시했다. 차라리 이건희 급으로 잘 사는 집이 그랬으면 내 말을 안 하겠는데 말끝마다 우리 집에만 오면 “가난한 집구석”이란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댄 탓에 나는 “내 꿈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 “나는 가난한 집의 아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에 고모는 “너는 이제 아빠도 없고 애까지 낳아버렸으니 이제 너도 정신을 차리고 직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얻어라.”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당시 사업자 낸 지 4년 차, 사무실 낸 지 3년 차, 영상 일은 70건 이상을 쳐내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무시하는 걸 좋아하면 그래도 남의 정보 조사는 철저하게 하고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삼십 대 중반까지 단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는 딸을 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물론 내 성격에 그 말을 바로 입에서 뱉어버렸고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작은 고모부에게 바로 빰을 맞았다. 나는 아직도 왜 내가 맞고 가만히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밥상이라도 엎어버릴 것을.
38살이 된 나는 이제 고모와 고모부가 왜 그렇게 까지 우리 집을 무시했는지 이제는 안다. 남을 무시해야 자신의 비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족속들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보통은 그래도 빙빙 돌려 은유적으로 말하며 무시하는 편인데 그들은 멍청해서 그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너희는 가난하고 무식해서 애까지 잘못 키우고 있다.”라는 말의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우리 엄마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을 때마다 고모의 자존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자존감을 지켜내려면 그들과 철저하게 손절해내야 하는데 혈육이라고 부르는 악연이 끈질겨서 결국 일 년에 한두 번은 마주치게 만든다. 참 괴로운 일이다.
“엄마, 그런 사람들과 남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라고 매번 말을 해도 엄마는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