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승원 Oct 01. 2022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라는 게

너무 막연해서 뭐라 말하기가

언젠가 가까운 누군가 실연을 당하고 내게 조언을 구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분야를 겪은 지 8년이 지나가서 말이지.. 좀처럼 공감을 해주거나 무언가 조언을 하긴 힘들 것 같아.. 미안..”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한심하게도.


결혼을 한 남자가 불타는 연애를 동경할 일이 왜 있겠는가. 굳이 다시금 실연의 상처를 겪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유부남의 몇 없는 메리트인데 내가 그것을 왜 마다하겠는가..


각설하고


나는 원래 영화를 찍는다면 정말 심오한 내용의 SF영화를 찍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할리우드 급의 막대한 예산이 부여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일 뿐이다. 속상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결국 로맨스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것을 선택해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라 캐스팅비도 적게들 뿐더러 내가 좋아했던 영화들을 되짚어 보자니 “이터널 선샤인”, “화양연화”, “미스터 노바디”, “수면의 과학”,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연인”, “오아시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등의 로맨스 영화였던 것도 아마 단단히 한몫을 했을 것이다.


나는 연애 감정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로맨스 영화감독이란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말이 되지 않고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 굳이 기억도 나지 않고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총각 시절의 추억들을 굳이 탈탈 털어가며 지난 기억들을 되짚어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징그럽도록 주책맞게 말이다.


옛날에는 친구들끼리 이상형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가슴이 큰 여자.”라고 답하곤 했다. 병신같이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이 조금 우스운 점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단 한 번도 “와, 저 여자 가슴이 참 크다. 난 저 여자랑 사귀고 싶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던 젊은 시절 한때 원숭이 귀를 하고, 타인을 위해 늘 웃음을 머금고 살아가지만 늘 시선은 먼 곳으로 보낸 채 지내던 한 아이가 나의 어떤 말에 씁쓸한 표정을 보이던 때 “아이고, 큰일이다. 나는 얘를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 열병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고 나는 몇 년을 끙끙 앓았다.


생각해보면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어떤 아이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를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귀엽지만 예쁘지 않았던 그 친구는 공공연하게 나를 좋아한다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고 내 옆자리에 찰싹 붙어 내게 이것저것 말을 붙이곤 했다.


어린 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쑥스럽고 그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척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좋아한다 해서 뭐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를 나이었기도 했고.


3년을 만났던 그 아이는 나보다 3살이 많았다.

내가 처음으로 연애를 했던  아이는 나를 만나기  이십  초의 나이에  치료를 받게 되었고 간신히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지만 언제 암이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로  방황하고 있었다.

재수학원에서 혼자 남들보다 3살이 더 많았던 그 아이는 어색한 표정을 짓고서 성격에 맞지도 않는 누나 노릇을 억지로 하곤 했었다.


제 나이의 또래 친구들처럼 늘 예쁘게 화장을 하고 신경 써서 옷을 챙겨 입었던 그 아이가 나는 왠지 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져 괜히 거리감을 두곤 했지만 왜인지 수업 중 힐끔힐끔 바라보게 되는 건 정말이지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아이와 둘이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게 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3년 동안 둘 사이의 불안감을 공유하며 서로를 망가뜨려갔다.

우린 연애 말고는 각자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서로의 팔다리와 날개를 분질러 버리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겼고 밤새 술을 마시며 서로의 한심함을 위안해주는 것으로 그 깊이를 더해갔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런 관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관계에 대해 뼈저리게 공감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눈앞에서 암만 망가져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줘서 좋아했어.” 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게 나란 인간인 것이다.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태원의 어느 클럽에서 만난 또 다른 한 아이는 새하얀 피부에 긴 생머리를 하고 촌스러운 살구색의 원피스에 같은 색상의 구두를 신고서 생전 본 적도 없는 시니컬한 표정을 하고서 내 앞을 스쳐 지나갔었더랬다.


그 아이는 나와 만나는 이유가 요즘따라 유독 심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유별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아이는 내가 싫은 이유가 외동이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지도 외동인 주제에, 그리고 자기도 외동을 낳아 기르게 될지 꿈에도 상상을 못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만나주는 이유는 자기가 아무리 차갑게 굴어도 옆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뒤, 그녀가 차가운 말을 던질 때마다 심하게 상처받으면서 그녀의 곁을 지켜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결국 나는 그 아이가 그 예쁜 얼굴을 하고서는 쓸쓸하고 사연 많은 표정을 지으며 툭하면 내게 화를 내던 것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버려 이렇게 결혼까지 해버리고야 말았다.


이제 와이프는 나랑 하도 밖으로 쏘다녔던 탓에 그 새하얀 피부를 다시 되찾기 위해 화이트 태닝을 다니고 있으며 그녀의 옷장에 촌스런 옷이라는 것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그때의 쓸쓸하고 사연 많은 표정을 좀처럼 지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내게 화를 내는 것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나는 젊었던 시절 종종, 사랑 같은 것이 부디 나를 뒤흔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곤 했었다. 제발 누군가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기를 부디 내가 나의 인생에만 충실하게 지낼 수 있기를 꿈꾸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맘처럼 쉽지가 않았다.

사랑은 너무나 큰 이슈였기 때문이다.

사건의 발단은 너무나 사소한 이유였다.

차라리 가슴이라도 컸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