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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Nov 15. 2023

우울이 있으면 지고 가야지

일상 06

당신은 어쩌면 지겨운 편린이 되어 내 일상에 틀어박힌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은 몸이 제법 괴롭지 않았다. 장을 보고 꽃을 사와 물병에 담아두는 일, 별 것 아닌 일 같지만 가끔은 해야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크게 숨을 돌린다. 아무렇지 않게 삼켜둔 아픔들을 꺼내 햇볕에 잘 말려두고 오랫동안 부채질을 한다. 마를 때까지, 물기 하나 없을 때까지 부채질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다시 삼키기 좋게 바짝 말라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읽지 않을 일기를 읽을 수 없는 시간에 읽고, 쓸 필요 없는 일기를 마치 왕의 하루를 기록하듯 버릇처럼 써내린다. 나의 이야기들을 남의 이야기 써내리듯이 차곡차곡 빼곡히 적다보면 금새 하루가 지나가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지 2주째, 나는 먼지가 쌓여가는 나의 머릿속 잔해들을 한숨으로 길게 몰아냈다. 어차피 허공에 떴다 다시 가라앉을 먼지들, 물이라도 먹여 조금 무겁게 만들어두고 휴지로 닦아내면 어느정도 활자가 차오를 공간이 생기겠거니 하며. 


나는 꼭 내 미래에 자신이 없을 때 믿지도 않을 신을 찾아 믿지도 않을 점을 친다. 그리움이 발에 채일때도 마찬가지지. 화산이 폭발하듯 억눌렸던 감정이 억하심정이 되면 꼭 그런 짓을 해.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 없는 삶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다가도 자신이 없어지면 그것조차 서러워진단 말이야. 사랑이 비지 않았던 긴 시간들이 이제는 죄책감으로 머문다. 나를 향한, 나를 위한. 


내일은 바깥에 나갈거야. 커피를 사마실 돈이 없으니 나가지 않는다는 내 핑계, 같잖지도 않지. 선물 받은 커피가 지천인데 그냥 발걸음을 떼고 싶지 않아 엄살을 피우는거야. 저 창공 아래에 내려갈 생각이 없는거야. 그리 쨍쨍하지도 않은 햇볕과 사람들의 웃음에 내 살갗이 데일까봐. 그래서 많이 쓰라릴까봐. 


내게 정답은 없다. 그리고 어느 삶이든 그래. 누구든 정답 없고 답도 없는 삶을 헤매고 있어. 그러니 나도 정당한 삶을 산다 생각하자. 우울이 있으면 지고 가야지. 저 하늘이 나를 뭉개버릴 것 같아도 걸어야지.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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